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의 행운과 행복에 대하여
그러니까 이건, 꼬박 1년 8개월이 지나서야 쓰는 어느 가을날의 이야기이다.
재작년 여름은 너무나 지독했다. 지독하게 더웠고, 지독하게 습했으며, 지독하게 힘들고, 지독하게 길었다. 누군가는 마음이 힘들 때 '겨울이 찾아왔다'고 말하는데 나는 때아닌 여름의 방문으로 꽤 오래 지쳐있었다.
이제야 막 회사에 적응했나 싶던 그해 여름, 팀이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됐다. 설상가상으로 함께 의지하며 일했던 팀원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모든 동료들이 떠나고 혼자 회사에 남기까지는 몇 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지겹던 여름이 지나고 찾아온 가을,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나와 같은 날 같은 팀에 입사했던, 내 동갑내기이자 유일한 동기의 퇴사가 결정된 어느 날. 우리는 우리 나름의 헤어짐을 기념하며 나들이를 갔다.
"사회 생활 하다 보면 다 겪는 일일 텐데 우린 좀 일찍 겪은 거라고 생각해야지, 뭐."
볕이 잘 드는 한강 둔치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리며 화를 내기도 했다가, 깔깔 웃기도 했다가, 서로를 토닥이기도 했다. 같이 일할 적에 한 몸처럼 일했던 우리였던 만큼 한 사람이 빠졌을 때의 공허함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동기가 떠나는 걸 붙잡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씩씩하게 말할 수 있었다.
"너 없어도 나 잘 살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건 어쩌면 나에게 거는 주문이기도 했다. 또 괜한 눈물바람으로 헤어지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우리는 웃으면서 얘기를 정리하고, 조금은 쓸데없는 일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돗자리 주위에 핀 세잎클로버들 사이에서 네잎클로버를 찾기로 한 것이다.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 먼저 찾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그 행운을 선물해 주기로 하고 동기와 나는 각자 네잎클로버 찾기 삼매경에 빠졌다.
"이거 하나 하는 데도 우리 성격 보인다. 넌 돗자리 나가서 찾고, 난 돗자리 안에서만 찾고. 넌 회사 나가고 난 남는 거랑 비슷하지 않아?"
쓸데없는 일에 쓸데없는 말도 곁들이면서 말이다.
조금 허무하지만, 우리는 네잎클로버를 찾기 위해 꽤 긴 시간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개의 네잎클로버도 찾지 못했다. 먼저 포기한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렇게 클로버가 많은 곳에 어떻게 한 개도 안 보일 수가 있냐고. 그때까지도 끈질기게 네잎클로버를 찾고 있던 동기가 물었다.
"세잎클로버는 꽃말이 뭐지?"
나는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보곤 답했다.
"행복이래."
내내 쭈그려 앉아있던 동기는 그제야 허리를 곧추세우며 일어섰다. 야, 네잎클로버 없으면 어떠냐.
"널리고 널린 게 행복인데!"
이렇게나 행복이 널리고 널려있는데 행운 하나 안 보이는 게 뭐가 대수냐고. 동기의 씩씩한 외침에 나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완전 정답. 지니어스가 따로 없네.
돗자리 바깥 푸릇푸릇, 옹기종기 모여있는 세잎클로버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우리는 네잎클로버에만 집중하느라 이렇게 많은 세잎클로버들을 못 보고 있었네. 행운은 눈에 잘 안 보여도 행복은 어디에든 있는 건데. 그리고 동시에 또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동안 앞만 보고 있느라 못 봤다는 걸.내 발밑에 널려있는, 수많은 세잎클로버, 수많은 행복들을.
그날 이후 1년 8개월이 지난 올해 여름, 나는 회사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갈 곳도 정해지지 않았고 당장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이지만 일단은 그동안 홀로 꿋꿋이 지키던 이 돗자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지금은 이 네모난 공간을 벗어나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이 퍼져있는 세잎클로버를 만나야 할 때라는 걸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세잎클로버들 사이를 거닐다가, 가끔은 쭈그려 앉아서 또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네잎클로버도 찾아보다가, 못 찾으면 또 세잎클로버만 보고 살기로. 그렇게 잠깐은 멈춰서, 발 밑을 내려다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머무르고, 멈춰 서고, 나아가고, 그리고 또다시 머무르는 건 모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니까. 지금은 잠시 멈춰 서야 할 때. 나는 내 주위에 널리고 널린 행복을 만끽하면서 시간을 보내보려고 한다. 그리고 혹시나 그 중간에 우연찮게 네잎클로버 하나를 발견한다면, 동기와 그날 약속한 것처럼, 아끼는 이들에게 그 잎을 먼저 안겨주고 싶다. 내 곁에 있는 행운들에게 행운을 선물하는 일은 내가 발견해낸 세잎클로버, 또하나의 작고도 커다란 행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