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도를 아십니까에 붙잡혀 간 썰!!!
늦은 나이, 면접에 대비해 스피치 학원에 등록했다. 강사가 말을 걸기라도 하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겨우 ‘네’ 하거나 단답형으로 말하는 게 전부였다. 적적하던 차에 한 남학생이랑 얼굴을 익혔다. 대학교 졸업반이라고 했다. 녀석이랑 옆자리에 앉으며 친해졌다.
하루는 녀석에게서 연락이 왔다. 날 잡아서 밥 한 번 먹자고 했다. 붙임성 있게 다가오는 녀석이 정답게 느껴졌다. 같이 밥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날 즈음
“형님도 힘드실 텐데 반반씩 내요.”
하며 제 밥값을 건넸다. 밥값을 계산하면서 날 배려해주는 녀석에게 내심 고마웠다.
몇 주 뒤 스피치 강의가 막바지일 무렵 또 전화가 왔다.
“형님! 강의도 다 끝나 가는데 우리끼리 축하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밥 한 번 더 먹자는 녀석의 제안이었다. 이번에는 아르바이트 비를 얼마 전에 받았다며 자기가 꼭 밥값을 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딜 좀 같이 가자고 했다. 사주를 보러 갈 건데 혼자 가기 그렇다고 나랑 가면 좋을 거 같다고 했다.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지금 도착했습니다.”
약속 장소에 이르렀을 때 녀석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건물 2층에서 은테 안경을 낀 사내가 내려와 우리를 맞았다. 사내가 안내하는 방으로 갔는데 물 두 잔을 내 왔다. 순간 알 수 없는 느낌에 물을 마시지 않았다.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물을 마셨다.
사내가 하는 말이 사주를 볼 텐데 녀석과 나랑 딴 방에서 봐 주겠다고 했다. 녀석은 건너편 방으로 가고 나는 남아 사내한테서 사주를 봤다. 그가 내 이름이랑 생년월일을 종이에 적더니 이말 저말 해댔다. 전부 이때껏 녀석에게 나에 대해 내가 해 준 말들이었다.
‘아이 씨, 낚였구나!’
내색은 않고 급한 일이 생겼다며 그 방을 나왔다. 거실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어린 여자가 보였다. 유달리 크고 빨갛게 익은 사과를 제사상 위에 올리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말하니 녀석과 오늘 만난 사람들이 ‘도를 아십니까?’ 일당이라고 했다. 그 날 녀석에게서 얻어먹은 돈가스를 다 토해냈다.
연락에 묵묵부답으로 대응하니 녀석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마지막 수업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수업을 같이 듣던 어르신이 내게 물어보셨다.
“맨날 같이 앉던 친구는 어디다 두고 오늘은 웬일로 혼자야?”
마음이 아려오는 걸 느끼며 대답했다.
“어르신, 그 사람은 친구가 아니고 나이가 제 막냇동생뻘 됩니다.”
그동안 녀석을 정말 막냇동생처럼 생각한 모양이었다. 녀석 얼굴에 가끔 나 있던, 감자에 난 싹처럼 새파랗던 멍 자국이 영 마음에 걸렸다. 강사가 오늘 녀석이 왜 안 왔는지 물었다. 재수강할 사람을 찾는 모양이었다.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녀석이 밉거나 하지 않았다. 지금 몸담고 있는 그곳을 나와 좋은 일자리를 찾아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건 일찍이 깨닫지 못한, 살아오면서 쌓아온 사람에 대한 신뢰의 힘에서 돋아난 감정이었다. 가족과 친구로부터 때로는 마주쳤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친절과 배려는 미움이나 증오의 응어리를 녹여내고도 남았다.
일상은 거대한 불행을 조금씩 잠식해 들어가 무너뜨린다.
가끔 시내에 가면 ‘도를 아십니까?’에서 진화(?)한 사람들을 본다. 그들 손에는 이제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이 무정한 세월을 탓하기보다 용기 내어 그들에게 말 걸고 싶다.
“사람의 도를 아십니까?”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