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해뜻 Jun 23. 2021

40년 베테랑이나,보름 차 인턴이나

실수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법




    나 뭐하려고 이거 켰지.


    딸깍거리던 마우스를 멈추고 화면에 뜬 폴더를 멍하니 바라본다. 으음…. 분명 무슨 자료를 찾아보려고 폴더를 열었는데, 자료들이 뜨는 그 잠깐 사이 무엇을 찾아보려 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다. 나는 가만히 화면을 째려보다가 이내 엑스 표시를 누르고 폴더를 끈다. 다른 일이나 먼저 하자고 시선을 돌리는 순간 갑자기 원래 찾으려던 자료가 생각난다. 아, 맞다. 그거 찾으려고 했었지. 나는 금방 끈 폴더를 다시 더블클릭하면서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쉰다. 요즘 왜 이렇게 정신을 빼놓고 살까. 진짜 큰일이다.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라는 어느 유행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했던 보름이었다. 이달 초입 나는 운이 좋게 인턴을 시작하게 되었고, 급하게 업무에 투입되면서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딱히 일의 양이 많다기보다는, 회사생활 자체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꽤 오래 소요되었다. 기본적으로 출퇴근 시간, 하루에 8시간이 넘도록 자리에 앉아있는 일부터 익숙해져야 했고, 낯선 회사생활과 팀원들에게도 적응을 해나가야 했으며, 와중에 이미 진행되고 있는 업무를 소화해내기 위해 애써야 했기 때문에, 당연히 하루하루가 바쁠 수밖에 없었다. 눈 깜박하면 점심시간, 또 눈 깜박하면 퇴근 시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씻자마자 곯아떨어지는 게 거의 매일이었다. 다시 눈 뜨면 출근, 또 퇴근. 그렇게 보름을 지냈다.


    보름이란 시간은 참 짧은 시간이지만 또 아주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어서, 처음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 회사생활과 일, 사람들에게 익숙해졌다. 새벽같이 기상하는 일도 이제는 생활 패턴으로 자리매김했고 팀원들과 같이 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일이 크게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업무에 있어서도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명확해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퇴근하기 전과 출근한 직후 업무 리스트를 작성하고 체크하는 게 지금은 비교적 자연스러워졌으니까.


    그러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여전히 주기적으로 얼타고 있는 내 모습을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의실을 못 찾아서 회의를 몇 분 지각하는 일, 회사 출입구 방향이 헷갈려 엉뚱한 출구로 나와 퇴근하는 일, 상사의 질문에 '어…' 하고 뜸을 들이는 일이나, 다른 회사와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이걸 어째' 발을 구르는 상황은 틈만 나면 벌어진다.


    가끔은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까지 찾아온다. 그런 순간은 정말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할 일이 너무 많아 일의 순서가 머릿속에서 증발할 때 생긴다. 말 그대로 전구가 꺼진 것처럼 깜박깜박하는 때. 그럴 땐 꼭 한 번씩 사소한 실수를 하고 만다. 참조를 넣지 않고 덜컥 메일을 보낸다든지, 대여한 곳의 키를 반납하면서 정작 문은 안 잠그고 나왔다든지, '혹시 1분만 기다려주세요' 같은 헛문장을 내뱉는다든지 하는.


    오늘도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내 실수로 인해 다른 직원이 일을 두 번 처리해야 하는 일이 생기고 만 것이다. 실수를 한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재빨리 죄송하다고 이야기를 했고 상대방은 나만큼이나 재빨리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민폐를 끼쳤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콕콕 박혔다. 죄송한 마음에 퇴근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걸 눈치챘는지, 어서 가보라는 직원분의 말에 못내 불편한 마음으로 가방을 챙겨 나왔다.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는 계속해서 후회했다. 그때 더 꼼꼼하게 살펴볼 걸, 한번 더 확인해볼 걸, 검토받고 보낼 걸. 수많은 가정을 세워나갔다. 그러다 스스로가 우울의 구렁텅이에 빠져들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서둘러 다른 생각을 했다. 지난 주말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던 사진을 보고, 버스 밖 풍경을 보고, 유튜브 탐방도 좀 하면서.


    저녁에는 고모댁에 잠시 들러 저녁을 먹었다. 고모부는 나에게 물으셨다.


    "회사는 적응 잘하고 있고?"


    나는 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칭얼거리듯이 답했다.


    "아니요~ 오늘 또 실수했어요!"


    거의 매일 실수하는 것 같다고 뒷말을 붙이는 내 모습을 빤히 바라보시던 고모부는 이내 식탁으로 고개를 돌리셨다. 그러곤 차분히 답하셨다.


    "나도 가끔 가다 실수하고 그래. 똑같은 일을 40년이나 했는 데도. 실수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법이니까 그런 거에 기죽고 그러지 마."


    실수는 누구나 한다. 언뜻 듣기에 참 뻔한 말인데도, 어쩐지 그 말 한마디에 저녁 내 속상했던 마음이 가시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는 그 누구도 나를 닦달하지 않는다. 회사 팀장님은 하루 걸러 힘든 점은 없는지를 물어보셨고, 사수님은 내게 부담 갖지 말고 즐겁게만 하라고, 그럴 수 있게 자신도 애쓰겠다고 늘 말씀해주셨다. 아주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물어보면 친절히 알려주는 인턴 동료들도 있었다. 내 실수를 책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놓치는 것들에 대해서 자꾸만 마음을 썼다. 속상해했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탓했다.


    그런 내게 고모부가 해주신 말씀은, 꼭 그 실수가 오롯이 네 부족함 때문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40년 베테랑이 되어서도 할 수 있는 게 실수라고. 언제나 다 잘할 수는 없는 법이라면서.


    "면접에서 가장 듣고 싶었던 질문이 있나요?"


    지금의 회사 면접을 보던 때, 거의 마지막에 팀장님께서 내게 건네셨던 질문이 떠올랐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꽤 당황했던 걸로 기억한다. 어…, 눈을 데룩 굴리면서 생각하다 조심히 입을 열었다. 좌우명이요…? 팀장님은 꼭 어린아이 사탕 주듯이, 친절하게 그 질문을 다시 내게 돌려주었다. 좌우명이 뭐예요? 나는 마찬가지로 웃으면서 답했다.


    "'태도는 부드럽게, 행동은 의연하게'입니다."


    과연 지금의 나는, 그때 말한 그 좌우명처럼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부드럽고 의연한 자세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남을 대하고 있는지, 나를 아껴주고 있는지에 대해. 아주 조금 부족했다고 자체 평가를 내린다. 특히 의연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고.


    나는 내가 크고 작은 실수들, 그로 인한 죄책감과 실망감, 가끔의 억울함과 속상함을 의연하게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잘못 쓴 문장은 잘 지워내고 다시 쓰는 사람이길. 잘못 그린 그림 위로 새로운 것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길. 바닥에 있는 걸 열심히 주워 모으다 정작 품에 있던 걸 툭툭 떨구는 때에는, 허리 한번 펴고 큰 바구니를 가져오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길. 과거를 탓하기보다 미래를 더 단단히 설계해나가는 사람이길.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꼭 언젠가는.


    내일도 오늘과 비슷한 하루를 보낼 것이다. 하루 종일 정신이 없고, 가끔은 멍하고,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 때도 있는가 하면, 또 의도치 않게 실수를 하고 마는 때가 올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일 하루를 다른 마음으로 살아보겠다고 다짐한다. 예기치 못한 글자에도 언제나 그로부터 시작되는 단어를 곧잘 떠올려냈던, 끝말잇기 고수였던 나를 떠올리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찾아와도 언제나 이를 발판으로 삼고 다시 삶의 문장을 써 내려갈 내가 있음을 믿으면서.

작가의 이전글 나로 하여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