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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속도 Apr 04. 2017

(재업) 재개발 예정지구의 세입자

동네에 마음을 듬뿍 줄 여유는 없지만

이전에 올렸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 직전 글과 이어보면 재미있을 거에요. 동네를 마지막으로 담은 영상은 여기에 있습니다.



살아왔던 동네에 마음을 많이 주는 편이다. 직장 덕에 잠시 지냈던 제주도 물론 좋았다. 하지만 사택이고 우리 말곤 아무도 없는 중산간이기도 했고 그냥 풍경의 하나가 된다는 느낌이 좋았다. 이주민들, 그들이 새로 만들어 가는 문화, 원주민들이 만들어 온 역사, 환경 그냥 섬 자체. 육지에서의 '내' 동네엔 좀 더 구석구석 마음을 주게 되더라. 오며 가며 마주하는 만만한 것들. 가령 골목이나, 고양이, 나무, 불빛 같은 것들.... 아주 어렸던 시절의 오래된 동네를 기억한다. 동네 친구들과 뒷산을 뛰어다녔고 놀이터에 버려진 화분을 주워 소꿉놀이를 했다. 그 이후 신도시에서 살았는데 별 기억이 없다. 아마 골목, 마당, 동네 사람들 그런 게 그리웠던 거 같기도 하고 학창 시절이 누구에게나 그랬듯 진학 이외에는 관심이 없기도 했고. 자취 이후 다시 생긴 내 동네들을 운이 좋게도 나는 모두 좋아한다. 동네 이야기는 지난번에도 잠시 쓴 적이 있지만, 살아가는 얘기는 늘 재미있다. 그런데 오늘은 아쉬운 점에 대해서 얘길 해보려고.

동네 할매들과의 갈등은 늘 지겹다. 오래된 동네의 노인들은 동네 젊은이들한테 간섭하길 좋아한다. 친구들이라도 놀러 오면 지나가던 할아버지는 빤히 집에 들어갈 때까지 쳐다보고 있다. 교류가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편인데 세상에 우리 집 집주인은 남의 집에 쓰레기 무단투기를 하라고 시킨다. 밤에 두면 괜찮대. 집 앞에 쓰레기가 쌓이는 게 싫다며. 재개발지구라 수리도 안 해준다.(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나서야 이주가 시작되었다.) 우리 집 난방은 고장 나있으며, 친구네는 수도에서 녹물이 나온다고 했다. 우리 집 계약서에는 재정비 촉진기구로 지정되어 있으니 만약 사업이 진행되면 잔여 계약기간이나 이주비 지급을 주장할 수 없다고 쓰여있다. 학창 시절 배웠던 난쏘공도 하이퍼 리얼리티였어.. 매거진 02 에선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세입자로서 집주인 분과 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면, 집을 고친다는 생각을 잘 안 하시는 것 같아요. 조금 있으면 재개발될 것이고, 그때 어차피 한 번에 무너질 테니까요. 세입자도 얼마 살다가 또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될 테니 집을 고친다는 생각을 하기 힘들죠.
그것이 재개발의 제일 몹쓸 점이죠.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개발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집이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것으로 바뀌어버린 것이죠. 하지만 점점 지가가 오르고, 수지타산이 안 맞게 되고, 인구수도 줄어들고, 세계 경기도 안 좋아지면서 오히려 재생이라는 문제가 떠오르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다행입니다.

우리집 얘긴 줄 알았네. 언젠가 건넛집 할머니는 세워둔 오토바이를 문제삼았다. '왜 여기 두냐, 저 널븐데 둬라. 둘 데 없음 타질 마. 지난번에도 얘길 했는데....' 그 와중에 다른 곳을 가리키며 나와 눈을 마주치진 않으신다. 싸움은 하기 싫으신가 보다. (그런데 세워둔 곳은 당신 집 앞이 아니고 건너편 집 앞이라고요... 우리 집 앞에도 빼곡히 큰 차들이 주차되어있는데 어쩌라고...) 나도 대꾸 않고 갈 길을 간다.

마음은 찜찜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도시정비의 문제다. 우리끼리 갈등이 생기고 싸운다고 뭐 달라질 것도 없어.  집집마다 내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붙여 둔 것, 동네의 골목마다 지린 내가 진동하는 것, 길고양이에 대한 반감, 주차 문제 이게 개개인이 못돼서 일어나는 일들일까. 공간이 생기고 규칙을 만들어나가면서 해결될 일이고, 그건 몇몇 사람들 힘만으론 할 수 없다. 동네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있는 게 자치인 거고. 그렇지만 우리 동네 선거 때 나오는 공약은 재개발이행밖에 없지. 진짜 해결방법이 재개발 말곤 없을까. 동네엔 청약통장 삽니다, 그리고 재개발 조합 모임의 현수막이 늘 걸려있다.

청약저축이 양도가 되는거였나?

 모임이 열릴 때면 할아버지들끼리 언성이 높아지곤 한다. 무심하게 그 곁을 지나치는 나는 딴 나라 사람이니 것 같다. 재개발 이상하다. 싹 밀어줄게 그러니까 그동안은 그냥 살라니.... 그동안 왔다 가는 세입자만 입 다물고 눈감고 지내면 되나. 아무리 언제고 밀어버린대도, 오래된 동네의 주차랑 쓰레기 처리, 하수 쪽은 정비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지금 당장 살아가는 사람은 뭐가 되냐고... 사람들이 살아갈 기본 조건들은 가꿔 줘야 내 동네를 좋아하는 마음들이 생기지 않겠냐고.. 그래야 갈등도 줄어들고 꽃이라도 심고 이야기도 생기지.  


그래도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나름의 방식들로 꾸며둔 집들도 보인다. 아마 세입자가 아니라 집주인들이겠지?

코카콜라 화분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은 골목

하수처리도, 쓰레기 처리도, 주차도, 일단은 공간이 확보되야되니까, 재개발로 정비하면 더 편한건가요. 다른 대안적 방법은 정말 없냐고.. 더 작고, 지금 실행 가능한 액션플랜들을 충분히 짤 수 있을 것 같은데.

찾아보니 이런 도시계획 관련 사업이 있긴 하네요.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관련해서 찾은 옥바라지 골목 기사 

도시계획이란 건 결국 사람들이 마음이 풍족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뭐 그런 주거환경을 가지도록 하고 싶은 거 아니었나? 난 그렇게 배웠었는데. 도시재생사업을 찾아봐야겠다.

청약통장 매매는 불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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