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름의 힘

너를 행복이라고 부르는 이유

by 김해뜻




현관문을 살짝 열고 있으면, 그 사이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리면 역시나 그 아이가 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언제 내가 나오나 기다리고 있는 우리,


"행복이!"


사랑스러운 똥강아지가. 나는 마당으로나가 행복이 앞에 선다. 놀아줄 사람이 나타나 신이 난 듯, 꼬리를 흔들며 온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씁, 앉아. 행복이! 손짓을 동원해 앉으라고 말하면 어떻게 알아듣긴 하는지 엉덩이를 땅에 붙인다. 물론 오래가지는 못하고 금세 원상태로 돌아온다. 행복이의 앞발이 붕 떠올랐다 떨어지길 반복한다. 빨리 놀자는 거다. 나는 장난스럽게 발을 앞으로 넣었다 뺐다 하고, 행복이는 그걸 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통통하니 살이 오른 행복이는 다만 몸이 조금 둔한 탓에, 한 번을 잡지 못하지만.


"행복이, 재밌어? 에구, 애교만 많아가지구."


좋은지 꼬리를 흔드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나는 술래잡기 아닌 술래잡기를 하며 행복이와 놀아주다가 이내 지쳐버리고 만다. 태어난지 이제 반년쯤 되었으려나? 확실히 애기라 그런지 기운이 펄펄 넘치네. 저질 체력이 놀아주기에는 한계가 있다. 마침 저녁상을 차릴 시간이 되어 나는 행복이에게 인사를 했다.


"행복이, 여기서 쉬고 있어! 언니 밥 먹고 올게!"


행복이, 행복이. 모든 말머리마다 그 이름을 불러주면서.


* * *


한때 동네 발발이 강아지였던 아이를 부모님이 맡아 키우기 시작하면서, 그 이름을 '행복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오빠 말로는 자기 이름을 불러도 못 알아듣는다던데 끊임없는 교육의 힘인지 요새는 이름을 부르면 고개를 빼꼼 내밀기는 한다. 물론 말은 여전히 잘 못 알아듣는 편이다. 오늘도 '기다려!'를 몇 번이고 시도했으나 실패했으니까. 그래도 괜찮다. 귀여우면 다 용서되는 세상이니.


이름을 잊지 말라고 행복아, 행복아, 하고 부르면서도, 가끔은 아쉬운 생각이 든다. 행복이는 자기 이름이 가진 뜻을 알까? 아마 평생을 모를 것이다. 딱히 행복이가 조금 바보 같은 구석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강아지들이 제 이름의 뜻을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이들을 처음 만날 때, 아주 오랜 고심 끝에 이름을 붙여주곤 한다. 콩콩 뛰어다니는 모습이 귀여워 콩이, 한림에서 태어나서 한림이, 포메라니안 중에서 손담비가 되라고 포비, 까만 게 매력이라 까미. 행복처럼 찾아왔다고, 또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행복이.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태어나기 전 아이에게 어떤 이름을 붙여줄지 온 가족이 모여 머리를 싸매거나 때때로는 작명소에 찾아가 좋은 이름을 얻어오기도 한다. 우리가 이처럼 '이름'이란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 그 힘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그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처럼, 이름에는 큰 힘이 있다. '나'란 존재가 주는 의미를 설명하며, '나'의 존재를 완성시키는 그런 힘.


내 이름에는 온화할 민(旼)이 쓰인다. 성과 집안 돌림자를 제외한 마지막 끝 글자에 말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 이 한 글자를 고르기 위해 엄마가 얼마나 고심했는지에 대해서는 자라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성과 돌림자도 나의 일부로 아끼지만, 특히 이 마지막 글자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 글자에는 엄마 아빠의 깊은 마음이 깃들어있다. 따뜻하고 온화한 세상에서, 꼭 그런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그 바람이.


행복이가 나의 모든 언어를 알아듣는다면, 혹은 내가 행복이의 언어로 행복이와 대화할 수 있다면 이야기해주고 싶다. 네가 왜 '행복이'인지, 우리에게 '행복'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덧붙여 말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 집의 행복인 네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행복이'가 '행복이'인 것처럼, 당신이 당신의 이름을 가지는 이유가 있다. 빈틈없이 꽉 찬 마음으로 지어진 부름이 있다. 당신을 부른다는 건, 당신에게 깃든 사랑을 두드리는 것. 당신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당신의 존재를 내 마음에 새긴다는 것.


나는 오늘도 온 마음을 담아 부른다. 당신의 이름을, 당신의 의미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모두에게 좋은 날씨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