산문_동화 쓰는 할아버지

by THe STory lab

아버지의 이름은 30여년 넘게 ‘시청 공무원, 여섯 남매의 맏이, 세 남매를 둔 가장’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꿈을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 꿈이 작가였다는 것을 안 건 아버지가 공무원을 퇴직하고 난 다음이었다. 당신이 집에만 있기가 적적하다고 하실 때 나는 도서관 평생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고 아버지에게 알려드렸다.


남자 어르신들은 보통 서예 교실이나 주역 연구 교실을 많이 찾을 것만 같아 아버지에게 이를 추천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선택은 나의 예상과 달랐다. 아버지는 글쓰기 수업을 듣고 싶다고 하셨다. 시 창작 교실, 수필 창작 교실, 동화 창작 교실이 있는데 아버지는 자신이 듣고 싶은 과정은 소설 창작 교실이라고 하셨다. 내가 도서관에 전화해보니 당분간 소설 창작 교실은 개설될 예정이 없다고 했다. 차선책으로 아버지가 선택한 것은 동화 창작 교실이었다.


동화 창작 교실이 처음 개강한 날 아버지는 무척 설레어 보였다. 정장 차림으로 옷을 단정히 차려 입고 강의실을 찾아갈 때까지 아버지는 어릴 적 꿈을 되찾은 열여덟 살 정도의 작가를 꿈꾸는 고등학생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당황한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젊은 처녀들과 아주머니들 그리고 간간히 늙은 할머니들이 눈에 띄었다. 아버지 나이대의 남자는 오직 당신 혼자였다. 젊은 처녀 중 한 명이 아버지를 빤히 바라보고 물었다.


“강사님이세요?”


아버지는 어색한 웃음을 짓고는 자신은 강사가 아니라 수강생이라 말하고는 강의실 맨 뒷자리에 앉았다. 아버지는 자신이 청일점, 유일한 남자라는 사실이 쑥스러웠다. 강의실을 그대로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중년의 부인처럼 보이는 동화 창작 반 강사가 들어와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 날 수업은 서로 소개를 하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하나, 둘 앞자리 사람들부터 자기소개를 했다. 맨 앞자리의 젊은 처녀는 자신의 꿈이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작가 조앤 롤링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작가가 되는 게 꿈이라서 이곳을 찾아왔다고 했다. 한 할머니는 자신이 초등학교 교사 출신으로 늦게나마 아이들과 함께 보낸 추억들을 동화로 쓰고 싶다고 했다. 말주변이 없는 아버지는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권정생 작가님의 동화 ‘강아지 똥’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앞으로 그런 동화를 쓰고 싶습니다.”


그렇게 짧게 자기소개를 하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길지 않은 자기 소개였지만 여자들 틈에서 남자 혼자 말하기 영 힘들었던 탓인지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강사는 수업의 첫 번째 시간은 동화 창작 이론 수업, 두 번째 시간은 수강생들이 써 온 동화를 읽고 서로 합평하는 시간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하며 수업을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그 날 수업은 끝이 났다.


아버지의 발걸음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무거웠다. 당장 다음 주부터 동화 원고를 한 편 씩 써 가는 것이 숙제였다. 자존심이 강하고 성실한 아버지의 성격상 숙제를 안 해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직 하나 뿐인 남자 수강생으로 여학생(?)들에게 질 수 없다는 오기도 생겼다. 그렇다고 태어나서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동화를 존경하는 권정생 작가 수준으로 뚝딱 써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버지의 꿈은 분명 작가였지만 아버지가 보낸 세월은 그것과 너무나 동떨어진 삶이어서 꿈 자체를 낡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곰곰이 생각했다. 권정생 작가의 ‘강아지 똥’처럼 멋진 동화를 쓸 수는 없을지언정 다음 주까지 꼭 동화 한편을 완성해 가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러나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나이가 들어 말을 잘 듣지 않는 아버지의 오른 손은 원고지에 글자를 오래 쓰기가 힘들고 벅찼다. 아버지는 세련되게 원고지 대신 아들인 내가 쓰는 노트북으로 동화를 써서 인쇄를 해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혈압이 높으신 아버지가 혹여나 동화 쓰는 일 때문에 혈압이 오를까 어머니는 그까짓 동화 창작 수업 포기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시 찾은 꿈을 복원해 내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셨다.


독수리 타법으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하루 종일 돋보기를 썼다 벗었다 수차례, 아버지는 ‘반짝반짝 고물상’이라는 동화 한 편을 써 내셨다. 아버지는 국문과 출신인 나에게 자신의 동화가 어떤지 한 번 읽어보라고 이르셨다. 난 솔직히 귀찮았지만 아버지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당신이 그 한 편의 동화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반짝반짝 고물상’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았다.


‘반짝반짝 고물상에 버려진 놋그릇이 새총에 맞아 고물상 바닥에 떨어진 아기 새와 친구가 된다. 놋그릇은 아기 새가 다친 걸 알고는 고물들이 쌓여 이룬 산더미 맨 꼭대기에서 바닥으로 굴러 큰 소리를 내어 고물상 주인아저씨를 부른다. 주인아저씨는 들쥐에게 잡아먹힐 처지가 된 아기 새를 발견해 치료해 주고 하늘로 다시 날려 보내준다.’


내가 보기에 문학성을 따지자면 아버지의 동화는 이야기 구성이나 문장력에서 초라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쓰신 동화에서 아버지가 30여년 남짓 놋그릇처럼 우리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고 나라를 위해 일하신 숭고함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에게 대뜸 ‘아버지, 이런 동화는 아무도 읽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


다음 주 수업 시간에 어쩌면 아버지가 쓰신 동화를 아무도 칭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동화가 무작정 좋았다. 그 안에는 아버지의 꿈과 인생, 다시 말하면 아버지 자신이 녹아 있었다.


아버지는 오늘도 동화를 쓰시느라 바쁘다. 권정생 작가를 따라잡느라 ‘강아지 똥’ 대신 ‘호랑이 똥’, ‘지우개 똥’, ‘외계인 똥’을 제목으로 동화를 써 보시기도 하는가보다.


아버지와 권정생 작가는 그 인지도와 문학성에서는 먼 거리가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진정성과 열정만큼은 ‘하늘을 다시 힘차게 날아오른 아기 새’처럼 그 어느 동화 작가 못지않게 아름답고 찬란히 빛날 테다.

(2019)

작가의 이전글산문_내 꿈의 이력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