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라디오

by THe STory lab

네가 힘겹게 헐떡거릴 때

아버지는 숨을 죽이며 고개를 떨구셨다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어깨가

조금 아주 조금 흔들렸다

아버지에게 오랜 벗이 되어주었던 너는

어느 날 문득 가는귀가 먹은 듯

벌컥 병마에 찌든 외마디 소리를 내질렀다

안테나는 여전히 차렷 자세를 하고 있는데

방송을 들을 때마다 너는 지표指標 잃은 배처럼

심한 멀미를 앓는 듯 보였다

늘어난 카세트테이프가 긴 한숨을 쉬거나

시디가 톡톡 튀며 말해야 할 때 말하지 못하고

말하지 않아야 할 때 지지직 신음소리를 냈을 때

아버지는 네 몸을 쓰다듬으며 절뚝거리는 길을 나섰다

묻고 물어 도착한 서비스 수리 센터에서

십자드라이버를 든 젊은 의사는

너의 노환으로 인한 뇌사 판정을

단단한 어조로 가볍게 말했다

아버지는 네 몸을 휘감고 있는 전깃줄을

조용히 마지막 생生에서 뽑아들고

재활용 분리 수거대 앞에서

왼손으로는 너에게서 손을 떼고

오른손으로는 너를 붙잡고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셨다

네모난 송장이 조금은 비좁은

관 안에 자리 잡고 영원한 침묵을 허락받았을 때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너를 보내며

묵념을 하고 계시는 듯 보였다

싱싱한 육신을 자랑하는 새 벗이

책장에 자리 잡았을 때에도

아버지는 덜컹거리던 너의 몸에서 나오던

마른기침을 나직이 읊조리고 계신 것이었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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