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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Oct 18. 2018

스페인 지역 신문에도 실린 아이폰 도난 스토리

천사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일어날 수 없었던 그 날의 사건

2018년 5월 18일, 순례자의 길 여섯째 날 나에게 일어난 사연은 아주 기막히다. 


전 날 도착한 Tui(투이)에서 O Porriño(오 포리뇨)까지는 20km 정도. 거리가 많이 멀지 않기에 가볍게 길을 나섰다. 날씨도 쾌청한 데다가 목적지로 가는 길은 산림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기에 기분이 한결 가벼웠다. 생각보다 이르게 점심 12시 30분쯤 O Porriño에 도착을 했는데, 그 곳 공립 알베르게(순례자를 위한 호스텔)가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연다는 말에 이 김에 5km를 더 걸어서 Mos라는 곳까지 가볼까 고민이 되었다.


일단 근처 슈퍼마켓에 들러 간단히 점심 거리를 사고 나와 먼저 도착한 체코 친구 V에게 문자를 보냈다.

"V, 나 지금 O Porriño에 도착했는데 너는 어디야? 사실 나는 지금 Mos까지 갈까 고민중이야"

"Sunny, 나는 지금 FROIZ라는 슈퍼마켓에서 먹을거리 사고 있어!"


방금 내가 먹을 거리를 사고 나온 그 슈퍼마켓이다.

"알겠어, 그럼 나 슈퍼마켓 앞에서 기다릴게!"

라는 문자를 보내고 나는 다시 FROIZ 슈퍼마켓으로 발걸음을 옮겨 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내 손에는 등산 스틱, 물, 과일, 점심 그리고 아이폰까지 들려 있었기에 그 모든 것들을 잠시 옆에 내려 놓고 쉬고 있었다(메인 사진 참고). 내 옆에는 180cm 정도 되어 보이는 한 남자분이 작은 종이컵을 들고 슈퍼마켓에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 같기에 바로 옆 30m 정도 떨어진 까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 마시기로 하고 까페 의자에 앉아 V에게 여기에 있다고 문자를 보내기 위해 아이폰을 찾으려니

어, 휴대폰 어디갔지? 

가방을 열어 밑에까지 다 뒤져보아도 없기에 이상하다 싶어 다시 마트로 돌아가 보았다. 내가 잠시 쉬고 있던 그 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금방 전까지 그 구걸하던 아저씨도 본인 가방과 종이컵을 덩그러니 남겨놓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상한 냄새가 났다.


그 때 슈퍼마켓에서 V가 나와 상황을 설명하고 내 아이폰으로 전화도 해 보았지만 어짜피 무음 설정이 되어 있어 소용이 없었다. 마트 직원에게 가 그 남자에 대해 물어보니, 이미 오래 전부터 여기서 구걸을 하고 있던 사람이라고 했지만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 사는지에 대한 개인 정보는 하나도 얻을 수 없었다. 


V는 인터넷으로 검색해 근처에 경찰서가 있다고 알려주었고 우리는 경찰서로 약 100m 정도를 같이 걸어가고 있다가 V는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나는지를 보러 다시 슈퍼마켓으로, 나는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에 도착했지만 문제는 언어였다. 영어가 도무지 통하지 않아 스페인 경찰 두 분과 나는 구글 번역기를 통해 평소보다 2배가 더 걸리는 시간을 상황 설명을 하는 데 썼다. 내가 한 문장을 영어로 입력 후 번역을 누르고 나면 그 경찰 두 분은 스페인어로 해석 된 것을 보고 다시 두 분이서 얘기하면서 상황 정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상하긴 했어도 그 남자가 범인이라는 데에 100프로 확신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스페인 경찰은 나에게 아이폰 트래킹이 가능하냐고 물었는데 나는 평소에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성격이 아닌데다가 들어보기만 했지 어떻게 트래킹이 가능한지에 대한 정보도 하나 없었다.


그 때 V가 어떤 스페인 친구 S와 함께 경찰서로 들어왔다. 

"Sunny, 내가 다시 슈퍼마켓으로 갔는데 저 앞에 그 남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본인 가방을 들고 황급히 숲 속으로 뛰어가는 걸 봤어! 쫓아가려고 했지만 그의 걸음이 너무 빨라 도무지 따라 잡을 수가 없었어. 

그리고 다시 마트로 돌아오던 중에 호스텔 앞에 앉아있던 이 친구(S)에게 그 사람에 대해 물어보고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니 흔쾌히 도와주겠다는 그녀의 말에 이렇게 같이 오게 되었어"


그가 범인이라는 사실에 조금 더 신빙성을 주는 증언이었다. S는 나와 V의 이야기를 경찰들에게 통역해 주었고 그 경찰들은 키 180cm의 남자, 모자, 직사각형 가방이라는 세 가지 단서를 다른 경찰들에게 전달해 V가 얘기한 숲에서 찾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렇지만 그 때 이미 나에게는 한국도 독일도 아닌 스페인에서 잃어버린 휴대폰을 다시 찾을 거란 희망이란 이미 없었고 내일 어디서 새로 사야 되나라는 생각만이 있었다. 


아침에 20km를 걷고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한 상태로 패닉이 된 나에게 S는 공립 알베르게가 열 때까지 본인 호스텔로 가서 잠시 쉬자고 제안했다. 그녀의 호스텔로 가는 길에 다시 그 슈퍼마켓에 들렀는데 이번에는 다른 한 직원이 그가 루마니아 출신이라는 정보를 주었긴 해도 그 이상의 힌트는 얻을 수 없었다. CCTV의 적용 범위 밖에 있어 카메라 확인도 불가능했다. 



겨우 그녀의 호스텔에 도착해 물을 한 모금 먹고 깊게 심호흡을 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일단, 독일에 있는 아이폰에 대해 잘 아는 친구에게 연락해 보기로 했다. 그치만 내 휴대폰 번호도 가물가물한 마당에 그의 번호가 기억이 날리가. S가 호스텔 컴퓨터를 잠시 쓰게 해 주어 그에게 이메일을 보내려고 gmail에 접속을 하니 외부 접속이니 인증 코드를 아이폰으로 보낸단다. 

아이고.. 보안은 고맙지만 제 아이폰 도난 당했어요..ㅠㅠ

결국 S의 계정을 빌어 그에게 지금 시간되면 빨리 V 번호로 전화 좀 달라는 이메일을 남겼다. 



이메일에 내 이름을 쓰는 기본적인 것도 잊었지만(내 친구는 처음에 스팸 메일이라고 생각했단다) 그 전에 내가 순례길에서 체코 출신 V를 만났다는 걸 기억한 내 친구가 10여분 후 그녀의 체코 번호로 전화를 걸어왔다. 흥분해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그가 '독일 다시 돌아오면 내 예전 아이폰 빌려줄게 너무 걱정마'라며 위로하면서 (아이폰을 다시 찾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1도 못했겠지) icloud.com에 접속해 보라고 알려주었다. 



친구와 통화하는 와중에 S는 그녀의 보스인 A(100km를 하루에 걸은 그 친구, 참고:https://brunch.co.kr/@thesunnylife/49)에게 상황 설명을 해 주었다. 아이폰 소유자인 A였지만 그도 나처럼 아이폰의 기술적인 부분에는 문외한이었다. 상황을 듣고 난 후 A는 그의 IT 엔지니어 친구인 A(100km를 같이 걸은 친구)에게 전화를 해 도움을 청했고 그 친구는 호스텔 컴퓨터와 그의 컴퓨터 사이에 원격 조정 세팅을 했다. 그 때에 너무 경황이 없어 스페인어에서 영어로 언어 설정을 바꾸는 것도 버벅거리던 나였다.


절망에서 아주 풀오라기 같은 희망을 가지고 icloud에 들어가 내 Apple 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니 이번에는 6자리 Verification code를 넣으란다. 이 코드는 MAC 디바이스에서 받을 수 있는데 내 아이폰은 아직 살아있다면 지구상 어딘가에, 내 맥북은 독일 집 TV 서랍 장 안에 있었다. 맙소사.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순례길을 걷는 동안 내 방을 다른 분께 빌려드리고 왔기에 내 맥북을 확인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지만 그 분 전화 번호가 기억이 날리가 없다.

그치만 이건 또 무슨 불행 중 다행인지, 휴대폰 도난 3일 전, 그 분이 실수로 집 열쇠를 부러뜨리는 바람에 내 다른 스페어 키를 드려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스페어 키를 금방 통화한 그 친구가 가지고 있었기에, 내가 스페인에 있는 동안에 둘이 연락이 닿아 열쇠를 교환하게 되었다. 그 말인 즉슨, 금방 통화한 독일 친구에게 내 방에 지내고 계신 분의 연락처가 있다는 것. 또 다시 여차저차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하니 정말 다행히도 그 시각에 집에 계셨다!


"정말 죄송한데 제가 지금 아이폰을 잃어버려서 도움이 좀 필요해요. TV 밑 장에 보시면 제 맥북이 있는데 xxxxx 비밀 번호로 로그인을 하신 후 거기에 뜨는 6자리 코드 좀 알려주시겠어요?" 


그녀가 한 자리 한 자리 불러주는 6자리를 떨리는 마음으로 입력을 했다. 그리고 클릭.

아이폰 추적이 되었다!


도난 후 1시간 반-2시간 정도 된 시각, 

내 아이폰은 호스텔이 위치한 O Porriño에서 20km 정도 떨어진 Vigo라는 곳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그 때, A가 내 손을 잡고 "Sunny, 가자!"하고 끌어 당겼다. 


자기 차에 펄쩍 올라 타 겨우 여권과 몇 푼의 돈만 챙겨 온 나를 옆에 앉힌 후 Vigo로 황급히 운전해 갔다. 그 와중에 IT 친구는 원격 조정된 컴퓨터로 계속해 A에게 위치 업데이트를 해 주었다. 


Vigo로 가는 중에도 나는 다시 찾을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크게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냥 이 상황이 어벙벙할 뿐이었다. 누가 보면 A가 휴대폰을 잃어버린 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을 정도로 A는 내 일을 자기 일처럼 보살펴 주고 있었다. 


A는 그 때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개인적으로 Vigo 지역 경찰서장님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그 분의 개인(!)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했다. 스페인어로 통화를 했기에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는 분명 경찰서장님께 우리가 지금 Vigo로 도난 당한 아이폰을 찾으러 가고 있으니 잠시 후에 그 곳으로 와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깊게 하고 진정하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나서 원격 조정하는 대신에 A의 휴대폰을 이용해 icloud에 접속 후 위치 추적을 바로 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는 꼭 너의 휴대폰을 찾을거야. 걱정하지 마! 

A는 Vigo로 가는 30분 동안 이 같은 말을 30번은 넘게 하면서 나를 진정시켜 주었다.


그렇게 A와 나는 두 손을 꼭 잡고 icloud가 알려주는 지점 부근에 도착해 Vigo 지역 경찰을 만났다. 사실 이 분들은 우리가 도착하고 나서 30분이 지나서야 도착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A의 첫 전화를 받자마자 출발한 경찰들이 도로 위에서 경미한 사고가 나서 병원에 가게 된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단다. 내가 왠지 모르게 죄송한 마음이 드는 소식이었다.


그렇게 A과 나, 스페인 Vigo의 지역 경찰 2명이 절도범 수색에 나섰지만 문제는 15cm도 되지 않는 작은 아이폰의 정확한 위치 정보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icloud가 보여주는 휴대폰 위치를 보면서 건장한 경찰 2명이 조용한 주택가 거리를 이리저리 배회하니 이웃 주민들이 무슨 일 났나 싶어 집 밖으로 하나 둘 나왔다. 


마트에서 받은 유일한 힌트인 루마니아 출신 사람이라는 것이 생각나 이웃들에게 물어보니 한 여자분이 "13번에 루마니아 남자가 살아요!"하고 가르킨다. 대박.


나는 혹시 해코지할까 겁이 나 나무 뒤로 숨었고 경찰들은 13번 집 문을 두드렸다. 30분 동안 문을 두드렸지만 집 안에는 전혀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배고픔과 탈수에 점점 더 지쳐 나무 뒤에 펄썩 주저 앉았다. 


그 때,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오신 어떤 주민 분이 상황을 기웃거리시다가 경찰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났나요? 저 금방 13번에 사는 남자를 근처 OO 슈퍼마켓에서 봤는데요."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 본 경찰차가 스페인 경찰차였다. 나와 A, 경찰 1분은 신기한 경찰차를 타고 가 그 거대한 마트를 수색했지만 그건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였다. 범인의 인상 착의를 아는 사람은 나 혼자였지만 내가 그를 상세히 들여다 본 것이 아니었으므로 나마저도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슈퍼마켓 앞 넓은 공원에서 조금 미심쩍어 보이는 사람이 있어 물어보긴 했지만 허탕이었다.


근데 이건 또 무슨 일. 그렇게 공원 주위를 배회하던 중에 13번 집 앞에 남아있던 경찰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자가 집으로 돌아왔다고.

내 인생 두 번째로 경찰차를 타고 13번 집으로 이동해 나는 다시 나무 뒤로 숨었고(A는 아직도 이걸 가지고 겁쟁이라고 놀린다. 그리고 아마 평생 놀릴 예정인거 같다. 흥) 경찰은 그 범인과 마주했다. 그 범인은 그 사이에 옷을 바꿔 입었지만 그 사람이 확실했다. 


"몇 시간 전에 O Porriño에 갔었나요?" 경찰이 물었다.

"아니요, 저는 오늘 Vigo에만 있었어요." 범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뻔뻔하게 대답했다.

"아시아에서 온 여자의 아이폰을 훔친 적이 없나요?" 다시 경찰이 물었다.

"아시아 여자를 만난 적도 없고 휴대폰을 훔친 적도 없습니다." 호기롭게 그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집을 좀 수색해도 되겠습니까?" 하고 경찰은 13번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예쁜 꽃이 그려진 나의 아이폰 커버는 튀긴 해도 도난시에는 큰 구실을 하지는 못했다. 무음 설정으로 되어 있었기에 전화를 하는 것도 다시 무용지물. icloud에서 할 수 있는 울림 기능이 있다지만 그 때는 그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스페인 경찰이 본인들의 휴대폰으로 어떤 번호 10자리 정도를 입력 후 뒤이어 내 휴대폰 번호를 이어 입력한 뒤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부엌 쪽에서 내 꽃무늬 아이폰이 띠링띠링 울리기 시작했다(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 내 아이폰 무사하구나.


휴대폰을 가지고 나와 사건 경위서를 작성하는 데 그 남자는 계속 해 본인은 훔친 것이 아니라 길에 떨어져 있는 걸 주운 것 뿐이라는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면서 미안한 기색을 하나 비추지 않았다. 


나는 빼꼼 빼꼼 나와 경찰 옆에 딱 붙어 섰고 그 김에 그 남자에게 나름 당당하게 영어로 한 마디 건넸다.

"Don't do that again!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세요!)"

그러자 영어를 잘 못 알아들은 건지 정말 그러면 안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경찰 둘과 A가 당황해 하며 나를 뜯어 말린다. 내가 싸움이라도 거는 줄 알았다나 뭐라나. 하하 그 정도 패기는 없소이다.


어쨌든 여러 사람의 도움에 힘입어 금쪽 같은 아이폰을 찾아 A의 차를 타고 O Porriño로 돌아왔다. 나중에 들은 A 말로는 휴대폰 분실과 같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사건은 경찰들이 2-3일이 지난 후에야 처리하기 시작한단다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치만 그가 Vigo 지역 경찰서장님께 부탁드려 당일날 바로 해결할 수 있었다고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무슨 행운인지 참 믿을 수 없다.






당연히 그 날은 S와 A의 사립 알베르게에서 머무르기로 하고 그제서야 샤워를 했다. 조금 쉬고 안정을 찾고 난 후 A와 S, V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저녁 제안을 했다 (IT 친구 A는 그 곳에 살지 않아 안타깝게도 초대하지 못했다). A는 우리를 데리고 해안가를 따라 차를 운전해 그의 두 번째 알베르게를 구경시켜 준 후 가볍게 와인 한 잔을 하고 나서 그와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O Porriño의 식당으로 안내했다. 우리는 그 곳에서 토르티야 데 파타타스(Tortilla de patatas: 스패니쉬 감자 오믈렛), 피미엔토스 데 파드론(Pimientos de Padron: 스패니쉬 꽈리고추 볶음), 라자냐 등의 음식과 와인을 곁들여 너무나도 맛있고 푸짐하게 먹었다. 

나의 최애 스패니쉬 음식인 토르티야 데 파타타스
피미엔토스 데 파드론. 별 거 없어보여도 빵과 함께 먹으면 엄청나게 별 거 있는 맛이 난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행복함에 젖어 식사를 마무리 한 후 원래 차지된 금액의 두 배 정도를 지불할 생각으로 A에게 계산서를 달라고 하니 A는 한사코 거부했다. 내가 마음이 불편해서 그러니 받아줘라고 말하니 


Sunny, 네가 이걸 계산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친구가 아니야

라고 하며 이 마저도 안 받겠다는 A의 말에 너무나도 마음이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이 또 신세를 지고야 말았다. 




분에 넘치는 도움을 받은 이 날 침대에 누워 그 사연 많은 아이폰을 들여다 보는 중 갤러리 앱을 열었다. 그런데 

응? 이 사진 뭐지? 


꽃무늬 아이폰 도난범이 글쎄 내 휴대폰으로 셀피를 찍었다!

하지만 잠금 기능 덕에 사진을 지울 수는 없었던 덕분에 고스란히 자동 저장이 되어 내 갤러리에 남아 있었다. 참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잠든 사람들이 있기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삼키고 그 날 도움을 준 천사같은 사람들에게 그 사진을 보내주었더니 다들 대박이라며 음성지원되는 문자를 보냈다. 




다음 날 너무나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O Porriño에서 하루를 더 묵고 갈까 했으나 A가 안타깝게도 일 때문에 시간이 많이 없다고 해(알베르게 2개와 식당 1개를 운영하는 사업가니 그럴 수 밖에. 거기다가 곧 다른 알베르게를 오픈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다음 날 V와 함께 길을 나섰다. 알베르게를 나가면서 A에게 우리는 이제 간다고 고맙다는 인사의 문자를 보내니 "아이폰 또 잃어버리면 연락해! 찾으러 갈게!"하고 재치있는 답장을 받았다. 


그 문제의 슈퍼마켓을 지날 때 잠시 멈춰 기념사진을 한 장 찍은 후 나의 꽃무늬 아이폰을 힙색 안에 잘 넣고 단단히 걸어 잠궜다. 아니, A를 다시 보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잃어버려야 하나? 





그리고 며칠 후 걷는 도중, A에게서 한 사진을 받았다. 우리 이야기가 Vigo 지역 신문에 실렸단다. '뭐라고? 하하, 말도 안 돼!' 라는 답장을 보내고 고작 몇 시간 뒤 그리고 며칠 간 그는 이 스토리가 실린 몇 개의 뉴스 링크를 순차적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본인을 인터뷰하러 알베르게로 찾아오기까지 했다고. 


이러다가 너 스페인 슈퍼스타 되는 거 아니야? 하니

"하하, 그건 아니지만 분명 우리 알베르게 마케팅에는 도움이 되었어!"하던 A. 


이 날의 이야기가 담긴 뉴스들은 다음과 같다:

A가 보내준 갈리시아 지역 신문


아이폰 도난범의 셀피가 담긴 뉴스(내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됨):

https://www.diariodepontevedra.es/articulo/comarcas/la-caida-del-ladron-del-selfi/20180523174551982084.html


Vigo 지역 신문에 실린 뉴스:

https://www.vigoe.es/vigo/sucesos/item/22314-roba-el-movil-a-una-peregrina-coreana-en-porrino-y-es-localizado-en-vigo-con-buscar-mi-iphone


Pontevedra의 지역 신문에 실린 뉴스:

https://www.diariodepontevedra.es/articulo/vigo/denuncian-hombre-robarle-movil-peregrina-porrino/20180521184622981741.htmlhttps://www.vigoe.es/vigo/sucesos/item/22314-roba-el-movil-a-una-peregrina-coreana-en-porrino-y-es-localizado-en-vigo-con-buscar-mi-iphone


Galicia 신문에 실린 뉴스:

https://www.lavozdegalicia.es/noticia/vigo/o-porrino/2018/05/22/app-buscar-iphone-delata-autor-robo-peregrina/0003_201805V22C4991.htm




순례길을 마치고 독일에 돌아오자 마자 내가 제일 처음으로 한 일은 A와 S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기념에 남을 선물 박스를 보낸 것이었다. 며칠 후 A이 깜짝 선물을 받고 기쁜 마음에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Sunny, 너는 믿을 수 없이 사랑스러운 사람이야. 모든 것에 다 고마워.
우리 곧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래!

그는 내가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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