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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뜻 Feb 01. 2021

새로 쓰는 밤편지

새벽, 깨어있는 우리들에게




  머리만 대면 곧장 잠드는 사람이고 싶다.


  씻고 침대에 누우면 자동반사처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몇 시간 동안 뒤척이려나, 하는 걱정에 속에서부터 깊은 한숨이 나왔다. 침대에 누운 시간으로부터 서너 시간은 꼬박 뜬 눈이다. 보통 열두 시 즈음에 누운다 치면 새벽 세시, 네시까지는 늘 깨어있는 것이다. 이 정도도 그나마 나아진 거라 할 수 있는 것이, 이전에는 해 뜨는 시간까지도 잠을 못 자곤 했다. 경비원분이 빗질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겨우겨우 잠드는 것이 일상이던 때도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생활 패턴이 문제겠거니, 했다. 늦게 활동하고,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나고. 소위 말해 낮밤 바뀌는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 것이라고. 대학생 신분에야 늦게 기상하는 일이 그다지 문제 될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상태를 아주 오래 방치해뒀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단순히 그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생각한 건 꽤나 최근의 일이다. 한 번은 꼴딱 밤을 새 낮밤을 돌리려고 했다. 나는 졸음을 꾸역꾸역 참으면서 기다렸고, 낮잠 한 번 없이 뜬 눈으로 다시 밤을 맞이했다. 그때 문제가 생긴 것이다. 밤을 새웠음에도 불구하고, 자려고 누우니 잠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은 낮보다 말똥말똥해졌다. 내내 깨어있던 머리가 두통을 호소하고, 눈꺼풀은 천근만근인데, 정신만은 바짝 깨어있는 상태. 그것은 꽤나 고통스러웠다. 나는 잠에 들기 위해 양도 세어봤다가, 잠이 잘 온다는 백색소음을 틀어놓기도 했다가, 가슴을 셀프로 토닥거리며 얼른 자라고 스스로에게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무수한 노력 끝에도 잠은 오지 않았다.


  동틀 무렵에 겨우 잠이 들어 아침 7시에 깨든 오후 2시에 깨든, 나는 항상 밤이 길었다. 잠을 적게 자건 많이 자건 남들이 자야 한다는 시간에 유독 쉽게 잠들지 못했다. 몸이 너무나도 피곤해 조금이라도 일찍 눈이 감기는 날에는, 꼭 한두 시간 간격으로 잠이 깨곤 했다. 나는 그 잠깐 사이에도 꽤 긴장한다. 지금 완전히 깨면 다시는 못 잔다는 생각에 억지로 눈을 감고, 빨리 다시 자라고 속삭인다. 그런 주술은 통할 때도 있지만 더러는 실패에 그친다. 그럼 또 아침까지 뜬 눈으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왜 나는 유독 밤에 잠을 못 자는지.


  밤은 너무 고요했다. 그 적막감에 절로 외롭다는 생각이 들만큼. 모두가 잠든 시간에 홀로 깨어있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이 고요할 때는, 내가 유난히 시끄럽게 느껴진다.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가 거슬리고, 눈 깜박거리는 소리까지 예민하게 들리곤 한다. 무엇보다, 머릿속이 너무나도 시끄럽다. 좀처럼 가만있지를 못하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내 머릿속이.


 오래된 과거의 말들을 다시금 떠올리거나, 상황들을 되돌려본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만약 그때 안 그랬다면, 이라는 가정을 두고서 여러 가지 경우들을 만들어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엉킨다. 어디서부터 풀어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면, 그 시끄러움을 억지로 잠재우려고 애쓴다. 제발 자자고, 생각 좀 그만하라고.


  그게 통하지 않을 때는 억지로 그 소란에서 벗어나려 한다. 휴대폰으로 의미 없는 영상들을 틀어놓거나, 조용히 SNS를 탐방하거나, 브런치를 읽는다. 새벽에는 글이 몇 편 없어서 올라온 글을 다 읽어도 시간이 남는다. 나는 새로운 글을 기다리면서 여러 번 들락날락거리고, 누군가 발자국을 남기면 재빨리 찾아가 글을 읽는다. 사실은 안다. 글보다, 지금 이 시간 함께 깨어있는 누군가가 반가운 것이라는 걸.


  낮보다도 글을 열심히 읽는다. 문장 하나하나를 뜯어서 보고,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음미한다. 낯가림을 핑계로 평소 댓글 한 번 잘 달지 않는 내게 유일하게 용기가 생기는 때가 바로 새벽이다. 재밌게 읽은 글에는 잘 읽었다는 인사를 남기고, 나와 같은 고민을 겪는 사람에게는 선뜻 내 경험을 공유한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함께 잠 못드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싶어서다. 새까만 밤길을 걷다가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을 발견한 마음으로 내가 그들을 보았듯이, 그들의 밤길에도 희미한 빛이나마 깔아주고 싶어서.


  어느 가수는 그렇게 말했다. 불면증을 앓고 있는 자기와 달리 사랑하는 이들은 편히 잠들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노래 가사를 썼다고 말이다. 깨어있는 자신이 그들의 밤을 지켜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나도 그 가수의 말처럼 사랑하는 이들이 부디 푹 잠들기를 바란다. 뒤척이지 않고, 자주 깨지 않고, 모두가 자는 그 시간에 맞추어 편안하게, 꼭 그렇게 잠들기를 바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결국 잠들지 못한,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도 밤편지를 써주고 싶다. 불면증으로 잠을 잘 못 잔다는 그 가수에게, 밤새 수많은 생각들과 싸우며 뒤척거리는 친구에게, 이 밤이 너무나 길고 외롭다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여기 나도 깨어있다고. 함께, 이 시간을 견디고 있다고. 혼자만의 쓸쓸한 밤은 결코 아니라고.


  오늘은 몇 시에 잠에 들까. 내일은 일정이 있으니 그래도 빨리 잠들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오늘만큼은 심장 박동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으면 좋겠다. 눈 깜박이는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으면, 머릿속의 생각을 하나하나 풀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도 괜찮다. 새벽녘, 나와 같이 깨어있는 누군가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넬 수 있다면. 우리 함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음을 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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