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제품을 버전업을 하느라, 운영에서 들어오는 각종 VOC를 치느라, 그리고 제품뿐만 아니라 팀을 궤도에 올리느라 바빴습니다. 꼭 그것뿐 만은 아니고 저의 '본업'도 답보상태에 빠져있었어요. 그래서 주눅도 들었고, 막막했고 쓸 말도 없었습니다. 최근의 제 고민은 이거였습니다. 이렇게까지 서로 방향성이 안 맞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런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십시오. 가끔은 해야 될 때가 있어요.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스타트업에서 린하게 일을 끌고 나가다 보면 늘 시간과 리소스에 쫓기게 되고 이땐 고퀄리티를 뽑느라 시간을 지체하는 게 더 나쁘다. 퀄리티를 다소 포기하더라도 작게 과제를 끊고, 이해관계자와 맞춰가면서(sync) 다음 단계 진도를 빼는 게 좋다. Low-fi 와이어프레임에 공을 너무 많이 들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필요하면 화이트보드에 찍찍 그려서라도 어느 정도 생각의 합을 맞추는 게 좋다.
그런데 내 의도가 너무 안 먹힌다, 나는 그 flow를 다 고려한 게 맞는데 자꾸 하나도 고려가 안 됐다고 한다, 억울해서 더 이상 못해먹겠다. 그땐 눈으로 한번 보여줄 때. Mid-fi 프로토타입은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Low-fi보다는 진일보한 결과물을 의미한다. 화면의 이동, 워크플로우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설계한다. 프로토타입 툴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 액슈어, 피그마 등을 이용하면 쉽게 인터렉션을 표현할 수 있다.(powerpoint로도 물론 가능하다.) 주요 flow를 화면으로 표현해두고 인터렉션을 꾹꾹 찍어준다. PT를 생각하며 빠진 페이지가 없는지 돌려본다. 준비가 되었으면, 가서 보여준다.
후일담: 저는 여전히 여기까지 sync를 맞춰왔기 때문에 드디어 서로 어느 정도 fit이 맞는 프로토타입까지 제작하여 PT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아니 이걸 원하시는 거면 진작 말을 하시죠 대표님. 문서에 표현을 잘못했나, 방향성이 다른가, 접근이 잘못됐나 한참 돌아왔잖아요. 진짜로 내가 고려한 모든 사항을 '한눈에' 보길 원하셨던 거고... 사실 그건 프로토타입 형태가 아니라 한판 펼쳐서 정리해도 될 일이었다.원하는 바를 명확한 단어로 디렉션 주시는 게 서로의 감정적 에너지를 보존하는데도 도움이 되었을 텐데, 아쉬움이 든다. 아마 단어를 스스로 가지고 있지 않으셨거나 너무나도 좋은 staff들과 일을 해와서 저 같은 애송이는 처음이었나 보죠.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거든 좀 더 일찍 준비해서 가져가 봐야지.
P.S. 자세한 flow나 픽셀 단위의 정교함까지 요구하지는 않지만, 프로토타입을 제작한다는 건 품이 안 드는 건 아니어서 잔업을 좀 해야한다, 이게 요즘 감성은 아닌 것. 하지만 한번쯤은 해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해. 특히 우리 같은 스타트업은. 그리고 지금같이 시장 상황이 안 좋을 땐 더욱. 힘을 쥐어짜 내야 할 때가 있지. 일단 기안이 통과돼야 그다음이 펼쳐지지 않겠어요. 궤도에 올릴 때까지만 좀만 더 힘 내보자. 몸 잘 챙기고. 휴가도 잘 챙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