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해뜻 Feb 03. 2021

긴 손톱이 싫어요

너무 바짝 깎는 것도 안 좋아해요




  얼마 전에는 꿈을 꿨는데, 무척 이상한 꿈이었다.


  꿈에서 나는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었고, 사귄 지 1년이 거의 다 되어간다는 입력값까지 설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한 식당가에 앉아 이야기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 나는 꿈속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했다. 근데 이별을 결심한 이유가 얼마나 황당했던지, 대개 꿈을 꾸면 일어나자마자 잊어버리는 내 기억 속에 지금까지도 그 이유가 생생하게 박혀있다. 헤어진 이유는 간단했다. 남자친구의 손톱이 길어서였다. 손톱이 길어서.


  다음날 나는 친구들에게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박장대소를 했다. 이미 일전에 나는 이성을 볼 때 손톱을 본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긴 했다. 그러나 손톱에 얼마나 진심이면 꿈에서까지 이별을 하냐고, 친구들을 깔깔거렸다. 나도 웃겼다. 고작 손톱 하나로 헤어짐을 확고히 결심한다는 게.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하지 않은가. 나도 내가 그 정도로 손톱에 진심인 사람일 줄은 몰랐다고, 당황스러워하며 웃었다.


  왜 사람을 볼 때 손톱을 보느냐고 묻는다면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 있다. 표면적으로 가장 큰 이유는 청결이고, 그밖에는 세심함과 부지런함을 느낄 수 있어서이다. 물론 손톱이 긴 사람들이 하나같이 더럽고, 세심하지 못하고, 부지런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긴 손톱도 잘 관리하는 사람이 많음을 알고 있다. 오히려 그걸 관리하는 데 더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러나 나는 대체로 손톱이 단정하고 깨끗하면 앞서 말한 부분에서 호감도가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신경 쓰지 못하면 금방 자라고 마는 게 바로 손톱이니까.


  사실 나는 과외를 하면서 필기를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 내 손을 보는 시간이 남들보다 긴 편이었다. 흰색 부분이 자라나기 시작하면 그게 그렇게 보기가 싫어서 틈날 때마다 깎는 게 일이었다. 근데 깎아내는 것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손톱을 지나치게 바짝 깎아 문제가 될 때도 자주 있었다. 손끝이 아리거나 쓰린 고통을 며칠은 견뎌야 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깎은 부분부터 흰색 손톱이 자라나는 기분에 원치 않아도 손톱을 계속해서 바짝 깎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 손톱을 아무리 공들여 깎아도 못생겼다는 감상을 쉬이 떨치지 못했다.


  사실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손톱만 신경 쓰지 않는다. 내게는 제2의 손톱이 있는데, 그게 바로 마음이다. 그중에서도 조금 밉고, 못된 마음. 미운 마음은 손톱처럼 매일 부단히 자라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소홀해지면, 어느덧 흰 부분이 보기 싫게 자라나 있다. 그걸 깎아줄 때는 나름 쾌감을 느끼게 된다. 딸깍딸깍, 넌 딱 이 정도까지 자라야 해, 라며 미운 마음을 깎아낸다. 두 손을 쫙 펼치듯이 마음을 펼쳐놨을 때, 더 자란 부분 없이 정돈된 것을 보면 괜히 모든 게 깨끗해진 기분이 든다. 깎은 손톱은 휴지에 잘 싸서 버린다. 그렇게 내 의지로 잘라낸 나의 마음들도, 미련 없이 버린다.


  그러나 보기 싫다는 이유로 손톱을 바짝 깎으면 안 되듯이 마음의 손톱도 바짝 깎아내면 안 된다. 너무 많은 마음을 잘라내면 스스로가 아프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정적인 마음들이 아예 없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가끔은 적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게 굴 때가 있어야 한다. 때로는 스스로가 세균에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런 마음이 필요할 때도 있다. 딱 내 손톱만큼 말이다. 그래서 무턱대고 많이 자르면 안 된다. 막아설 힘이 없어지면 아파하지 않아도 될 일에 우린 더 가슴 아파하니까.


  그러니까 적당히 깎아내야 한다. 그 '적당히'의 범주를 알아가는 것도 하나의 과정이다. 조금 덜 자른 기분에 찝찝할 때도 있고, 너무 자른 기분에 신경이 쓰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 과정들을 거치다 보면 어느 시점에 손톱을 깎아내면 좋은지, 어디까지 손톱깎이가 들어가야 하는지를 서서히 알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 또한 그 과정을 거치며 보다 노련한 손짓으로, 더 단정히 다듬을 수 있다.


  꿈에서 남자친구와 이별을 결심한 이유가 손톱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 순전히 눈에 보이는 손톱의 상태만으로 헤어짐을 결심한 것은 아니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꿈속에서 나는 데이트 내내 남자친구에게 폭력적인 말을 듣고 있었다. 나를 충분히 할퀴고 상처를 내는 말들을 가만히 들으면서 헤어질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지저분한 손톱을 보게 된 것은 어쩌면 내게 그런 깨달음을 주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꿈속의 그는, 손끝의 손톱처럼 제 마음의 손톱도 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래서 길게 자란 그의 미운 마음이 나를 할퀴고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나는 그의 손톱이 그것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손톱이 단정한 사람을 곁에 두고 싶다. 겉으로 보이는 손톱이 아니더라도, 마음의 손톱만큼은 단정한 사람. 자신의 내면을 자주 들여다보고 미운 부분은 과감히 깎아낼 용기가 있는 사람.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꿈속에서처럼 무심히 돌아서고 싶지는 않다. 나는 손톱깎이를 가방 속에 하나씩 들고 다니며 누군가의 마음에 밉게 자란 흰 부분을 정성껏 깎아주고 싶다. 그 손톱이 누군가를 상처 입힐까 염려하는 마음 대신, 그가 제 팔을 긁다가 상처 입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나는 내 손톱을 자주 들여다볼 것이다. 혹시 너무 길어 다른 사람을, 또는 나 자신을 상처 입히지는 않을지 보기 위해서. 또 너무 짧아 아려오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밉게 자란 부분들만을 고이 깎아내 주면서 네가 남들이 보기에 예쁜 손톱이든, 못난 손톱이든, 충분히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손끝의 손톱, 마음의 손톱 모두 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 쓰는 밤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