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_인생 4수

by THe STory lab

그해 나는 4수생이었다.



재수 종합반에서 같이 공부하던 수험생들 대부분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이었다. 스물한 살짜리 3수생들이 좀 있었고 4수생은 거의 없었다. 재수생+3수생보다 스스로 세상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고작 22살이었다.



4수까지 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나는 원래 고3 현역 때 수능 성적이 나쁘지 않았지만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인 서울을 못했다. IMF 한파가 아직 매섭던 때라 지방에서는 웬만하면 지방 거점 국립 대학교를 보내던 시절이었다.



“재수는 못 시킨다. 다니는 국립대나 잘 다녀라.”



엄마, 아버지는 재수를 하고 싶다는 내 간청에도 불구하고 계속 안 된다고만 하셨다.



재수를 못 한 게 한이 된 나는 3수라도 하려고 다니던 대학교에 무작정 휴학계를 제출했다. 그러고는 3수 할 돈을 벌려고 식당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오후 3시부터 밤 9시까지 일을 했다. 서빙+배달+주방 보조까지 1인 3역을 담당해야 했지만 그래도 힘든 줄 몰랐다. 돈 모아서 공부할 생각에 더 즐겁게 더 열심히 일했다.



하루는 아르바이트 시간에 늦어 신호등 없는 건널목을 급히 건너다 미처 나를 피하지 못한 차랑 부딪쳤다. 다리를 다쳐 두 달이나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당장 다음 달이 재수 종합반 개강 날인데 눈앞이 캄캄했다. 대학병원 주치의 선생님은 하루 종일 걸상에 앉아 공부하는 수험 생활이 내 몸에 독이 될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나는 재수 종합반에서 3수를 하는 걸 포기했다. 돈을 어렵게+어렵게 마련했어도 건강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못 하다니.



미리 낸 학원비를 환불받고 돌아오는 길에 조금, 소리는 못 내고 울었다.



“이왕지사 대학교 휴학계도 내놨겠다 우리도 힘 닿는대로 도와줄 테니 네 힘껏 공부해 봐라.”



3수 하는 것에도 줄곧 부정적이었던 부모님이 단과 학원이라도 다니며 입시를 준비해 보라고 하셨다. 힘을 얻어 3수를 했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나름 열심히 준비한다고 했지만 그해 겨울 나는 수능을 망쳤다.



고등학교 동창 중 3수를 한 친구들이 의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기가 생겼다. 여기서 도전을 멈추면 평생 한이 될 거 같았다. 자격지심과 열등감이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것만 같았다.



작년에 학원비를 미리 냈다 환불받은 그 학원에 다시 등록하고 ‘진격의 4수생’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재수 종합반 각 반에는 담임 강사가 배정되어 수험생들 생활 지도를 맡았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학원비를 거두는 방식이 좀 특이했다. 조회 시간에, 칠판 앞에 봉투를 세워 두면 우리 반 수강생들이 그 봉투 안에 가져온 학원비를 넣는 식이었다.



개강하고 몇 달이 지난 그날 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학원에 도착해 자습을 하고 있었다. 조회 시간도 되기 전에 칠판 앞에 벌써 돈을 모으는 봉투가 놓여 있었다. 요새 말로 쎄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하는 노파심에 준비해 간 학원비를 그냥 가지고 있었다. 몇몇 수강생들이 그 봉투에 학원비를 넣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날 조회 시간에 난리가 났다. 봉투에 학원비를 넣었던 수강생들의 돈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우리 반에 학원비를 노린 도둑님이 있어서 돈 모으는 봉투를 일부러 세워 두고 학생들의 금쪽같은 학원비를 훔친 게 분명했다.



담임은 우리 반 수강생들 전체 앞에서



“책임 추궁을 않을 테니 범인은 훔쳐 간 돈을 교무실 내 책상에 조용히 가져다 놓아라.”



며 달래기도 하고



“누가 돈을 훔친 건지 심증이 확실히 가지만 물증이 없어서 참고 있다.”



며 강경하게 얼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인지 그 말을 하는 내내 담임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설마 나를 왜 의심하겠나 싶었는데 계속 나를 주시하는 담임의 시선을 느낄 때마다 나의 불쾌한 예감은 확신으로 굳어갔다.



나는 거의 매일 아침 학원에 가장 먼저 등원했다. 담임에게 그 사실이 나를 의심하는 나름의 이유가 되었겠지만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된 나는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심지어 진범인 도둑님이 누군지 심지어 알고 있었다.



그는 완전범죄를 꿈꿨지만 나는 도둑님의 수상한 행적과 낯선 동태에 주의를 기울인 덕분에 그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첫째 매일 지각을 일삼던 도둑님이 사건 당일 처음으로 일찍 학원에 출석했다. 둘째 그러고는 학원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며 교실 안 동정을 살폈다. 셋째 또 그날 이후로 그는 친하게 지내던, 가까운 수강생들에게 인심 좋게 돈을 써대기 시작했다. 비싼 브랜드의 피자를 쐈다던가.



노력 없이 훔친 ‘돈의 맛’은 달콤했지만 흥청망청 줄줄 새어 나갔다.



사라진 학원비를 담임 사비로 부담하는 선에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도둑 누명을 썼다는 억울함과 용기를 내 범인을 밝히고 누명을 벗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동시에 피끓는 청춘의 마음에서 솟구쳤다.



그러나 순진한 마음에 내가 사건의 진상을 밝히게 되면 도둑님이 절도죄로 전과자가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인생 시작도 하기 전에 말이다. 그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같은 사람이라면 너무 가엾지 않은가.



그때 내 상황은 말 그대로 ‘내 코가 석자’인 신세였다. 어디서 그런 인류애가 터져 나와 발휘됐는지 정말 당시의 나는 바보 같은 사나이였다. 그래도 그땐 그런 고민과 갈등으로 무척 괴로웠다.



사건 이후 도둑님은 간도 크지, 당당하게 재수 학원에 계속 나오고 있었다. 내가 사건의 전모를 다 안다고는 꿈에도 모른 채 공부하고 밥을 먹고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런 그에게 너무 화가 나서 마음대로 할 성싶으면 머리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이 도둑님아, 아니 이 도둑놈아!!! 크게 소리 치면서.



결국 나는 정의를 구현하는 대신 도둑님의 구만리 같은 인생을 지켜주기로 마음먹었다.



스스로도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없었다.



돌이켜 보건대 나는 도둑님에게 난데없이 동정을 넘은 연민을 느낀 게 아니었을까 잘못된 선택을 하고만 그를, 아직은 어렸던 내 나름의 방식으로 어설프게나마 구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힘들고 어려운 수험 생활을 ‘함께’ 견디고 있었을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물론 그것과는 따로 사건의 진상을 밝히지 못하고 그의 죄를 방관한 부끄러움은 그때 이후 지금까지 평생,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그해 나는 수능을 망치지는 않았지만 목표로 삼았던, 대학교 합격에는 다시 실패했다. 인서울 대학교 한 곳을 합격해 다녔지만 곧 다시 자퇴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내 인생 4수 시절을 떠올리면 후회될 때가 있다. 도둑님의 남은 인생이 내가 누명까지 써 가며 지켜줄 만큼 과연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는지 우선 의문이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안 됐으면 참 다행인데 이후 그의 소식을 듣지는 못했다. 부디 내가 침묵으로 지켜준 그의 인생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사는 상식과 올바름에 어긋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세상은 도둑님이 자기 행동에 어떻게든 책임과 대가를 치러야 하는 곳임을 마흔이 넘은 나는 절감하고 또 절감한다.



그건 우리 각자의 삶들이 내가 도둑님에게 베푼 치기어린 동정과 연민과는 바꿀 수 없을만큼 모두 다 소중하고 존엄해서다.


(2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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