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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ep 26. 2018

도전에 결코 늦은 나이는 없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지만 그래도 나처럼 망설였던 사람들을 위해

20대 후반에 새롭게 무언가를 배워 시작한다는 것.
두려웠다. 너무 늦은 게 아닐까? 나는 더 이상 패기 넘치는 20대 초반이 아닌데.


이게 얼마나 하찮은 고민이었는지 알게 된 건 이 분들 덕분이었다.



발리 우붓 요가 티쳐 트레이닝 첫 수업에서 만난 우리는 모두 8명. 그 중 나는 막내였고 유럽 나이로 치자면 유일한 20대였다. 나를 압박했던 29,30이라는 숫자는 그들에게 그저 '샛노란 나이'였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샛노란 어린 나이'의 나에게도 월요일부터 토요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요가 트레이닝은 육체적,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같이 트레이닝에 등록한 50대인 H는 헬스 피트니스 사업을 하고 있는, 내 나이 또래의 딸을 둔 엄마였다.

1달의 기간 동안 간간히 그녀가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게 보이긴 했지만 그녀는 단 한 번의 군소리 없이 부단히 수련해 요가 트레이닝을 성공적으로 수료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며칠 후 우리들의 Whatsapp 그룹창에서 그녀가 보낸 메세지를 보았다.

"얘들아, 다들 잘 지내니? 나는 뉴질랜드에 잘 도착해서 지내고 있어. 너희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소식이 있어. 떨리지만 며칠 전에 나의 첫 요가 수업을 시작했어!"

8명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았지만 그녀는 우리들 중 처음으로 정식 요가 수업을 시작했다. 우리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축하인사를 보냈다.




침샘 수술을 한 병원에서 같은 병실을 썼던 한 60대 독일 여자분도 생각이 난다. 병원 생활이 너무 지루하다시며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두런두런 얘기를 하시는 에너지 넘치는 분이셨다. 그러다 나와 대화를 나누시던 중 그녀는 지금 라트비아어를 배우고 있다고 말씀을 하셨다. 라트비아라는 국가도 생소한데 라트비아어라니. 가까운 친척 중 한 분이 라트비아 여성분과 결혼을 하셨는데 그 분과 대화를 너무 나누고 싶어서 라트비아어를 독학으로 공부하고 계신단다.


"독일에서 라트비아어 교재를 구하기 어려워 그 곳에 살고 있는 내 친척이 교재를 구매 후 독일로 보낸 걸 받아서 공부하고 있어요. 며칠 전에 소포로 부쳤다는데 빨리 교재가 도착했음 좋겠어요."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빛나던 그 분의 두 눈을 잊을 수가 없다.




포르투갈 순례자의 길 첫째 날 여정지인 Vairão에서 만나 뵌 이탈리안 G와 A 부자. G의 나이는 마흔 중후반 정도 되어보였고 아버지인 A는 77세이셨다. 그치만 더 놀라운 건 이번이 아버지 A분에게 12번째 순례길이라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첫 번째 순례길은 지금의 내 나이 곱하기 둘을 하면 나오는 60이셨다고. 처음 몇 년 동안은 친구분들과 함께 걸으시다가 지난 5년 동안은 아들분인 G와 함께 순례길에 왔다고 전하셨다.

나이가 있으셔서 걸음이 조금 느리시긴 하지만 내가 도착한 후 얼마 있으면 어김없이 미소를 지으면서 알베르게로 들어오셨다. 한 공간에 30-40명 수용하는 알베르게의 이층 침대는 나에게도 편하지 않은 잠자리였는데 그런 수고로움도 전혀 마다하지 않으시던 두 분.  


내년에도 아들분과 다시 순례길에 올 수 있길 바란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뒤에서 묵묵히 따라가던 G(아버지를 보면서 가려고 하는지 G는 늘 한 발짝 뒤에서 걸었다)에게 존경의 마음을 담아 조개 문양 뱃지를 사 선물로 드렸더니 두 분 다 아이처럼 참 좋아하셨다.


나를 보시고 작지만 용감한 한국 여자라고 분에 넘치는 칭찬을 해 주셨지만 그 분들 앞에서 내가 무슨 수로 주름을 잡을 수 있을까.

12번째 순례길 중이신 77세의 이탈리안 A와 그의 뒤를 묵묵히 따르는 아들 G



나의 까미노 파파 A는 5번째 순례 중이셨다. 60이 넘은 연세에도 어찌나 유쾌하시던지 만나기만 하면 웃느라 정신이 쏙 빠질 정도였다. 그 연세에도 마라톤을 완주하시고 순례길도 몇 번이나 찾으실 정도로 건강하신 이 분은 순례길 오시기 몇 달전에 영어 배우기를 결심하신 후 로마에 있는 영어 학원에 다니신단다.


"Sunny, 나랑 영어로 대화하면서 걸어요!"

하며 친근하게 내 어깨에 손을 턱 얹으시던 그는 가끔 문법도 맞지 않고 발음도 정확하지 않은 표현을 쓰시긴 하지만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순례길을 마친 후에도 그와 나는 종종 Whatsapp에서 영어와 이탈리아어로 대화하며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중이다. 영어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시는 나의 까미노 파파 A를 떠올리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하도 많이 들어 지긋지긋하지만 막상 내 상황이 되면 겁이 났던 그 말.

도전에 결코 늦은 나이는 없다.

내가 만난 분들은 도전에 대한 걱정을 행동으로 옮긴 분들이셨다.



그 분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존경과 박수를 보내드리면서 나에게도 한 마디 건네본다.

늦지 않았다. 그러나 내일부터는 하루씩 늦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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