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_스무살의 붕어빵

청춘! 이대로 질 수 없다

by THe STory lab

스무 살 어느 날, 대학 등록금 낼 돈을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돈을 찾아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내 뒤에 서 있던 검은 가죽 잠바의 사내가 바짝 내 쪽으로 몸을 붙였다. 그때까지 아무 의심도 하지 못했다. 사내가 내 스무 살 청춘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설마가 확신이 된 것은 버스에서 내린 한참 뒤였다. 코트 안쪽 주머니가 가벼워진 듯해서 뒤져보니 지갑 그리고 등록금을 넣어두었던 흰 색 봉투가 사라졌다. 엄마, 아버지가 힘들게 일해서 만들어주신 돈이었다.


부모님은 어려운 살림에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대학 공부까지 시키느라 밤늦게까지 일하셨다. 어머니는 들고 다니는 손가방 하나가 없어 20여 년 전 선물 받은 가방을 들고 다니셨다. 그래도 대학 등록금 한 번 마감 날짜가 지나서 주신 적이 없는 생활력이 강한 두 분이셨다. 저축도 열심히 하셔서 지은 지 오래된 집에서 새 아파트로 이사도 갈 예정이었다. 항상 정직과 성실을 삶의 가르침으로 강조해 오셨던 두 분이었다.


등록금을 잃어버리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엄마,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듯한 표정으로 길을 걸었다.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내렸다. 하늘도 우는 걸 보니 내 마음은 더 울적해졌다. 이 무슨 비참한 꼴이란 말인가?


집에 돌아오니 아무도 없었다. 내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등록금을 잃어버렸으니 이제 어떡한다? 억울하고 엄마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속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오후 다섯 시였다. 집안은 아무 기척도 없이 조용했다. 부엌에서 찬물 한 사발을 들이켜 마시고 나니 이번에는 슬슬 배가 고파왔다. 마침 엄마가 쪄 놓고 가신 감자를 씹어 먹으며 배를 채웠다.


‘어떻게 하지?’

도무지 소매치기 당한 대학 등록금을 메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부모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내 힘으로 돈을 벌어 등록금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다가오는 학기는 휴학을 하고 한 학기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을 마련해야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닿았다.


‘그래,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면 등록금 정도야 한 학기동안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무 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이 없을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우선 시내에서 일자리를 구해봐야겠다는 심산이었다.


다음 날 아침 9시에 시내에 닿았다.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난 뒤, 목이 타서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를 사 먹었다. 목이 탄 만큼 속도 타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늘 안으로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데, 아르바이트생 구함이란 글자를 찾아다녔지만 쉽게 눈에 띄지가 않았다. 시간은 정오를 넘어서고 있었다. 시내에 사람들이 아까보다 늘었고 눈에 띄게 문을 연 가게들이 많아졌다.


한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 구함이란 팻말이 보였다. 사주카페였다. 손님들이 차를 마시면서 무료로 사주를 볼 수 있는 커피숍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에는 내게 용기가 필요했다. 심호흡을 몇 번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장님은 없고 대신에 먼저 일하고 있던 아르바이트생 선배가 면접을 본다고 했다. 나한테 이것저것 묻더니 다음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키가 크고 영화 속 배우처럼 잘생긴 형이었다. 카페 서빙 알바는 외모를 많이 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그 사주카페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아마 내 사주가 그 카페랑 맞지 않은 듯싶었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한 분식점에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사장님이 직접 면접을 봤다. 내 덩치를 보더니 다짜고짜 미련한 곰보다 재빠른 여우가 낫다 하면서 일해보고 싶다는 내 말을 차갑게 잘라먹었다. 그러고 보니 분식점 알바들이 토끼처럼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결국 시내에는 내가 일할 만한 데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때 마침 한 동네 사는 건호 형한테서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요점은 자기가 시내에서 붕어빵 장사를 할 건데 저녁부터 밤까지 일할 수 있겠느냐는 제안이었다. 하늘이 내게 주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호 형이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붕어빵 장사는 그로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건호 형이 낮 2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했고 나는 7시부터 밤10시까지 일하게 되었다.


붕어빵 장사는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붕어빵 만드는 기술이 필요했다. 자칫 밀가루 반죽과 팥앙금의 조합이 맞지 않으면 붕어빵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고 터져버렸다. 며칠간 건호 형이 옆에서 봐 주기로 했다. 어느새 나도 점점 실력이 나아졌다. 붕어빵 장사는 추운 겨울이 성수기라 제법 장사가 잘되었다. 건호 형과 하루 수입을 나누었다. 당연히 다섯 시간 일하는 건호 형이 수입을 많이 가져갈 줄 알았는데 고맙게도 형은 저녁이랑 밤 시간에 손님들이 더 많다면서 5:5로 번 돈을 나누자고 했다.


처음 며칠간은 하루 만 원어치 벌기도 힘들었다.

“붕어빵 사 가세요. 맛있는 붕어빵이 있습니다.”

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게 쉽게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수줍음 많이 타고 숫기 없는 나였다.


붕어빵 장사를 해서 돈이 생기면 바로 은행 ATM기에 달려가서 내 통장에 돈을 입급시켰다. 통장 잔액이 드디어 10만원을 넘었다.


건호 형은 사람이 좋았지만 내가 야단을 맞는 날도 있었다. 시내에서 간호원 일을 한다는 예쁘장한 누나랑 친해졌는데 내가 1000원에 4개 줘야 하는 붕어빵을 서비스로 3개 더 얹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나는 눈치도 없이 낮에 와서 건호 형에게 서비스를 더 달라며 내가 붕어빵 세 개 얹어 준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그날 나는 건호 형에게 꾸지람을 크게 들었다. 다 같은 사람인데 누구는 4개 주고 누구는 7개씩을 갖고 가는 게 말이 되냐고 그렇게 장사하다가는 앞으로 무슨 사업을 하든 말아먹는다고 했다. 형 말이 다 맞는 얘기였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나와 건호 형은 꽤 많은 돈을 모았다. 내가 돈을 벌고 있고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이 기뻤다.


나와 건호형의 붕어빵 사업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옆집 사는 아주머니가 내가 시내에서 붕어빵 만들어 파는 걸 봤다고 엄마한테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아주머니는 대학교 다니면서 힘든 알바까지 뛴다며 칭찬하는 투로 한 말이었지만 그게 엄마를 더 속상하게 했다.


그날 밤 엄마는 공부는 안 하고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돈만 벌 궁리만 해서 되겠느냐고 나를 심하게 나무랐다. 나는 사실대로 등록금을 잃어버렸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고 엄마는 그런 일이 있으면 당신에게 말을 해야지 웬 붕어빵 장사냐고 네 아버지 아시면 큰일 난다고 당장 내일부터 붕어빵 장사를 걷어치우라고 했다. 붕어빵 장사도 신성한 노동임에는 틀림없는 일이지만 엄마는 그에 앞서 자식에게는 고된 일을 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우선이었다. 그날 밤 엄마, 아버지의 안방은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다음날 셈을 해보니 붕어빵 장사를 해서 모은 돈으로 내 한 학기 대학 등록금을 대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1000원에 붕어빵 네 개를 팔면 하루에 100마리를 팔아도 25000원이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돈을 직접 벌었다는 생각에 붕어빵 장사를 하는 내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무작정 계획 없이 시작한 어설픈 창업 아닌 창업이었다. 몸은 고되고 추웠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던 그해 겨울, 스무 살 붕어빵의 추억이었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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