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좋은 날씨는 없다
설령 해가 뜨더라도
본가에 도착한 이후로 근 3일을 집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차를 타고 외출했다. 외출이라 하기도 뭐한, 차로 1분 거리인 방파제로. 차에 앉아 엄마와 나는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딱히 풍경에 심취해서는 아니었다. 아빠의 배가 들어오는가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차 트렁크에는 손님들을 위한 점심 도시락이 실려있었고, 우리의 외출 목적은 이 도시락들을 아빠 배에 전달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멍하니 바닷가를 보면서 이야기했다.
"와, 오늘따라 물 엄청 들어왔네. 여기까지 찬 거 처음 본다."
방파제 높은 곳까지 물이 차 있었다. 엄마는 오늘따라 수위가 높긴 하다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멀리서 아빠의 배가 보이기 시작했다. 배가 들어오자 우리는 서둘러 도시락을 건네주었고, 배는 다시 방파제에서 멀어져 갔다. 높디높은 수평선 위를 가로질러 나아갔다. 차를 돌려 방파제를 벗어나면서, 엄마는 말했다.
"날씨가 너무 별로다."
왜? 햇살 쨍하니 괜찮은데. 의아해하며 물었다.
"바다 날씨가 너무 별로야."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 * *
"왜 아까 날씨가 별로라고 했어?"
설거지를 하면서 묻자, 엄마는 너울이 세서,라고 답했다. 너울이 왜 센데? 하니 오늘이 대사리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대사리가 뭐야. 바다와 관련한 용어라면 밀물, 썰물 정도가 전부인 내게 너무 어려운 단어였다. 엄마의 답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물이 가장 높게 찰 때가 만조이고, 가장 낮게 찰 때가 간조인데, 사리는 만조랑 간조 차이가 가장 클 때를 말한다고. 그때 너울이 세기 때문에 배 운항이 위험하고, 기상이 안 좋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오늘은 어제 날씨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아서 배가 다니기 안 좋은 날씨라는 거지. 엄마의 설명은 거기까지였다.
아침에 일어나 모처럼 뜬 해를 보면서, 오늘 날씨 최고다! 했던 내게 아빠가 어이구, 아빠 망하라고 그런 소리 한다~ 했던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해가 떠도 마냥 좋은 날은 아닌 것이다. 바람이 강하게 불거나, 파도와 너울이 세거나 하는 날은 해의 역할도 무의미할 뿐이었다. 그럼 바람 덜 불고, 만조랑 간조 차이가 크지 않아야 좋은 날씨인 거겠네? 하고 물으니, 엄마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다 똑같은 날씨여도, 받아들이기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 * *
나는 종종 의문을 가졌다.
주변은 화창하기만 한데, 햇볕이 내리쬐는데 왜 이렇게 내 마음은 불안할까? 무엇이 문제일까?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는데 왜 나는 초조해하는 것인지.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는데 왜 나는 아프고 힘이 드는 건지. 이렇게 화창한 날에도 우중충한 나란 존재는 대체 무엇인지. 평화로움 삶 속에서 너울대는 내 마음은 대체 왜 이 모양인지. 그 답을 찾고 싶었다. 그런 의문의 끝은 항상 같은 답으로 이어졌다. 내가 나약해서, 내가 바보 같아서.
그러나 그렇지 않음을 알아야만 했다. 때때로 내 마음의 너울이 강하게 칠 때가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메마르듯 아무것도 안 차있는 느낌이다가도, 가끔 주체할 수 없게 넘치는 듯한 느낌일 때 내 마음은 넘실댄다. 그러나 바다의 밀물과 썰물이 바다만의 몫은 아니듯, 내 마음의 밀물과 썰물도 순전히 나로 인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간조와 만조 또한 바다와 마찬가지로 늘 때에 따라 다르고, 항상 예상한 대로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차이가 큰 날이 있으면 작은 날도 있는 법임을 이해해야 했다. 설령 내 마음이 오늘은 넘실대더라도, 또 내일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면 그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했다.
햇살이 있어도 바람이 강하게 불면 배가 휘청거리기 마련이고, 햇살이 있어도 파도가 거칠고 너울이 세면 때때로 우리는 항해를 멈춰야 한다. 다시 말해 누군가 지금이 가장 화창할 때라 말해도, 내게는 그렇지 않음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를 부드럽게 타일러야 한다. 나는 나의 배를 더 안전하게 띄우기 위해서 더 좋은 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햇살이 좋고, 바람 한점 없으며, 파도가 조용한 날, 바로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땠는지 묻고 싶다. 햇살이 가득했는지, 비가 오지는 않았는지, 눈이 쌓였는지, 바람이 불었는지, 파도와 너울은 어땠는지. 그 어떤 날씨더라도, 당신에게는 좋은 날씨였으면 좋겠다. 설령 오늘이 당신에게 나쁜 날씨였더라도 내일은 좋은 날씨이기를 바란다. 모든 마음에 희망이라는 배 한 척을 띄워, 순탄한 항해가 가능한 날들이길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