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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Oct 17. 2018

우리 집 옆 작은 폭포수가 너의 상처를 치료해 줄거야

대가 없이 준다는 것

말레이시아 비자런을 이유로 발리 응우라이 공항으로 가는 셔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는 예정시간이 훌쩍 넘어서도 오지 않았는데 그러던 중 내 옆에서 발리니즈 간식류를 파는 A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 왔다. 

"어디서 왔어?"


늘 그렇듯이 이름과 출신, 우붓에서 얼마나 있는지 등 얘기를 하다가 A는 내 목에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 자국을 발견했다. 침샘에 생긴 작은 낭종 제거 수술을 하고 남은 흔적이었다.


"여기 무슨 일이 있었어?"

"아, 발리 오기 전에 독일에서 작은 침샘 수술을 했는데 그 상처가 아직 아무는 중이에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내가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는 방법을 알려줄까?
우리 집 근처에 작은 폭포가 있는데 그 곳에 흐르는 물에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어. 너가 괜찮다면 내가 데려가 줄게.



만난 지 10분 만에 그녀는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하지만 그 당시 발리에서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약간은 경계심도 있었고 그녀 집이 우붓 시내가 아니라 스쿠터를 타고 20분 정도 떨어져 있다는 말에 나는 고마운 마음만 받기로 하고 나중에 시간이 되면 가겠다는 (빈)말을 한 후 말레이시아에 다녀왔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우붓, 내가 머물던 숙소에 가려면 그녀의 작은 노점을 늘 지나가야 했기에 그녀를 다음 날 다시 마주쳤다.

"Sunny! 말레이시아 잘 다녀 왔니? 별 일 없었어? 다시 우붓으로 돌아왔으니 이번 주 주말에 시간 되면 우리 같이 폭포로 가자. 유명하지 않은 곳이라 관광객도 없고 아주 조용할 거야"

또 다시 집에 초대를 하기에 아직도 의심스럽긴 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마음을 열어보기로 했다. 


"아 그럴까요? 제가 집에 어떻게 가면 돼요?"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너를 우붓에서 스쿠터로 픽업해서 같이 갔다가 올 때도 다시 집으로 데려다 줄게!" 

과한 친절 때문일까, 의심이 완전히 거두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약속한 토요일 오후가 되었다.



그녀는 딱 맞춘 시간에 스쿠터로 나를 바래러 왔다. 그녀의 뒤에 타 허리를 꼭 잡고 부릉부릉 20여분 정도 달리니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그녀의 정원에는 파파야, 드래곤 푸르트(용과), 코코넛 나무 등이 듬지막하게 자라고 있었고 곧 이어 그녀는 옐로우 코코넛을 하나 따서 나에게 건네 주었다. 보통 흔한 것은 초록색이지만 이건 말 그대로 노란색 코코넛이었다. 많은 코코넛 종류 중에서도 맛있는 종이어서 보통 발리니즈 의식에 많이 쓰인단다. A의 남편분께서 코코넛을 열어주셔서 한 입 마셔보니 이건 뭐 설탕물이 따로 없다.

A의 정원에 자라고 있는 파파야 나무


그녀의 딸인 중학생 J와 초등학생 조카 N는 코코넛에 감탄하며 단숨에 벌컥 벌컥 마시는 내가 신기한 지 내 옆으로 스윽 와서 인도네시아어로 말을 붙였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A가 옆에서 주는 도움 및 눈빛과 미소로 이 순박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옐로우 코코넛 원샷을 한 나에게 A는 싸롱(Sarong: 허리에 감는 긴 천)을 건네며 폭포로 가자는 신호를 보내니 J와 N도 우리를 따라 쫄레쫄레 나선다. 우리네 시골 마을처럼 A도 동네 사람들(거의 다 친지들)과 인사를 하며 나를 한국에서 온 Cantik(인도네시아어로 예쁜이)이라며 소개시켜 주었다. 전통 방식으로 발리니즈 먹거리를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도 A 덕분이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 쌀로 만든 어떤 음식

 

그렇게 10분 정도 발리 어느 시골 길을 자박자박 걸어 정말로 작고 고요한 폭포에 도착했다. 자연의 법칙을 순응하며 물은 자유로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A는 작은 두 손에 폭포수를 고이 담아 얼른 아물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내 목에 난 상처 부위를 부드럽게 문질러 주었다.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나에게 이런 성의를 베풀어 주는 그녀의 따뜻한 에너지가 나를 치유해주고 있었다. 그 폭포수가 정말로 과학적으로 상처를 낫게 하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생판 모르는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베푸는 이 친절을 A는 어디서 배운 걸까. 나는 그제서야 그녀에게 배웠다지만.


힌두교식 의식을 짧게 거행하고 그녀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프란지파니(Frangipani) 꽃을 우리들 귀에 꽂아 주었다. 그렇게 우리 넷은 귀에 향기로운 프란지파니를 꽂고 폭포 옆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그 후 택시를 타고 집에 가겠다고 했지만 A는 괜찮다며 결국 나를 숙소 앞에까지 다시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감사한 마음을 담아 예쁜 팔찌 몇 개를 사서 선물하니 하얀 이를 보이며 소녀처럼 좋아하던 그녀.


그녀는 나에게 (비록 지금도 쉽지는 않지만은) 조금이라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사는 것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갖는 법을 가르쳐 준 발리의 감사한 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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