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았다. 무엇인가를 시도하기에 좋은 날이었다. 졸기도 오래 전 사 놓은 시집을 읽기에도 1년째 사귄 연인과 진한 애무 뒤 이어지는 섹스를 하기에 무리가 없는 평일 화요일 낮, 점심 시간 무렵이었다. 나는 이 날 죽기로 마음 먹었다. 고등학교 옥상 난간 끄트머리에 나는 서 있었다. 방금까지 솟구쳐 오르던 울음이 거짓말처럼 가셨다. 눈물도 말라버렸다. 나는 망설임 없이 잽싸게 떨어져 낙하했다.
엄마는 항상 그랬다. 아플 때는 정상인과 달리 눈에 불을 놓은 듯 했다. 의심하고 집착하고 화를 내고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나를 개 패듯이 때려 잡았다. 그러다 아빠에게 제지 당하고 울부짖고 입고 있던 옷을 찢었다. 연락을 받은 사설 구급차 아저씨들에 의해 두 손이 결박당한 채 정신병원에 잡혀 갔다. 그러다 두세 달 쯤 지나서 영혼이 잠식당한 사람처럼 멍한 눈을 하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먹고 싸거나 하루종일 자기를 반복했다. 끝없는 악순환이었다. 나는 점점 커 가면서 엄마가 죽거나 멀리 떨어진 정신 병동에 영원히 감금되길 바랐다. 하지만 보호자인 아빠는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게 엄마가 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입원을 하고 좀 진정됐다 싶으면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그건 엄마의 병적 성격과는 또 다른 집착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엄마가 싫었고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아침마다 등교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설 때 식탁에서 밥을 반쯤 흘리며 먹어대는 엄마 얼굴을 마주하는 게 내게는 고역이었다. 나는 엄마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를 증오한다. 그 저주스런 게 내 몸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만으로 역겹다. 내가 엄마처럼 살지 않고 그나마 학교를 다니고 보통의 고등학생처럼 살 수 있는 건 아빠 유전자가 나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처럼 차라리 죽는 게 나은 반 송장, ‘똥 만드는 기계’로 살고 싶지 않다. 내 삶의 주인은 나이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그들 앞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는 내 인생에서 지우개로 싹싹 지워져야 할 오점이다.
“해인아! 밥 먹고 가야지.”
아빠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오늘도 나는 현관 문을 쾅 닫고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은결이가 죽었다. 그 사건은 그저께 12시 54분에 일어났다. 나는 녀석의 유일한 친구, 우리는 교환 일기를 쓸 정도로 가까웠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놓고 친한 티를 내지 못 했다. 내가 팔짱이라도 낄라치면 녀석은 쑥스러운 미소를 띠며 팔을 뺐다. 쌍꺼풀이 진 크고 맑은 두 눈동자는 주위를 의식하기 바빴다.
“오하율! 너까지 따돌림 당하면 어떡해? 괴로운 건 나 하나로 족해.”
그건 은결이의 나에 대한 철저한 배려였다. 죽기 얼마 전 녀석은 교환 일기에 이렇게 썼다.
_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 내가 처음 보는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나에 대해 다 안다는 듯이 말하고 욕하고 조롱한다는 게 너무 무섭고 슬프다._
이게 다 우리 반 반장 권해인 때문이다. 은결이가 죽기 몇 달 전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우리는 교실에 단둘이 남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야, 남자 아이돌 중에서는 몬스터의 제이빔이 제일 멋있지 않냐? 넌 어때?”
“제이빔보다는 칸다가 낫지. 걔가 춤 출 때 진짜 쩔지 않냐?”
그때 복도쪽에서 아이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은결이가 나한테 빨리 내 자리로 돌아가라고 손짓을 해댔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책을 읽는 척 했다. 시끄럽게 굴며 권해인과 친구들 무리가 교실로 들어섰다.
“어머, 얘들아! 이은결 공부하고 있어. 대박! 꼴에 대학은 갈 모양이네.”
무리 중의 하나가 은결이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야! 근데 어느 대학에서 얠 받아 주겠니? 아, 맞다. 여대면 혹시 받아줄지도 모르겠다. 애가 하도 여자 같아서…….”
“여대면 여자들만 다닐 수 있는 데 아냐? 얘가 무슨 여대를 가냐? 수술해도 자궁도 없고 애기도 못 낳는데…….”
순간 은결이의 표정이 굳어져 애들을 바라봤다.
“세상에, 이은결이 야릴 줄도 아네. 야 너 많이 컸다. 시발년아.”
갑자기 권해인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옆에 있던 향단이가 물었다.
“해인아, 너 뭐 하려고?”
“이런 표정은 영구 박제해 놔야 돼.”
권해인이랑 애들이 키득거리며 은결이를 둘러쌌다. 그러고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은결이의 경직된 얼굴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녀석은 저항도 않고 가만히 모든 시선을 받아냈다.
“그렇긴 그렇다. 우리끼리만 보기에는 아까운 인물이지. 하하하.”
박 기사 아저씨가 모는 차가 추레한 학교 건물 앞에 도착했다. 자존심이 말이 아니다. 서울에서 내가 다니던 외국어 고등학교와는 천지 차이의 모습이었다. 우거진 아름드리 나무가 아름다운 정원도, 금빛 잉어들이 제 놈들이 내놓은 물길을 따라 헤엄치는 연못도 없었다. 끔찍하게 형편없는 학교였다. 아무리 불평불만을 속으로 되뇌어 봤자 소용없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아버지는 이 촌 구석에서까지 적응을 못하고 일정 등수 이상의 성적을 얻지 못하면 말도 안 통하는 나라로 유학을 보내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였다. 그래, 그래. 영감탱이 뜻대로 해 주지. 그럼 그렇고 말고.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스무살이 되기만 하면 내 멋대로 실컷 놀고 마시고 여자애들이랑 어울리고 그렇게 할 날만을 고대하며 나는 아버지의 폭력과 같은 야단에 ‘네’ 한 마디만 하고 이 지방으로 쫓겨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교무실로 들어서자 촌스런 블라우스와 체크무늬 치마를 뚱뚱한 몸에 걸친 앞날의 담임이 나를 맞았다.
“네가 현우니? 아버지한테서 전화 받았어. 앞으로 잘 지내보자.”
내 뒤에 아버지가 없다면 분명 이렇게 친절하게 대할 리 없을 거리는 생각이 들자 기미가 낀 담임의 얼굴이 역겹게 느껴졌다. 내 아버지가 누군가, 우리 집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아버지가 국회의원을 몇 번이나 해 먹은 정치인인가에 대해 선생들은 더 관심이 있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언제 어느 때 울고 싶은지 물어봐 주는 사람은 없었고 나 스스로 그런 걸 말한다는 것도 금기였다.
담임은 긴 복도를 뒤뚱뒤뚱 앞서 걸어갔다. 나는 선생을 따라 말없이 3학년 2반에 들어섰고 촌스러운 애들과 드디어 마주해야 했다.
“김현우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무미건조한 인사를 뒤로 하고 담임이 나를 어디에 앉힐지 눈알을 굴리는 게 느껴졌다. 그동안 반 아이들은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해인아, 현우는 서울에서 와서 우리 학교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을 테니까 네가 옆에서 많이 도와주렴.”
순간 권해인이 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 담임과 내가 들어섰을 때 ‘차렷, 경례’를 하는 걸 보니 반장인 듯 보였다. 해인은 주변 아이들과는 달리 얼굴에서 하얗게 빛이 났다. 다른 말로 하면 촌스럽지 않고 서울에서 봤던 연예인 지망생들처럼 얼굴이 무척 예뻤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 애에게 가지게 된 호감을 들킬까 봐 애써 얼굴을 더 무표정하게 무심한 듯 보이게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내가 해인의 옆자리로 가는 동시에 교실 뒤쪽에 앉아있던 남자 아이들의 거칠고 시기어린 눈길이 느껴졌다. 해인이 이 반에서 남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새끼! 니, 한번만 더 애비 얼굴에 똥물 끼얹으면 그 때는 호적에서 파 버릴 줄 알그라.”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서울 말을 쓰려고 애쓰지만 나를 대할 때는 본능적으로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며 나는 사내 녀석들의 시선을 애써 회피하려고 했다. 아버지가 바라는 건 내가 중학교 때의 성적을 회복해서 덜 유명한 지방 의대라도 들어가는 것이었다. 내 마음대로 살기 위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아버지의 아들로서 행동거지를 똑바로 하고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는 동시에 형처럼 서울대 의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의대생이 되라는 게 아버지가 내건 거래 조건이었다.
“얘! 너 손톱이 참 깨끗하다. 오늘 아침에 깎았니?”
해인의 목소리가 영감탱이의 환영을 지워버렸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손톱 칭찬에 멋쩍게 웃어보였다. 그러니 해인이 기집애가 좋아서 잇몸까지 보이며 활짝 웃는 것이었다.
난 은결이가 그렇게 가 버리고 나서 계속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엎드려 울기 일쑤였다. 내 유일한 친구인 녀석을 그렇게 보내버린 게 너무 미안하고 속상하고 화가 났다.
“하율아! 학교에서 무슨 일 있니?”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나는 엄마 말에 마음이 무너져 흐느껴 큰 소리로 울고 말았다.
“왜 무슨 일이야? 엄마하고는 비밀 없기로 약속했잖아.”
엄마는 나의 흐느낌에 깜짝 놀라 물었다. 일주일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난 엄마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엄마, 은결이가 죽었어.”
엄마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초지종을 다 들은 엄마에게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엄마, 남자가 여자 같은 게 죽을 만큼 나쁜 거야? 남자가 여자가 되고 싶은 게 그렇게 잘못 된 거야?”
내 말에 현명한 대답을 해 줄거란 기대와는 달리 엄마는 내 책상 위 스마트 폰을 집어 들었다.
“너 걔랑 주고 받은 메시지 다 지웠지?”
“그게 지금 중요해?”
“하율아, 어쩌면 네가 걔 죽음에 연관되었다고 오해받을 수도 있다고……. 아니면 네가 같은 부류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수도 있어.”
“엄마는 지금 은결이가 죽었다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지금 엄마한테는 은결이가 죽은 것보다 내 딸이 앞으로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해.”
엄마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은결이가 안 됐다거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람들의 무자비하고 잔인한 시선에 대한 분노는 그 얼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엄마에게는 지금 딸인 내 안위가 최우선적으로 중요해 보였다.
엄마가 책상 위에 있던 은결이와 나의 교환일기 노트를 집어들었다.
“이건 뭐니?”
“안 돼.”
엄마 손에서 노트를 낚아채려 했지만 이미 엄마는 노트에 적힌 일기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너, 그런 애랑 어울릴 때부터 알아봤어. 이런 게 널 더 괴롭힐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하니?”
그 다음 엄마가 한 행동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엄마는 내 눈 앞에서 노트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엄마는 엄마한테 상담하러 온 애들한테도 이런 식이야?”
내가 찢어진 노트 조각을 들고 울면서 엄마한테 대들었다.
“그 애들은 내 딸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환자들이야. 그 애들이랑 은결이 걔랑 같니?”
그 순간 엄마 말을 듣고 나는 깨달았다. 은결이를 죽게 한 권해인 무리보다 더 나쁘고 싫은 건 우리 엄마 같은 어른들이라는 걸. 앞에서는 다 이해한다며 당사자들을 다독이면서 정작 그 문제에 연관되어 버리면 자신에게, 자신의 자식에게 티끌만큼의 오점이라도 남길까봐 전전긍긍하는 그 괴물같은 존재들임을. 그런 어른들이 만드는 이 세계가 나는 갈기갈기 찢고 싶을 만큼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김현우는 내가 그동안 봐 온 우리 학교 남자애들과는 달랐다. 남자애들은 다 무식하고 시끄럽고 지저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서울에서 온 애라 그런지 얼굴에서부터 귀티가 흘렀다. 아는 것도 많고 점잖으며 청결할 것 같은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그건 그 애의 깨끗한 귀 뒤나 깔끔하게 깎은 손톱, 역겨운 냄새가 나지 않는 청량한, 그 애에게서 나는 좋은 냄새로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나는 깔끔하고 젠틀하고 멋있는 현우가 무작정 좋았다. 시시껄렁한 뒷줄 양아치들과는 달리 왕자님같은 아우라를 풍기는 그 애를 마음 속에 남자친구로 점 찍어 두었다. 그 애가 전학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의 점심 시간 때 힘 좀 쓰는 양아치들이 현우 곁으로 몰려 왔다.
“야! 전학생, 잠깐 우리 좀 보자.”
나한테 고백했다 차인 적이 있는 거지 발싸개같은 놈이 날 의식해서 더 크게 목소리를 내며 현우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야! 니들 뭐 하는 거야?”
“권해인, 넌 상관 마라. 이건 남자들끼리의 일이니까.”
다음 순간 현우가 어깨의 손을 치우고 일어서며 내게 말했다.
“괜찮아. 아무 일 없을 거야.”
그 애는 그 말을 하며 내게 윙크로 눈을 찡긋거리고는 뒷줄 놈들을 따라나갔다. 점심 시간이 끝나갈 때쯤 교실 입구에서 큰 소리가 났다.
“야! 일진들이랑 전학생이랑 싸움났어!”
그 소리를 듣자마자 용수철처럼 목소리의 주인 쪽으로 달려갔다.
“싸움 난 데가 어디야?”
그 애는 내 반응에 뜨악한 듯 더듬거리며 말했다.
“쓰레기……소각장 근처야.”
난 있는 힘껏 교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복도에서 마주친 친구들이 물었다.
“야! 권해인, 어디 가? 곧 있으면 수업 종 치는데…….”
대답도 못하고 정신 없이 쓰레기 소각장으로 향했다.
저 멀리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현우였다. 그 애는 접은 옷 소매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도 모르게 현우에게 다가가 그 애의 어깨를 잡았다.
“야! 반장, 무슨 일이야?”
“걱정……했어.”
“그랬구나. 내가 아무 일 없이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 어때? 내 말이 맞지?”
갑자기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난 현우의 어깨를 부여안고 그 애 품에서 울고 말았다.
“나, 너 좋아해.”
“나도 너, 좋아.”
현우 얼굴의 미소가 내 얼굴에 옮겨와 번졌다. 그때 수업 종이 울렸다. 난 그 애의 손을 잡고 교실로 뛰어가며 말했다.
“오늘부터 1일이야.”
“무슨?”
“우리 사귄 지 1일째라고.”
난 현우의 손을 더 꽉 잡았다.
여자들 속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제까지만 해도 좋다고 길길이 날뛰다가 오늘 갑자기 토라지니 말이다. 해인이가 화가 난 이유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정말 별 거 아니었다. 내가 학교에서 좀 인기가 있다보니 러브레터를 누군가로부터 받았는데 그게 해인이 속을 상하게 한 모양이다. 누가 보낸지도 모르는 연애 편지에 내가 왜 달달 볶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 애는 내 사물함에 끼워져 있는 편지를 발견하고는 그걸 자기에게 보여달라고 했다.
“그건 좀 곤란한데…….”
내 말에 해인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내 말 좀 들어보고 화를 내든지 말든지 해. 편지 보낸 사람은 심사숙고해서 보냈을 거란 말이야. 그건 그 애랑 나의 프라이버시란 말이지. 아무리 여자 친구라지만 그걸 보여달라는 건 선을 넘는 짓이야.”
해인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얼굴이 되어서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날 하루 종일 우리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내가 그 애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계속 기회를 엿봤지만 해인이는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종례가 끝나고 나는 그 애에게 다가갔다.
“권해인! 너니까 내가 보여 주는 거다. 다른 여자애들이었으면 어림도 없어.”
해인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손에서 편지를 낚아채 갔다. 편지 봉투를 뜯고 편지를 읽어내려가던 해인의 얼굴이 무섭게 변했다. 편지에는 해인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할 험담과 그 애랑 헤어지고 자신과 사겨달라는 노골적인 구애가 담겨 있었다.
“이 년이 누군지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찾아내고 말겠어.”
다음 날부터 그 애의 무서운 집착이 시작되었다. 해인은 교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연애편지의 필적과 같은 글자체를 가진 인물을 찾아내려 혈안이 되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던 해인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이은결의 책상 앞에서였다. 은결은 한창 음악을 들으며 숙제를 하고 있었다. 해인이 은결의 귀에서 이어폰을 빼들었다.
“이은결! 니가 현우한테 이 편지 보낸 거야?”
은결은 말 없이 바닥에 떨어진 이어폰을 주워 다시 귀에 꽂았다.
“내가 묻잖아. 이거 네가 쓴 거냐고?”
은결이 해인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네까짓 게 뭔데 내 남자 친구한테 이 따위 편지를 보내?”
해인이 소리를 지르며 은결의 공책을 찢었다.
“야! 이게 무슨 짓이야? 권해인!”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오하율이 해인의 어깨를 흔들며 그 애의 행동을 제지했다.
“이은결이랑 내 문제니까 넌 아무 상관 마.”
하율이 해인의 날선 소리에 멈칫하고 물러서며 뒤에 서 있던 내 얼굴을 바라봤다. 난 하율의 시선을 피했다. 은결이 하율 뒤에서 일어나 해인의 얼굴에 제 얼굴을 밀착시키며 말했다.
“언제까지 내가 당하고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니? 남한테 주는 상처는 즐겁기만 하고 네가 상처 받으니 그렇게 아파?”
그 순간 해인이 은결의 뺨을 ‘짝’하고 큰 소리가 나게 때렸다. 은결의 뺨이 빨갛게 부어오를 정도였다.
“이 사이코 변태 새끼! 너 반 죽을 줄 알아!”
해인이 눈빛을 번뜩이며 교실 밖을 나갔고 난 그 애를 따라 교실을 뒤따라 나왔다. 뒤에서 남자 애들이 휘파람을 불어대며 놀렸다.
“야! 김현우. 너 남자한테까지 고백받아서 좋겠다.”
권해인의 복수는 치졸했다. 예전에 찍은 은결의 사진을 제 SNS와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고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소설을 써댄 것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는 은결이의 사진과 신상이 ‘사이코 변태 트랜스젠더’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올라왔다. 그리고 모두가 알 만한 인터넷 게시판에 ‘내 남자친구를 빼앗아간 트랜스젠더를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은결이 사진과 학교, 집 주소, 전화번호와 함께 올린 것이다. 자극적인 제목의 사진과 글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인터넷 상에서 잔인한 아웃팅을 이어나갔고 그건 그대로 우리가 숨쉬고 있는 현실 속의 시간과 공간에서의 폭력으로 이어졌다.
그때부터 은결이가 학교 내, 학교 밖 근처는 물론 시내를 지나가면 알아보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쟤, 트랜스젠더라고 SNS에서 요즘 핫한 애 아냐?”
“아마, 별빛 고등학교 2학년이라지?”
“그럼 쟤는 몸은 남자, 마음은 여자인거네. 웃기다. 그지?”
이 정도는 양반 수준이었고 은결이가 지나갈 때 침을 뱉거나 욕지거리를 하고 조롱하며 우웩거리며 큰 소리로 헛구역질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은결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것도 그때 쯤부터였지 싶다. 이때쯤 은결이가 나랑 같이 쓰는 교환일기에는 매번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사회에 대한 절망감이 주를 이뤘다. ‘죽고 싶다’는 글이 자주 보이는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학교에 나가지 않은 지 2주일 째다. 답답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집 밖을 나서기가 겁이 난다.
사귄 지 1년이 조금 못 되는 서울에 사는 형한테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 형이 변했다. 형이 달라진 걸 처음 눈치챈 건 내가 지난 여름 방학 때 서울에 올라갔을 때였다. 말이 많았던 형은 나에게 말을 걸지도 웃지도 활발하게 나를 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카페에서 나와 만나 말 없이 가끔 이유없이 희미하게 웃음을 띠며 한숨을 쉬어댔다.
“형, 무슨 일 있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요즘 학과 공부가 힘들어서 그래.”
보통 때는 먼저 스킨쉽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던 형은 내 손을 잡지도 않고 나를 앞서서 걸어가고는 했다. 나는 불안했다. 집으로 돌아와 카톡을 보내면 3시간 쯤 지나 내게 귀찮은 듯 단답형의 답장을 보내는 데 그쳤다. 나에 대한 애정이 식은 정도가 아니라 얼어 붙었다. 그러더니 지금은 며칠 째 내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 바닥의 연애가 1년 정도나 지속되었으면 오래 간 거다, 애써 위로해 봐도 억울하고 슬프고 마음이 아픈 건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 지구상에 나 혼자 사람들과 뚝 떨어진 듯 너무나 외로웠다. 누군가 옆에 있어 줬으면 싶었다. 나는 망설임 끝에 채팅앱에 접속했다.
‘오늘 밤 같이 보낼 분, 18/172/54.’
자포자기 상태에서 쓴 내 프로필을 읽고 사람들은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그러다 38세, 키 178, 몸무게 65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익명의 남자와 대화를 계속했다. 남자는 지금 당장이라도 만날 수 있다 했다. 남자가 사는 곳이 내가 있는 곳에서 좀 멀기는 했지만 난 오늘 밤 그와 원나잇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늦은 밤의 지하철을 타고 역에서 기다리니 늙은 중년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혹시 피카츄 님?”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남자의 얼굴과 몸을 보니 그가 채팅 상에서 직접 만나면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38세가 아니라 60세에 가까운 나이 같았고 키는 작달막 했고 몸무게를 그대로 믿기에는 배에 지방살이 출렁이는 걸 속일 수 없었다. 만나기 전에 보낸 얼굴 사진도 그동안 원나잇을 하며 연락을 해 온 누군가 다른 사람의 사진 같았다. 얼굴 옆 라인 쪽으로 검버섯이 길게 줄지어 나 있었다. 나는 거리만 멀지 않았더라면 그를 외면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하철도 끊긴 늦은 밤이었고 무엇보다 1년간 연애를 한 전 애인이 미워질수록 누군가와 오늘 밤 이름 모를 모텔에서 하룻 밤 같이 보내고 싶은 치기가 차올랐다.
“어디로 갈까?”
“형이 편한 데로 가요.”
할아버지 뻘인 남자에게 ‘형’이라고 호칭하며 나도 모르게 섬찟해졌다. 나는 이 초로의 늙은이를 전 애인이라 착각하고 있는 걸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며 전 애인에 대한 미움이 더 커져만 갔다.
우리는 낡고 초라한 여관에 들어갔다. 내가 씻고 나오자 남자는 위에는 맨살로 아래에는 삼각 팬티만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가 먼저 나를 안았다. 침대에 누워 그의 팬티를 벗겼다. 초라하고 쪼그라든 볼품없는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털이 듬성듬성 나 있었고 발기도 전혀 되지 않았다. 나는 남자의 물건을 오래도록 응시하다 한 번 빨아주었다. 오늘따라 나도 발기가 되지 않았다. 학교를 나가지 않은 때부터 먹기 시작한 우울증 약 때문에 그런지도 몰랐다. 위치를 바꿔 남자도 나의 성기를 한 번 빨았다. 그러고는 자기의 물건을 내 것에다 문질렀다.
아무 느낌도 흥분도 되지 않는 무의미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팔을 눈 위에 얹고 나는 하염없이 울어댔다. 상대는 놀라 그때까지 계속하던 애무를 멈춘 채 물러나 내 옆에 누웠다. 나는 아무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형, 나는 말이에요. 다음 생에는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요.”
무슨 말을 지껄이는 지도 모른 채 말을 쏟아냈다. 남자가 드르렁드르렁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아랑곳 않고 나는 계속 말을 했다.
“그래서 형이랑 섹스도 하고 아기도 낳고 그렇게 아웅다웅거리며 살고 싶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도 곯아 떨어졌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남자의 자취는 온데간데 없었다. 여관방 모서리에 놓인 탁자 위에 만원짜리 지폐 세 장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에게 3만원짜리 취급을 받은 것 같아서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내 마음도 사랑도 간밤에 이야기했던 꿈도 3만원 값어치 밖에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를 못 견디게 했다. 자괴감이 물 밀 듯이 밀려왔다.
진짜 죽고 싶을 때는 이럴 때다. 남이 죽도록 미울 때는 시간이 약일 수 있지만 내가, 사회에서 내가 속한 그룹이, 그리고 같은 류라 믿었던 사람들의 민낯을 처절하게 마주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자살하는 게 아닐까? 사람들의 자기파멸을 이렇게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느끼는 죽음에의 충동은 그런 것들에 기인한 것이었다.
나는 3만원을 집어들고 침대 모서리에서 한 없이 침울한 표정으로 한동안 앉아 있었다. 남자가 켜 두고 간 TV에서는 느끼하게 생긴 개그맨이 끼를 부리며 정색을 하고 사람들을 웃겨대고 있었다.
“왜 나한테 그래? 내가 이은결 죽였어? 난 모르는 일이야.”
이은결이 죽은 다음 날, 반에서 나랑 반목하던 애들의 차가운 시선을 느끼며 내가 소리질렀다. 나의 당당한 태도에 그동안 방관해오던 아이들의 적의가 점차 수그러드는 걸 느꼈다. 그럼 그렇지, 누가 나한테 녀석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추궁할 수 있을 것인가? 다 자업자득이다. 조금 있다 현우가 내 자리로 다가왔다.
“해인아! 이번 주 토요일 날 우리 집에 놀러 올래?”
“왜? 무슨 일 있어?”
“아, 내 생일인데 너 기분도 꿀꿀할 거 같아서 그냥 밤새도록 게임이나 하자고.”
이런! 센스 있는 녀석이라니.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YES’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차피 주말에 집에 있어봤자 얼마전부터 다시 시작된 엄마의 지랄발광과 아빠의 쩔쩔매는 모습 밖에 더 보겠는가? 이은결이 죽든말든 녀석의 자살이 상처낸 평판으로, 낮아진 내 자존감이 이번 주말 쯤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랐다.
점심 시간 때 옆 눈으로 슬쩍 오하율 자리를 쳐다봤다. 그 애는 단짝이었던 이은결이 죽은 충격 때문이었는지 하루 종일 책상에 엎드려 미동도 없었다. 그 때 향단이가 내 이름을 불렀다.
“해인아! 담임이 너 교무실로 호출!”
교무실에서 담임이 나에게 물었다.
“해인아, 네가 우리 반 반장이니까 선생님이 물어보는 거야. 평소에 은결이한테 이상한 점이라든가 그런 거 없었니?”
내가 은결에게 한 행동이 떠올랐지만 나는 차마 그 애의 자살이 나 때문이라고 밝힐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를 신임하고 있는 어른들에게는 더 그랬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리고 전 이은결하고 보통 때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래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근데 왜 갑자기 은결이가……?”
담임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침묵으로 그 반응에 답해주었다.
“선생님, 곧 수업 시작할 거 같아서요.”
“그렇구나. 그래, 알았으니까 교실에 올라가렴.”
돌아서는 나에게 담임이 말했다.
“아, 참 해인아! 현우 말이야.”
“네?”
현우라는 말이 갑자기 튀어나와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담임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아니다. 괜히 얘기해서 득 될 게 없지.”
“선생님, 김현우가 왜요?”
“아니야. 그만 올라가 봐.”
나는 찜찜한 기분이 들어서 교무실을 나오며 현우를 언급한 담임 말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었다.
“현우야, 너 요새 뭐 잘못한 거 있어?”
교실에 돌아와 내가 물으니 현우는 그 질문이 전혀 뜻밖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런 거 없는데……. 담임이 나에 대해 뭐라고 그래?”
“아니. 아니야. 그냥 내가 좀 감이 안 좋아서 그래.”
“저번에 애들이랑 싸운 거 때문에 그러는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현우 말에 이내 수긍했다.
오하율은 종이 치는데도 아침의 그 자세 그대로였다.
‘그러게 왜 까불고 지랄들이야.’
곧 화학 담당이 들어와 수업이 시작되었다.
누군가의 죽음은 당사자와 가까웠던 이들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에게 그저 그런 일상이 되어, 보고 듣고 그리고 잊혀져 가고 마는 것이다. 은결이의 죽음도 예외 없이 그랬다. 은결이가 죽고 나서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 애의 죽음은 그저 그런 성적 비관, 청소년기 우울증, 가정 불화 원인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신문 모퉁이에 실렸다 그렇게 잊혀져갔다. 그 신문기자가 제대로 은결의 죽음을 취재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우리반 애들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학교를 오고 가고, 공부하고, 웃고 까불었다.
“야! 이거 봐라. 누가 올린 건지는 모르겠는데…….”
“반장 아냐? 아니면 권해인 얼굴에 딥페이크로 합성만 한 건가? 합성한 티는 안 나는데…….”
해인의 이름을 듣고 나는 멈춰서서 남자 아이들 무리로 다가갔다.
“그게 뭔데? 나도 좀 보여줘.”
“오하율! 너 레즈였어? 이런 건 남자만 보는거야.”
“나도 좀 보여달라니까.”
남자 애들에게 빼앗은 스마트 폰 화면에는 해인이 나체로 찍힌 사진이 떠 있었다.
“니들 이거 어디서 구한 거야?”
“나도 몰라. 오늘 아침부터 핫해서 나도 보게 된 거야.”
“권해인은 자기 사진 이렇게 떠도는 거 알아?”
“지금쯤 학교에 쫙 퍼져서 알지 않을까?”
나는 해인의 자리를 눈으로 찾았지만 그 애는 보이지 않았다. 다음 수업이 시작되기 얼마 지나지 않아 해인이 교실로 들어왔고 반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분명 그 사진을 처음에 유포한 건 김현우임에 틀림없다. 내가 얼마 전 주말에 김현우 집에 놀러갔을 때 난 그애랑 난생 처음 성관계를 맺었고 그 사진은 정황상 그때 찍힌 거다. 언제 찍은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잠든 사이에 찍었나? 나쁜 새끼!
아침부터 나를 호출한 담임은 몹시 난처한 얼굴로 그런 사진을 찍은 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사진이 뭔지 처음에는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내 나체 사진이 SNS와 인터넷에 오늘 아침부터 떠돌고 있다는 말을 들었고 난 패닉 상태가 되어버렸다. 어리둥절한 내게 담임은 다음 날 아빠를 학교로 모셔오라고 했다. 어른들이 개입할 문제라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다음 날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수치스러운 건 둘째치고 내가 은결을 간접적으로 죽였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의 통쾌한 시선과 표정을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학교에 다녀 온 아빠는 내 방문을 소심하게 두드렸다.
“해인아! 아빠 들어가도 되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빠가 문 밖에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일은 학교에 가자. 아빠가 교장 선생님이랑 잘 이야기했어. 네 나이 때는 그럴 수 있다고 그러시더구나. 그러니까 자책하지 말고 넌 예전처럼 학교 다니면 되는 거야.”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침대에 누웠다. 살이 떨리는 분노와 배신감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려움에 입을 막고 울어버렸다. 카톡이 왔다는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현우의 메시지가 오고 있었다.
-반장! 진짜 장난이었어. 한 번만 봐주라.
-네가 잘 때 추억 삼아 잠깐 찍은 거야. 나도 유포할 생각은 없었어. 그냥 친한 애들이랑 카톡에 올려서 보다가 어느 미친 놈이 SNS랑 인터넷에 올린 거 같은데…….
-야! 솔직히 내가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니잖아.
-권해인. 너 계속 내 카톡 씹을래?
-미안해. 그러니까 내일 학교에서 만나 이야기 하자.
김현우의 어떤 변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진절머리나게 울려대는 폰을 벽에 던져 버렸다. 그제서야 카톡 수신음이 멎었다.
나는 그 후로 학교에 3일 더 가지 않았다. 아빠는 내 눈치를 보기는 했지만 학교에 빨리 가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아빠는 아침을 먹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해인아. 괜찮아?”
고개를 겨우 끄덕이며 말없이 밥을 욱여넣고 있는데 아빠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가해자 아버지가 유명한 국회의원이라고 하더구나. 자기들도 일이 크게 번지는 거 원하지 않는다고, 잠깐 어린 애들 일탈이라고, 책임지고 유포된 사진 삭제해 준다더라. 그러니까 이제 걱정 그만해도 돼.”
갑자기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네가 잘못한 건 없어. 해인아. 너랑 어울린 남자 애가 전학 오기 전 학교에서도 사고를 치고 와서 그 애 부모도 자식 교육 잘못 시켰다며 계속 사과하더라.”
“무슨……사고를 쳐?”
“수업 시간 중에 자위 행위를 했다나 보더라. 그래서 그게 문제 돼서 전학 오게 된 거래.”
현우의 얼굴이 머릿 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쩌면 나는 그 애의 진짜 얼굴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개새끼! 미친 사이코 새끼! 변태 새끼!‘
그 애의 웃는 얼굴이 떠오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속으로 욕을 계속 되뇌었다.
권해인이 학교에 다시 나오고 분위기는 역전되었다. 은결이의 죽음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아이들은 해인이 지나가면 수군대기 일쑤였다. 그 애의 최측근인 향단이 마저 해인에게 등을 돌렸다.
“대걸레 납시오!”
향단이가 해인이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지껄였다. 해인이 향단이에게 달려든 건 순식간이었다. 나체 사진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같이 몰려다녔던 그들 무리가 몸이 뒤엉켜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먼저 향단이에게 선방을 날린 건 해인이었지만 수적으로 그애에게 불리한 싸움이었다. 해인이 쥐어터지고 있을 때 내가 뛰어들었다.
향단이 입에서 거친 욕이 튀어나왔다.
“이 시발년아! 오하율, 니는 뭔데?”
소란이 일단락되고, 나와 해인은 화장실에서 조우했다. 우리는 아군도 적군도 아니었다. 하지만 얼굴에 흐르는 코피를 닦으며 권해인이 내게 말했다.
“고마워. 도와줘서.”
“아군이라서 도와준 건 아니야.”
해인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쳐갔다.
“네가 맞고 있는 게 불쌍하더라고. 꼭 너한테 괴롭힘 당하고 있던 은결이를 보는 느낌이었어.”
화장실을 나가며 하율이 말했다.
“그리고 이건 충고하는 건데, 지금 당장은 네가 피해자 같겠지. 그런데 너 그거 알아? 김현우랑 남자애들한테, 사람한테 그렇게 막 대해도 된다고 가르쳐 준 건 은결이를 괴롭혀 온 너였다는 거.”
하율이 나가고 화장실 거울을 쳐다봤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어 얼굴에 물을 끼얹고 거울을 다시 보는데 이은결이 날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러대며 화장실 빈 칸으로 도망쳤다.
“까아악!”
이번에는 은결이 목을 매고 화장실 칸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뒷걸음치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래에서 뜨거운 뭔가가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생리혈이었다.
엄마는 소동이 일어난 내내 병원에 다시 입원해 있었다. 집안은 스산하고 온기가 없었다. 나는 내 방에 틀어박혀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었다.
부엌에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아무것도 먹을 게 없었다. 내 18년 인생처럼 빈 껍데기, 빈 깡통, 빈 냉장고였다. 눈을 돌려 도마를 바라봤다. 장을 봐서 요리를 해 먹으려고 해도 엄마가 발광할 때를 대비해 아빠가 숨겨둔 식칼조차 당장 찾을 수 없었다.
다음 날 나는 현우를 찾았다. 그 애는 국회의원 아버지 빽 덕분에 자책감과 죄의식에서 쉽게 빠져나온 듯 보였다. 아이들과 활기차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애는 날 보더니 알 수 없는 표정이 되었다.
그러다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예전처럼 내게 손을 들며 아는 체를 했다. 얼굴에 환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애에게 다가가 어제 힘들게 찾아내, 감췄던 식칼로 그 애의 뱃가죽을 쑤셨다. 칼날은 처음에는 잘 안 들어가는 듯 하더니 방향을 틀자 신기하게도 쑤욱 들어갔다.
“아……아!”
그 애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그토록 부정했던 엄마의 유전자가 내 몸 속에 도도히 흐르고 있음을. 엄마의 유전자는 불온했지만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우리 둘을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미쳐 돌아 멍한 얼굴로 혼잣말을 했다.
“미안해……날 용서해……미안.”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