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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뜻 Jan 26. 2021

지예에게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온 너에게




  고생했어.


  첫머리에는 이 말을 가장 먼저 쓰고 싶었어. 이제 막 또 다른 결승선에 도착한 너를 만나면, 물 한 잔과 수건 한 장, 따뜻한 포옹과 함께 어떤 말을 전할까 상상을 하곤 했거든. 축하해, 라는 말은 조금 이른 것 같고, 너 기록이, 라는 말은 좀 부담스러울 것 같은 거야. 오다가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묻는 건 또 유난인 것 같고. 그래서 나는 그냥 그 말만 해주고 싶었어. 고생했어, 지예야. 여기까지 오느라.


  길고 긴 레이스였지. 똑같은 운동장을 몇 바퀴를 돌라는 건지, 보고 있는 나도 질리는데 돌고 있는 너는 얼마나 지루하고 힘들었을까. 곁에서 달리는 사람이 많으니 좀처럼 쉬지도 못하고, 선두를 놓칠까 염려스러운 마음에, 결승선에 다다르지 못할까 불안한 마음에, 스스로를 채찍질해가며 달려온 지난 시간들이 얼마나 길고 고되었을지. 누구도 감히 그 힘듦 전부를 헤아릴 수는 없을 거야, 그렇지? 달려온 건 너니까. 지금까지 버텨온 건 오로지 너만의 몫이었으니까.


  이제와 말하지만 사실 나는, 가끔은 그런 네가 너무 힘들어 보였어. 그래서 될 수 있다면 그 곁에서 같이 뛰어주고 싶었어. 이어달리기처럼 바통터치가 가능한 일이라면 네가 쉬고 있는 사이에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주고 싶었어. 만일 그럴 수 있다면, 너는 잠시 목을 축일 수도, 저린 다리를 풀어줄 수도, 달리는 사람들을 마냥 바라볼 수도, 이 경기를 온전히 즐길 수도 있을 것 같았거든. 혹여나 순위가 조금 밀려나 속상해할 때는,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 잘 달리지 못한 내 탓이라고 너를 위로해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근데 오로지 너 혼자 달려야 하는 이 경기에서 나는 말뿐인 응원만 전해줄 수밖에 없어 속상했어. 시끄러운 소리조차 부담이 될까 봐 먼발치서 조용히 바라만 봤는데, 혹시 알고 있었어? 난 언제나 너를 응원하는 플래카드를 품에 안고 있었는데. 그리고 내 곁에, 나와 같이 널 응원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는데.


  외롭고, 너무나 긴 시간 속에서 넌 종종 포기하고 싶어 했지. 가끔은 남들보다 더 잘 뛰지 못하는 스스로를, 더 부지런히 달리지 못하는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고. 그런데 있잖아, 지예야. 나는 사실 그 순간에도 알고 있었어. 네가 남들보다 오래 잘 달린다는 걸. 그래서 결국은 결승선에 무사히 도착할 거라는 걸. 그곳을 지나 쏟아지는 박수를 받을 준비가, 뜨거운 포옹을 받아들일 준비가, 너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되어있었다는 걸.


  근데 있지, 때로는 이런 확신조차 짐이 될까 봐 말하지 못했어. 그래도 봐. 넌 너의 모든 걱정을 등에 들쳐매고서도 이렇게 씩씩하게 완주해냈잖아. 멋지게 결승선을 통과해냈잖아.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네가 해낼 거라는 걸 굳게 믿고 있었어. 그리고 이 확고한 믿음의 근거는 딱 하나였어. 달리는 사람이 너라는 것. 그것 하나로도 충분했어.


  오래 달리기에서는 빠른 사람보다 꾸준한 사람이,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보다는 조금 더 멀리 보고 달리는 사람이 이기는 법인 것 같아. 너는 둘 다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지. 물론 너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때때로 바깥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달리는 이들의 특징을 더 잘 관찰하기도 하니까. 넌 네 속도에 맞춰 꾸준히 달릴 줄 아는 사람이었어, 지예야. 발 앞만 보다가 넘어지는 게 아니라 멀리 돌부리를 발견하고 피해 갈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무사히 결승선에 도착할 수 있었어. 그저 네가 잘 달려왔기 때문에, 네가 그토록 노력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난 박수를 보내. 그 어떤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너를 위해서, 수만 가지의 말들을 대신할 박수를 보내. 지금껏 고생 많았다고, 너무나 애썼다고. 넘어져 다치지 않고 여기까지 와줘서, 그게 정말 고맙다고.


    오늘만큼은 목을 축이고 널브러져 있어도 좋아. 그동안 힘들었다고 투정을 부려도 좋고, 이 길고 긴 레이스를 마친 소감을 하루 온종일 이야기해도 좋아. 네가 이 경기에서 어떤 결과를 얻었든 이 모든 걸 누려줬으면 좋겠어. 나는 네가 얻은 결과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너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너는 앞서 말한 이 모든 것들을 할 자격이 충분해. 이제는 네 마음 편한 대로 푹 쉬기만 하면 돼.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무수히 많은 달리기가 있겠지. 단거리든, 장거리든. 혹은 그 끝을 알 수가 없는 길고 긴 경주든. 지금 이렇게 쉬다가도 언젠가 또 어떤 출발선 앞에 서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잔뜩 긴장한 채로 말이야.


  그때는 지예야, 그냥 아무 생각 안 하고 뛰어도 돼. 나는 네가 꼴찌로 결승선을 통과해도, 언제나 1등처럼 반겨줄 수 있으니까 겁내지 말고 발을 떼면 돼. 외롭지 않게 마음으로 함께 달려줄게. 세상에서 가장 큰 박수로 널 맞이해줄게. 너의 모든 발걸음과 그 자취를 다 기억해줄게. 그저 고생했다고, 지금처럼 꼭 안아주며 반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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