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루틴

잘못된 리듬이란 없다

by Plum

2020.09.1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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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뭐든 늦게 시작했다. 아니 오늘만이 아니지. 성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생산적인 모닝 루틴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주말이나마 아침을 알차게 채우겠노라 결심했었다. 기상 시간은 융통성 있게 아홉시, 일어나서 바로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20분가량의 요가 동영상을 따라한다. 그리고 아침 명상을 하고 좋은 기운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내 안의 긍정적인 것들을 끌어와 지면에 박제시키기 위해 일기를 쓴다. 아마 이 모든 루틴이 끝나는 시점은 열한 시쯤. 그렇다면 아침부터 이긴 기분이 들 것이고 승리의 기운은 내 인생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이다. 실제로 한 달 정도는 계획이 유효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일어나자마자 배고파서 밥 먹고(사실 요가와 아침 명상은 공복에 해야 하는데!) 뒹굴거리다 보면 오후 두세 시다.


돌이켜 보면 그냥 평화롭고 따뜻하게 보냈을 뿐인데, 오후만 되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절차에 아침을 맞추지 못했다는 생각에 열패감에 휩싸였고 넘어가기까지 한참을 남겨두고 있는 햇빛이 무색하게 하루를 그냥 포기해 버리곤 했다. 그런데 이젠 그러지 않기로 했다.


명사들이 추천하는 아침 일과나 누구나 본 받고 싶어 하는 모습은 아닐지 몰라도, 내게는 내가 평화를 느끼는 일련의 행동들이 있다. 언젠가부터 나는 토요일이면 느지막히 일어나 대충 차려 입고 엄마와 함께 서브웨이와 스타벅스를 차례대로 들러 쉬림프 샌드위치와 달달한 커피를 사와 아침으로 먹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냥 이게 내 모닝 루틴인 거다. 재미 없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늘 똑같은 맛의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지만 그냥 그 순간이 더없이 안정되고 좋다.


이 루틴은 엄마와 함께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가볍게 먹을 것을 사오게 된 것에서 유래되었는데, 지금은 물리치료를 받지 않는데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 행동 안에서 나와 엄마가 하루를, 한 주를 이끌어갈 어떤 에너지를 느꼈다는 거다. 사실 지금까지는 아침 나절의 두 시간을 허비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는데 이젠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명상할 때만큼의 안정감을 느낀다.


더없이 편안한 시간을 보내다 천천히 요가 매트를 펼쳐 가볍게 왕초보 요가 동작을 따라하고 물 한 컵을 마신 뒤 고요히 명상을 한다. 그리고 지금은, 아침에 먹다 남은 커피를 홀짝이며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책상에 앉아 아몬드를 까 먹으며 일기를 쓰고 있다. 마땅히 일어나자마자 했어야 할 일을 연기한 것이 아니라 내 식대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없이 편안하고, 충만하고, 의욕이 샘솟는다.


나는 항상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었다. 내가 게을러서, 적당한 계기를 마련하는 것을 늘 미뤄와서 아직 내 최적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 혹은 아직 사회적인 평판은 높지 않을지 몰라도 내가 흠모하는 사람들이 하루를 꾸려 가는방식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따라해 보려 했다. 일상적으로 자극을 받았고, 조금씩이라도 내 삶에 적용해 나가면 자연스럽게 내 삶에도 아주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오리라 믿었다.


물론 유효기간이 길지 않았던 다짐과 그들을 닮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어느 정도 결실을 맺긴 했을 것이다. 덕분에 명상을 하게 되었고, 언제나 습관을 염두에 두었던 나약한 내게서 벗어나 시작하는 걸 덜 두려워하게 되긴 했다. 지금 이렇게 의무적으로나마 내 생각을 글로 새기는 것도 좋은 습관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러느라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보는 데엔, 나를 기준점으로 내게 어울리는 것, 나를 가장 잘 뒷받침하고 보조하는 것을 내 의지로 취사선택하는 데엔 게을렀다는 생각 또한 든다. 나는 분주하게 게을렀다. 억지스럽고 내 리듬과 불협화음을 이룬다는 걸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계속 불완전한 상태로 남고 싶냐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내가 부재하는 이상적인 삶에 나를 끼워 맞추려 했다.


나에게 뭐가 좋은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감탄스러운 일과를 시도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런 후에는 내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그것이 내게 어떤 방식으로 좋으며 나는 그것을 언제 어떻게 나를 위해 쓰고 싶은지 생각해 봤어야 했다. 그렇게 내 루틴을 구성했어야 했다.


그들의 루틴이 대단한 이유은 그만의 방식으로 쌓아온 결실의 궤적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것은 그의 성향과 태도와 목표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결과물이기에 그를 제외하고서는 그 누구에게도 유효하지 않다. 그리고 이미 차곡차곡 나의 시간을 축적해 왔으므로 내 이상은 그 누구와도 같을 수 없다. 당연히 나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하루를 구성해야 매일이 무수히 쌓여 이뤄낼 언젠가의 결실 역시 나만이 전할 수 있는 메세지로서의 의미를 지닐 것이다. 내게는 이루고자 하는 나만의 목표가 있기에.


잘못된 리듬이란 없다. 내 리듬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적절히 배치하면 조급하지 않고도 무언갈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자연스러운 나의 한 걸음을 떼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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