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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Oct 06. 2018

하루에 100km를 걸어 산티아고에 닿은 그의 이야기

무모할 지는 몰라도 평생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된 그의 도전

포르투갈 순례길 여섯 째 날 묵은 순례자 사립 알베르게에서 그 곳의 사장님인 A에게 물었다.


"A, 무슨 이유로 이 알베르게를 운영할 생각을 했어?"

"나는 순례자들이 좋아. 그들에게 배울 점이 참 많거든"

"그렇구나, 그럼 너도 순례자의 길을 걸은 적이 있어?"

"하하 그럼 있지!"


그러면서 들려준 그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러했다.



몇 년 전 어느 날, A와 그의 친구(나중에 나오겠지만 이 친구가 나의 도난 당한 핸드폰을 찾는데 일조한 숨은 공신이기도 하다)는 함께 순례길을 걷기로 결심을 했다. 하지만 시간상 오래 걸을 여유가 없어서 고민하던 중 이런 황당한 도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하루(24시간)에 Tui에서 Santiago de Compostela까지 걸어가보자 


Tui(투이)는 포르투갈/스페인 국경과 맞닿아 있는 스페인의 도시이고 Santiago de Compostela(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알다시피 모든 순례자들의 최종 목적지이다. 두 도시의 거리는 약 100km. 한국과 비교하자면 무려 서울역에서 춘천역까지 거리이다.


투이에서 산티아고까지


참고로 내가 순례길 위에서 하루에 평균적으로 걸은 거리는 25km이고, 나의 여정 중 하루에 제일 많이 걸었던 거리는 36km였다. 거기에 비하면 거의 3-4배나 되는 거리를 24시간 안에 걷겠다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었다. 그의 아버지한테 말씀을 드렸더니 아버지는 웃으시며 너가 그걸 해 내면 얼마를 주겠다라는 공약을 하셨단다. 





하루 만에 다 걸을 생각이었으니 여벌 옷이고 침낭이고 다 필요 없기에 물리적으로는 매우 가벼운 마음으로 그들이 Tui의 출발선에 선 시각은 밤 12시. 다른 순례자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꼭두새벽에 순례길을 시작했다. 


둘은 쉬지 않고 걸었단다. 걷고 또 걷고, 걷고 또 걷고, 걷고 또 걸어 그들은 Tui에서 70km 정도 지점에 위치한 Caldas de Reis에 도착을 했다. 70km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마라톤을 두 번 완주하는 거리에서 14km를 빼면 남는 거리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친구는 발에 심각하게 무리가 왔고(그 정도면 무리가 안 오는 게 이상할 정도) 결국에는 그 곳에서 백기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제 남은 거리는 온 여정의 절반에 못 미치는 30km. A도 친구가 울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덩달아 고민했지만, 그는 남은 그 길을 혼자서 가기로 결심했다.


"그 30km를 어떻게 걸었는지 보여줄게"하면서 A는 일어나더니 내 앞에서 약 10m를 양발을 심각하게 절면서 엄-청나게 느린 속도로 걸었다. 그걸 지켜보는 내가 다 안타까울 정도였다.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그는 계속해서 걸었고 그렇게 출발한 지 21시간이 조금 넘은 산티아고의 밤, A는 마침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 섰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존경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보통 사람은 생각하기도 쉽지 않은 그 무모한 도전을 결심한 것부터가 범상치 않은데 도대체 어떤 정신력으로 해 낸 건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스토리였다.


A가 나중에 자기 자식들이나 손주들에게 이 얘기를 해 준다면 얼마나 흥미진진할까 생각하니 나도 가슴이 짜릿했다. 평생에 잊지 못할 경험에 도전하고 성공한 A의 패기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믿기지 않아. 너 정말 대단하다. 너의 아버지는 뭐라고 말씀하셨어?"

"내가 해 낼 줄 모르셨대. 그리고 약속하셨던 대로 돈도 많이 주셨는데 문제는 그 다음날 부터 며칠을 병원 신세 지느라 돈도 잃고 건강도 잃었어! 하하"

하며 농담하는 A는 앞으로 얼마간은 순례길을 걸을 생각이 없단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라면 순례길을 떠나 인생의 그 어떤 일이고 가능하게 만들 사람이라는 것을.


그에게 또 한 수 배우며 2018년 5월 18일의 잊지 못할 까미노 여섯째 날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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