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우리 팀도 주니어 충원이 계속되면서 '리더'짓을 할 수밖에 없어졌다. '나는 리더인가'라는 질문을 불과 1년 전에도 예사로 했다면, 이제는 아니다. 나는 리더일 수밖에 없다. 일을 정의하고, 잘라서 나눠주고, 방향을 헤매고 있다면 제시해주고(왜 그 수많은 선배들이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를 숨 쉬듯이 시전 했는지 잘 알겠다.) 팀원이 지치지 않도록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 살피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아 이건 시니어의 롤이다. 이 이전 조직까지는 각개전투였으므로 나는 지금 이 롤을 처음 수행하는 건데 선배들로부터 한결같이 듣는 말은 이거였다. '네가 지금 생각하기에 네가 할 만큼 중요하지 않은 일은 나눠줘라. 주니어 입장에서는 그 일만 해도 버거울 것이다.' 맞다. 리더가 되면 리소스 관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제 팔로워뿐만 아니라 본인 리소스까지. 이걸 지금 내가 붙잡고 있어야 해?라는 생각이 든다면 조각으로 나눠 팔로워에게 나눠주는 게 맞다. 성과는 내가 아니라 팀이니까.
경력이 올라가면 주변 동료들과 팔로워를 같이 끌고 올라가야 할 시점이 오게 된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나 같은 경우는 비공식적인데(리드 타이틀을 달고 있는 건 아니니까. 많은 스타트업이 그렇죠?) 그렇다고 리더가 아닌 건 아니다. 그동안 참고했던 콘퍼런스, 책 같은 걸 생각날 때마다 팀 슬랙 방에 공유했고 실물로 책도 전달해주고 팀 주간회의 앞, 뒤 시간을 활용해서 옆 사람들이 기운 나게 하는 걸 내 숨은 챌린지로 삼기로 했다. 가령 위클리 미팅에선 이런 것들을 물어봤다. 요즘 나는 주로 질문하는 사람이다.
-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뭐고
- 그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뭐가 고민되었고,
- 다음 주에 할 일에 뫄뫄도 포함되야되는 건 아닌지
- 혹시 아쉬운 점이나 좋은 점은 뭐였는지. 요청하고 싶은 게 있는지. 그 외 하고 싶은 말
문서를 보고받는 자리에서는 이런 걸 물어봤다.
- 여기서 제일 중요한 정보가 뭔지
- 왜 이렇게 구성했는지. 제일 중요한 정보가 잘 표현된 게 맞는지. 다른 데서도 이렇게 쓰이고 있는지
- 법적인 부분이나 더 챙겨야 될 부분은 없는지
주로 '일'을 나눠주고 체크하는 게 내 일이긴 하지만 특히 아쉬운 점이나 고민되는 점을 이끌어내기가 제일 어려웠다. 일단 현황이 파악되면 기대 수준을 명확히 해 주고 내 입장에서 고민되는 점을 자연스레 나눴다. 잘하고 있냐면 그건 좀 애매하지만 계속 시도해보기로 하자. 일단은 말을 해도 되는 분위기를 계속 가꿔가려고.
장기적으로는 팀원이 지치지 않으려면, 지금 하는 일이 앞으로의 일에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명확히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이미 성장하는 서비스를 가지고 있다면 참 쉬운데 0에서 1을 만드는 단계라면 어렵다. 그냥 보여주는 수밖에. 할당하는 일 자체가 의미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언젠가 의미 있는 중요한 단위의 할 일(백로그)을 관리하는 게 리더의 일이라는 걸 지나가다 보았다. 과연 그러한 것이, 책을 읽다 비슷한 구절을 또 발견했기 때문이다.
경력을 설계해주는 것이 팀이 역향을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프로덕트 리더십>, 리처드 밴필드, 마틴 에릭손, 네이트 워킹쇼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실무자는 참 많은 디테일을 챙기고 있다. 그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실무자를 믿고 그의 전문성을 자꾸 상기시켜줘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을 까먹을까 봐 미리 정리해둔 게 있지.
면접에도 자꾸만 들어가게 되었는데, 위에 언급한 책에 해야 할 질문 리스트도 나온다. 와. 과거의 나 근미래에 필요한 내용을 잘도 찾아 읽어놨구나. 이제 적용을 하자.
- 해결하려는 문제는 무엇인가
- 그 문제는 해결해야 할 가치가 있나
- 경력이 완성되기까지 몇 년이 걸릴까
- 어릴 때 어떤 활동을 했나 그게 왜 매력적이었나
- 그게 혹시 지금 커리어에 연결이 되어있나=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마음을 사로잡는 친근한 활동을 찾아내기 위한 질문
좋은 사람을 뽑고, 그들이 동력을 잃지 않게 동기 부여하면서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 거. 그게 시니어의 역할인 것 같다. 시야를 넓히자.
아직은 아니지만 타이틀마저 팀장이 된다면 추가로 해야 할 일을 미리 챙겨보자:
1 on 1을 할 수 있도록 분기별로 미리 잡아둔다.
원하는 게 뭔지, 청사진이 뭔지 내가 뭘 도와줄 수 있는지 체크한다.
칭찬이나 피드백을 뭘 했는지 적어본다.(self monitoring)
미래의 나야 오늘은 일단 메모만 하고 넘어간다만 나중에 꼭 다시 보렴.
이 모든 것에 앞서 지금의 팀원들은 알아서 너무나도 잘해주고 있어서 감사하다. 딱히 기획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쩜 찰떡같이 더 고민해야 될 부분까지 고민해서 결과물을 가져온다. 게다가 임무를 받으면(꼭 할당받은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재미있어하고, 우리 팀끼리 뼈를 묻어야겠네 성공하는 건 꼭 봐야겠네 그런 얘기 맨날 하는데 다들 3년+보는 것 같아서 든든함. 나도 이번에야말로 회사가 성공할 때 옆에 꼭 붙어있어야지. 내가 있어서 우리가 이탈하지 않고 할 수 있었단 소리를 꼭 들어야지. 이제부터의 성공은 나의 성공이 아니라 팀의 성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