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면서 결심한 게 하나 있다. 올해만큼은 재밌게, 열심히 살자. 인생이 늘 노잼이거나 늘 불성실하게 산 건 아니었지만 뭔가 올해는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간 오만가지 핑계를 대면서 멀리 했던 것들을 조금쯤 가까이 두고 보고, 남들이 해보는 건 따라서도 해보고, 재미있어 보이는 일은 일단 시도해 보는 것. 그게 내가 결심한 올해의 목표였다.
수영은 그런 의미에서 시작한 일 중 하나였다. 자칭 운동극혐러, 타칭 운동신경없음러인 내게는 아주 큰 결심이자 변화였다. 집과 회사만을 반복하던 일상에 수영장이라는 새로운 공간이 추가되면서 무료한 삶에 반짝 윤기가 도는 듯했다. '할 수 있을까?' 내내 걱정만 하던 내가 '수영 진짜 재밌어!'라고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다니는 데는 보름도 걸리지 않았다. 나한테 맞는 운동, 취미라고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한 것 같아 정말 기뻤다.
하지만 딱 한 달 전부터 그 기쁨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 달 전, 초급반에서 내 위치는 애매함 그 자체였다. 당시 우리 반은 평영을 다 배운 사람들과 배영을 이제 막 배우는 사람들, 딱 두 그룹을 나눠져 있었다. 배영까지는 다 배웠지만 평영 진도를 못 나간 나는 어느 그룹에도 끼지 못한 '애매한 회원'이었다.
자유형과 배영을 거치며 내가 그리 운동신경이 뛰어난 타입은 아니라는 걸 강사선생님도 느꼈던 것일까. 선생님은 나를 어린이풀로 따로 빼내더니 '회원님은 다음 달부터 평영 시작하면 못 따라갈 수도 있으니까 한 주 먼저 할게요'라며 평영 발차기를 가르쳤다. 그때부터 시작됐다. 평영 발차기의 악몽이.
가르쳐준 대로 벽을 잡고 발차기를 하던 나는 이상함을 느끼고 선생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거 안 되는데요...?"
내 말에 선생님은 답했다. 원래 평영 발차기는 어려워서 발차기만 2주 정도 걸린다고. 그래서 나는 그 말만 믿고 열심히 했다. 그런데 문제는, 2주가 되도록 아무런 발전이 없었다는 것이다.
"발목 꺾어야 돼요! 이렇게 차면 발차기하는 의미 없어!"
"다리 끝까지 모으고!"
"발목 풀리면 안 된다니까~!"
나아지긴커녕 나날이 지적받는 부분만 다채로워졌다. 분명 혼자서 발차기를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내 뒤로 이제 막 배영을 마친 회원들이 평영 발차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몇 번의 강습 후에는,
"이제 평영 팔 젓기 배울게요. … 회원님은 저기서 발차기 연습 계속하세요."
모두가 평영 팔 젓기를 배우고 있을 때 나만 여전히 평영 발차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사람마다 잘 맞는 영법이 있고, 저마다 운동 신경도 다르고, 수영 경험도 다르니 당연히 따라가는 속도는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가장 먼저 평영 발차기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마지막까지 평영 발차기를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심지어 더 억울한 건, 나는 이 평영 발차기를 성공하기 위해 주 3일 강습 외에도 거의 매일 자유수영을 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리걸음인 걸 보니 답답할 수밖에.
수영을 시작한 후 매일 수영 얘기만 하던 애가 3개월 만에 '나 수영 그만둘까봐'란 이야기를 꺼내자 친구들은 놀라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럼 나는 또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평영을 시작했는데, 어쩌구 저쩌구, 그래서 결론은...
"열심히 하는데 안 되니까 그냥 포기하고 싶어…."
시무룩한 내 대답을 듣고 어느 친구들은 으이구, 하며 웃었고 또 어느 친구들은 '뭐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다만 두 가지 타입 모두 끝에 하는 말은 똑같았다. 너 뭐 수영선수 할 거야? 즐겁자고 하는 건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라고.
한 친구는 이런 말도 했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강습만 간 것도 아니고 매일 연습 다니니까 못했을 때 더 속상한 거 아니겠냐면서, 너무 과몰입하지 말고 적당히 즐기는 수준으로만 하는 게 좋다고 말이다.
친구의 말을 듣고 문득 '내가 너무 열심히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조금 내려놓고 봐도 좋을 일을 품에 꼭 껴안고서 안 보인다고 울적해한 건 아닐까?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안 되는 일에 너무 목 매달 것도 없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친구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즐겁자고 한 일에 사서 스트레스받을 이유는 없었으므로.
나는 친구의 말을 들은 그날, 불가피한 사정이 아니고서야 단 한 번도 빠진 적 없던 강습을 처음으로 빠졌다. 대신 다른 수영장에 가서 자유수영을 했다. 벽 잡고 발차기만 하다 스트레스받느니 하고 싶은 영법만 하면서 다시 즐겁게 수영을 하자는 마음에서였다. 평영에 몰두하느라 자주 못했던 영법을 다시 하니 또 기분이 새로웠다. 물을 가르는, 앞으로 쑥쑥 나아가는 그 순간이 좋았다.
다음 자유수영에서도 비슷하게 그간 배운 것들을 하고 싶은 만큼만 하다가, 종료 15분 전에 어린이풀로 이동했다. 그래도 강습을 계속 빠질 순 없으니 조금이라도 평영 발차기를 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매일같이 할 때도 안 늘었으니 이제는 마음을 내려놓고 연습하자고 다짐했다. 그 다짐과 함께 물 밑에서 다리를 접었다. 그리고 쭉 뒤로 폈다.
될 리가 없지. 바닥 타일이 조금의 미동도 없는 것을 보며 발차기의 악몽이 다시금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는 지금 연습하는 중이고, 하기 싫어지면 지금 당장 물에서 나와도 되니까. 차분히 숨을 마신 뒤 다시 다리를 접었다. 지적받은 부분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자세를 몇 번이고 고쳤다. 쭉 다리를 힘 있게 차니, 앞으로 아주 조금 나갔다. 다시 다리를 접고, 뻥 차고. 접고, 또 차고. 그것을 10분쯤 반복했다.
이제 딱 다섯 번만 더 하고 오늘은 그만하자. 마음먹고 다시 다리를 접었다. 발목을 틀고 다리를 밀어냈다. 그 순간, 앞으로 쑤욱 몸이 나아갔다. 미동도 없던 타일이 주르륵 아래로 밀려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와, 와!
그 수많은 유튜브 영상에서 말하던 '물을 밀어내는 감각'이 이런 거구나!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잘한 건지 못한 건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 내가 찬 킥이 여태 수없이 찬 킥 중에 가장 나은 킥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방금의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다시 다리를 접어 올렸다. 힘 있게 찼다. 두 번째 킥에서도, 세 번째 킥에서도 같은 물살이 다리에 닿는 게 느껴졌다. 그간 이걸 못해서 전전긍긍했던 게 황당할 정도로 너무나 갑작스럽게 평영 발차기를 해냈다.
요 몇 주 수영 후에는 늘 착잡한 마음만 가득했는데, 그날은 정말 오랜만에 개운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평영 발차기 흉내를 냈다는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족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더 멀리, 더 빠르게 나아가지 않아도 충분할 만큼.
그리고 그날의 기억은 지난 한 달간 수영장 안팎에서 쌓아 올렸던 무력감을 조금은 씻겨내 주었다. 수영장 안에서 평영의 늪에 빠져 있는 동안 수영장 밖에서도 깊은 늪에 빠진 기분을 종종 느끼곤 했다. 직장 생활을 겨우 1년 넘긴 사회초년생으로서 일을 하다 보면 종종 평영 발차기를 할 때의 기분이 들었다. 열심히 하는데 앞으로 조금도 나아가지 않는 기분, 열심히 하는데 결국 실패하는 기분. 열심히 하지만, 자꾸만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모든 상황들이 가끔은 날 서럽고 속상하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평영 발차기에 대한 토로는 결국 나를 에워싸는 많은 상황들에 대한 토로와도 같았다. 열심히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에 대한 속상함과 무력함, 포기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평영 발차기에 빗대 던져왔던 것 같다.
그렇지만 역으로, 평영 발차기를 성공함과 동시에 막막한 주위 상황들에 대한 나의 행동강령도 조금은 달라졌다. 당분간 나는 그런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평영 발차기를 해낸 그날의 기억을 떠올릴 것 같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속삭이겠지.
너무 힘주지 마. 억지로 최선을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안 되는 일에 몰두하기보다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해. 어떤 일이든 너무 오래 들고 있으면 더 무겁게 느껴지니까 힘들면 잠깐 내려놓고 다시 들자. 그럼 더 가볍게 느껴질 거야.
내려놓고 다시 하면, 거짓말처럼 앞으로 쑤욱 나아가는 순간이 오더라. 완벽하지 않아도, 더 멀리, 더 빠르게 나아가지 않아도 충분할 만큼,
그렇게 기쁜 순간이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