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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속도 Dec 18. 2024

재개발지구를 제 발로 걸어 나온 지...

영원히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 보광동 우사단로

5년 전 어느 날, 귀가하는 길에 현수막이 내걸렸다. 사실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재개발 지구 지정된 지가 언젠데 이러고 또 얼마나 걸릴지 몰라. 이상하게 빛나는 쌔 간판의 부동산이 대로부터 골목 어귀까지 줄지어 들어찬 풍경 너무 이상했다. 언제 이렇게 됐더라? 그전에 무슨 가게였더라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 너무했다. 좋아하던 카페 양옆으로 부동산만 세 개. 그리고 돌아들어 오는 골목 꾸미꾸미 전부 다!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다. 사람 없는 부동산에 지도만 빛나고 있고 그 지도엔 동네 사람들은 없어 보였다. 그 동네에 속해있는 나도. 지도의 형광불빛은 새로운 동네의 조감도와 퍽 어울렸다. 이러다 동네가 사람 살지 않는 기운을 품게 되는 건 순식간이겠구나 싶었다. 그즈음 작은 가게들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독립 영화관 책방 펍. 그리고 사람까지도. 모두들 약속하기라도 한 듯 어디로 떠나버리는 걸까.


오래된 동네니까 내 방도 물리적으로도 버티기 힘들어졌다. 비둘기 새끼가 언제부턴가 같이 살더니(알람이냐고, 5시마다 울어재꼈다) 어느 날은 베란다가 물바다가 되었다. 마지막 남은 인내심이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여기서의 유통기한이 지나버렸음을. 아, 이제 나는구나. 다음으로 없어질 것은. 헛헛함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더 좋은 주거환경을 찾아 나섰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동네를 뜰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작게나마 홈바, 서재, 작업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에어컨과 건조기를 갖춘. 드디어 조금은 정착한 기분이 들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했다. 그 맘때 다행히 금리가 쌌고, 내가 마련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홈스위트홈을 찾아 나설 수 있었다. 또 한 번의 이사와 결혼이 있었고... 다시 들른 옛 동네. 


재개발은 내가 떠나고도 꼬박 5년이 걸렸다. 드디어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은 이상한 기분이 들게 했다.

우리 집으로 걸어가던 길. 매트리스며 뭐며 버리고 간 것들이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개발이 되고 나면 아마 주소도 달라지겠지? What 3 word로 위치를 박제해 본다. ///toddler.stunner.lazy


거기 아직 살고 있을 때, 그 동네 이야기를 담았던 아래 이야기들이 어쩐지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내 기록도 남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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