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곳 너머에 동그라미 나라가 있었습니다. 이 나라는 땅이 동그라미였습니다. 집도 동그랗게 지어졌습니다. 그 곳에 동글동글, 동그라미들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 이 나라에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이 아기는 온 몸에 올통볼통 혹이 나 있었습니다. 아기를 본 어른 동그라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엄마 아빠 동그라미가 가장 놀랐습니다. 둘은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말했습니다.
“동그라미 나라에 올통볼통한 아기가 태어난 적이 있나요?”
아무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몇몇 동그라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동그라미들은 이 아기를 부를 때
“올통볼통아!”
라고 불렀습니다.
올통볼통은 다른 동그라미 아이들과 모양이 달라, 어른들 귀여움을 듬뿍 받았습니다. 동그라미들은 올통볼통의 혹을 쓰다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혹을 쓰다듬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통볼통은 자기 혹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따뜻한 봄날, 올통볼통도 학교에 가게 됐습니다. 같은 반 어린 동그라미들도 올통볼통을 좋아했습니다. 동글이도 그 중 한 동그라미였습니다. 동글이는 올통볼통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올통볼통아! 안녕.”
동글이가 올통볼통에게 인사했습니다.
“…….”
올통볼통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올통볼통아! 이 과자 좀 먹어봐.”
동글이가 올통볼통에게 동그란 과자를 내밀었습니다.
“…….”
올통볼통은 고맙다는 말도 않고 과자만 받아먹었습니다. 동글이가 아니어도 친구는 많았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올통볼통이 집에서 만든 빵을 가져왔습니다. 올통볼통한 곰보빵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나눠먹으려고 가득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서 있던 동글이에게 빵을 나눠줄 차례가 되자 빵이 모자랐습니다.
동글이는 눈물이 났습니다. 배보다 올통볼통의 우정이 더 고팠습니다.
동글이는 올통볼통이 미웠습니다. 올통볼통이 자기 마음을 몰라줘 화가 났습니다. 올통볼통의 마음도 아프게 하고 싶었습니다.
“동그라미들아! 올통볼통은 다른 게 아니라 이상한 거래.”
동글이가 큰 입으로 짝꿍 동그라미에게 말했습니다. 그 동그라미가 두 동그라미에게 소곤소곤 말했습니다. 두 동그라미는 각각 네 동그라미에게 이 말을 널리널리 전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동글이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 둘 동그라미들의 귀가 팔랑팔랑 움직였습니다.
“맞아, 동그라미 나라에 올통볼통한 아이가 태어날리 없지.”
“올통볼통은 동그라미도 아니야. 올통볼통을 못살게 굴자.”
올통볼통도 친구들이 하는 말을 건너, 건너 전해 들었습니다. 올통볼통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아직 많은 친구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올통볼통은 속으로
‘괜찮아.’
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동글이는 그런 올통볼통이 더 미웠습니다. 자기 입만으로는 올통볼통의 혹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동글이는 이번에 입 대신 손으로 장난을 쳤습니다. 선생님이 아끼는 동그란 시계를 몰래 감춘 것입니다. 수업 시작 전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얘들아, 지금 선생님은 참 슬프단다. 내가 아끼는 동그란 시계가 없어졌기 때문이야. 혹시 내 시계를 본 동그라미는 나에게 말해주렴."
쉬는 시간에 동글이가 또 말했습니다. 큰 입이 아까보다 두 배는 더 벌렁거렸습니다. 자기도 입을 크게 벌리느라 무척 힘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동그라미들아, 동그라미들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다른 동그라미들이 대답했습니다.
“이때껏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이상한 일이야!”
“이상한 일은 이상한 녀석이 일으키지.”
“이상한 녀석이 누구야?”
“올통볼통!”
동그라미들이 함께 소리쳤습니다. 동글이와 다른 동그라미들은 선생님께 빠르게 굴러갔습니다.
“헉헉, 선생님. 올통볼통은 이상한 동그라미에요.”
맨 처음으로 굴러온 동그라미가 숨이 차서 힘들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상한 짓을 하고는 해요.”
두 번째로 굴러온 다른 동그라미가 말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선생님의 시계도 올통볼통이 장난을 친 건지도 몰라요."
여유롭게 마지막으로 굴러온 동글이가 말을 맺었습니다.
선생님은 처음에는 아이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도 보통 동그라미인지라 귀가 조금씩 팔랑팔랑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수업 시간 시작 전에 선생님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직도 시계를 찾지 못했단다. 그 시계는 우리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남겨주신 거야.”
마지막으로 종례 시간 때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나는 이상한 동그라미가 내 시계를 감췄다는 의심이 든단다. 그 동그라미는 반성하고 시계를 돌려주길 바란다.”
선생님 목소리는 아까보다 화가 많이 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선생님 눈이 자신도 모르게 올통볼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올통볼통은 선생님마저 자신을 도둑으로 몰자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그래도 혹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혹들이 남들에게는 없고 자기한테만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글이는 그런 올통볼통이 점차 더 미워졌습니다. 그날 저녁 밥을 먹으며 동글이는 아빠 동글이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동글이는 동그라미 나라의 재판관이었습니다.
“아빠, 아빠! 우린 반에 올통볼통한 이상한 아이가 있어요. 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올통볼통 혹들을 달고 있었지요. 그리고 오늘 선생님 시계를 감췄어요. 올통볼통은 자라서 무엇이 될까요?”
“…….”
아빠 동글이는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를 마주한 듯 했습니다.
“올통볼통은 선생님 시계를 훔쳤으니 우리 집도 훔치고 나중에는 동그라미 나라를 훔칠 지도 몰라요.”
아빠 동글이는 아들의 말에 크게 놀랐습니다. 나중에 동그라미 나라의 재판관 자리를 도둑맞을까봐 그게 가장 두려웠습니다.
아빠 동글이는 부하들을 시켜 당장 올통볼통을 잡아오게 했습니다. 올통볼통은 동그란 광장 가운데 외롭게, 혼자 있어야만 했습니다.
“이 놈 올통볼통아! 너는 이상한 동그라미다!”
다른 어른 동그라미들은 아빠 동글이를 말릴 수 없었습니다. 아빠 동글이는 나라에서 임금님 다음으로 힘이 센 재판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는 이번에 선생님 시계를 감추는 장난까지 쳤다.”
광장에 모인 다른 동그라미들이 올통볼통을 손가락질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동그라미 나라에는 진짜 동그라미들만 모여 살아야 한다. 이것은 동그라미 나라의 가장 중요한 법이다. 네 몸의 혹을 떼 내든가 아니면 이 나라를 떠나거라!”
“재판관님! 제발 우리 아이를 용서해주세요.”
올통볼통네 엄마, 아빠는 두 손 모아 사정했습니다. 혹을 떼 내면 올통볼통은 죽을 거고, 나라를 떠나면 올통볼통을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엄마 아빠의 눈물어린 호소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올통볼통은 나라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올통볼통은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혹들이 미웠습니다.
올통볼통은 구르고 굴렀습니다. 그리고 더 큰 동그라미들 나라에 닿았습니다. 이 나라의 동그라미들은 덩치가 올통볼통보다 훨씬 컸습니다. 더 큰 동그라미들이 올통볼통을 보고 말했습니다.
“저 동그라미 봐라! 하하하 몸에 혹이 났다.”
“이상한 동그라미다. 작은 동그라미 나라가 있다더니 거기서 왔나보네. 진짜 코딱지만 하다.”
더 큰 동그라미들은 큰 소리로 올통볼통을 놀렸습니다. 그 옆에 가만히 있는 동그라미들이 있었습니다. 이 동그라미들은 원래 작은 동그라미 나라에 살았습니다. 그러다 더 큰 동그라미가 되기 위해 이 나라로 이사를 왔습니다.
이사 온 동그라미들은 숨을 들이쉬기만 했습니다. 가짜로 덩치를 키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입을 열어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말을 하면 공기가 입 밖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덩치가 다시 작아질까봐 겁이 났습니다.
큰 동그라미들은 올통볼통을 세게 들이받았습니다. 올통볼통은 이 나라 밖으로 튕겨 나갔습니다.
올통볼통은 또 구르고 굴렀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나라에 닿았습니다. 이 곳을 보고 올통볼통은 깜짝 놀랐습니다. 올통볼통보다 몸에 혹이 더 크고, 많은 울퉁불퉁한 동그라미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동그라미들은 참 슬퍼 보였습니다.
올통볼통이 이 나라의 강가를 천천히 구를 때였습니다. 울퉁불퉁 혹이 많이 난, 한 동그라미가 강물에 자신을 비쳐 보고 있었습니다.
“으흑흑.”
그 동그라미는 큰 소리로 울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이 나라에 한 의사가 나타나 임금님께 말했습니다.
“임금님, 제가 혹들을 없애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울퉁불퉁한 동그라미들의 혹을 없애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더 아름다워집니다.”
임금님은 나라가 더 아름다워지길 바랐습니다. 의사는 임금님의 힘을 빌렸습니다. 그의 명령을 받은 군사들은 울퉁불퉁한 동그라미들을 마구 잡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강제로 혹들을 떼 냈습니다. 혹을 떼내는 아픔은 너무 심했습니다. 어떤 동그라미는 힘들어서 죽기도 했습니다.
“저 동그라미, 잡아라!”
올통볼통을 발견한 군사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올통볼통도 이 나라에서 군사들에게 쫓겨 다녀야 했습니다.
올통볼통은 도망치다 한 동그라미 소녀를 만났습니다. 소녀의 머리 위에 뽈록한 혹이 하나 나 있었습니다. 올통볼통이 소녀의 옆으로 굴러 갔습니다. 올통볼통이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
“응, 안녕!”
소녀의 예쁜 목소리를 듣고 올통볼통의 몸이 발그레해졌습니다.
“난 올통볼통이라고 해! 동그라미 나라에서 왔어. 넌?”
“난 도깨비야. 그냥 깨비라고 불러도 좋아.”
그때 갑자기 깨비네 엄마가 나타났습니다. 깨비 엄마는 올통볼통을 밀쳐내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썩 꺼져라! 이 괴물아!”
그러고는 동그라미 소녀의 혹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예쁜 아가, 저 괴물에게 가까이 가지 말거라. 너는 저 괴물과 다르단다. 이번 수술만 잘 받으면 너는 예쁜 동그라미가 될 수 있단다. 하지만 혹을 떼는 아픔을 이기지 못하면 너는 평생 저 괴물처럼 살아야해.”
깨비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깨비는 엄마 손에 이끌려 옆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건물 간판에 칼과 망치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올통볼통은 더 이상 귀여움 받는 동그라미가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동그라미였습니다.
올통볼통은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아서 슬펐습니다. 너무 슬퍼서 가만히 울고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르지 않고 마냥 그 자리에 멈춰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올통볼통은 다시 힘을 내기로 했습니다.
‘용기를 내서 다시 한 번 굴러보자.’
올통볼통은 우선 구르는 모습부터 바꿨습니다. 예전에는 아기처럼 돌돌 굴렀습니다. 이제는 어른들처럼 세차게 굴렀습니다. 올통볼통은 거친 땅바닥에 혹들이 닿는 아픔을 참았습니다. 구르고 또 굴렀습니다.
구르고 굴러 올통볼통은 새 나라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이 나라는 앞의 두 나라와 달랐습니다. 우선 이 나라에는 세모와 네모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트 모양의 아이도 있었습니다.
올통볼통은 놀랐습니다. 세모와 네모가 스스로 괴물이라 생각하지 않아서였습니다. 올통볼통은 한 번 더 놀랐습니다. 하트의 별명이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습니다.
올통볼통과 세모, 네모 그리고 하트는 금방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올통볼통이 친구 하트에게 물었습니다.
“하트야! 네 눈에 내가 무엇으로 보이니? 괴물로 보이지는 않니?”
그 말을 들은 하트가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아하하, 너 정말 바보구나!”
하트가 올통볼통을 친구들 쪽으로 돌려세우며 말했습니다.
“친구들아! 이 뾰족뾰족한 녀석을 우리가 뭐라고 불러야 할까?”
“…….”
모두들 올통볼통을 물끄러미 쳐다봤습니다. 올통볼통은 친구들이 뭐라고 할지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친구들이 웃으면서 함께 소리쳤습니다.
"별!"
올통볼통은 깜짝 놀랐습니다. 친구들이 자기를 별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올통볼통은 당장 이 나라의 샘으로 달려갔습니다. 맑은 샘물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습니다.
세차게 구르는 사이 여러 개의 혹들은 다듬어졌습니다. 더욱이 그 혹들은 아름다운 뿔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올통볼통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눈물 젖은 별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