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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Jul 19. 2019

너나 나나 시집 잘 갔다


토요일,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말이 왔지만 쉴 수 없는 주말이었다.

평소 경조사가 자주 있을 만큼 넓은 인간관계의 소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늘이 길일인 것인지 결혼식부터 돌잔치까지 참석해야 할 행사들이 연이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옷을 챙겨 입고 결혼식이 있는 부천의 웨딩홀로 발걸음을 겼다.

반짝거리는 순백의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고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미소를 짓는 후배의 모습에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라며 가슴이 찡해졌다.


결혼식장은 늘 가슴이 찡하다


사진을 찍고 사람들로 가득한 뷔페에서 식사를 마친 나는 다시 저녁에 있을 돌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바쁜 발걸음을 주히 움직였다.


아빠가 약속 때문에 못 가시니 같이 갈 거면 남편과 아이까지 세트로 참석해야 한다는 엄마의 이상한 논리에 휩쓸려 사촌동생과 면도 없는 남편을 끌고 사촌동생 딸아이의 돌잔치로 향했다.


사촌동생의 반가움 반 미안함 반이 실린 인사를 받으며 대부분의 돌잔치가 그렇듯 많은 사람들의 북적거림과 돌잔치 사회자의 커다란 음악소리가 뒤섞인 가운데 돌잔치가 치러졌다.





오늘 돌잔치를 치른 사촌동생은 엄마 표현을 빌리면 시집을 잘 간 케이스의 표본이었다.


아들의 결혼자금으로 턱 하니 큰 금액을 보태줄 수 있는 시부모님의 재력이며 학원강사였던 사촌동생을 전업주부로 만들 수 있는 남편분의  안정적인 재정능력을 꽤나 높이 평가 주변 사람들의 평가결과였다.


그에 비한다면, 나는 시집을 못 간 케이스에 속하는 분류였다.

거액의 결혼자금을 지원해줄 만한 재력이 없는 시댁에 결혼 당시 연봉과 연차수가 나보다는 낮은 남편이었던걸 감안하면 나는 참 결혼이라는 걸 흔히 말하는 계산기 한번 두드리지 않고 한꼴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시집 잘간 딸을 둔 외숙모가 부러워?!".


내가 투덜거리며 묻자 엄마가 대답하셨다.


"부럽기보다는.. 너희가 안쓰러워서 그렇지.

우리도 많이 못 도와주는데 너희는 너희 힘으로 다 해야 하니까.."


결혼하면서 우리는 처음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었다.

둘이 모은 돈과 친정집에서 이리저리 주신 도움을 더해 살 집은 어찌어찌 마련했지만 결혼식을 비롯한 각종 혼수들을 마련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남편 명의로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고 우리는 그걸 이용해 이리저리 발품을 팔며 실용성을 위주로 알뜰하게 결혼 준비를 마쳤었다.


집을 해온 사람이 없으니 예단도 없었고 몇 부 다이아 세트니 명품가방이니 하는 예물도 없었다.


그저 둘의 힘으로 무언가가 되어간다는 것이 기뻐 개설한 마이너스통장을 이용해 살림살이를  채워 넣었고 결혼 후에는 마이너스 통장을 채워가며 살아왔다.


시집 잘간 사촌동생이 부럽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만삭의 몸으로 지하철을 타며 회사를 다닐 때도 살 집을 매매할 때도 나는 돈 잘 버는 남편과 큰돈을 척척 보태줄 수 있는 부유한 시댁을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괜스레 그런 남편을 선택하지 못한 내선택이 원망스러웠을 때도 있었고 그런 형편을 갖추지 못한 남편이 미웠을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내가 돈벌이라는 것을 계속하고 있는 건 나름대로 내가 꿈꾸는 미래가 있어서였고 내가 지금의  남편을 선택한 건 앞으로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손을 잡으며 미래를 함께 하고 싶었다


결혼을 두고 비록 남들이 얘기하는 조건들은 따지고 계산하지 못했지만 나는 나, 나름대로 결혼 상대자의 조건들을 따지고 계산하여 선택한 결과였다.



그날, 아이를 안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사촌동생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 솔직히 네가 부럽긴 한데.. 그래도 아직 너랑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 너나 나나 시집 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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