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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Sep 18. 2019

질투가 차오른다

질투.


나는 제법 질투가 많은 편이다.


내가 여기에 제법이라는 말을 쓴 건 내가 질투가 많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나뿐이기 때문이다.


질투심을 내보이는 것이 좋은 모습 아니라고 생각했었기에 나는 내면에서 끝없이 느껴지는 질투심을 숨기려고 무진장 애었다.

다행히 그런 나의 이상한(?) 노력 덕분인지 주변 사람들은 나를 질투심 없고 욕심 없는 무던한 사람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질투가 많은 사람이다.






장 최근 나의 질투가 차올랐던 사건은 명절 연휴에 우연히 만난 친구 때문이었다.


늘 보자 보자 말만 했었지 멀리 살고 있는 탓에 긴 시간 동안  자주 만나지 못했던 그 친구는 우리를 카페에서 발견하자마자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명절을 맞아 친정집에 들렀다가 아이들을 그곳에 맡겨놓고 남편과 잠시 카페에 들렀다 그 친구는 옆에서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던 남편을 다른 자리로 밀어내 버리고는 나와 다른 친구까지 오랜만에 셋이서 모여 앉았다.



이미 초등학생 아이의 학부모가 된 친구는 요즘 살이 쪘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러했듯이 여전히 보기 좋게 날씬한 모습이었다.


한동안 어떻게 지냈냐며 서로이야기꽃을 피워가던 도중 그 친구의 뜬금없는 한마디에 잠시 우리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나 올해 말에 미국으로 이민 가."


아이들 교육 때문에 몇 해를 고민했다던 친구는 결국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씩 웃었다.

친구의 예상치 못한 소식에 어안이 벙벙해진 우리는 축하의 말과 함께 영어공부는 잘하고 있냐는 질문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대신했다.


"내가 젤 문제지. 애들은 어려서 그런지 곧잘 따라 하고 남편도 원래 업무 때문에 영어공부를 놓지 않아서 그런지 썩 나쁘지 않은데 나만 오랫동안 공부를 놓고 있어서 젤 문제야."



그 친구는 우리 사이에서 비교적 이른 결혼을 한 친구였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그 당시 박사학위를 위해 공부하던 남편의 내조를 하며 두 아이를 키우느라 바빴던 친구였다.


친구의 대답에 나는 다시 너의 을 시작하고 싶지 않냐 물었다.

그러자 지난해 다시 일을 시작해볼까 싶어 병원에 입사 허가까지 받았다가 아직 어린 둘째가 눈에 밟혀 결국 포기했다는 친구는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나는 그 친구가 참 부러웠었다.


능력 있는 남편에 넉넉하고 자상한 시부모님 그리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두 아이와 부족함 없이 살고 있는 그 모습이 멀리서 보기에도 참 여유 있게만 느껴졌다.


거기다 미래를 위해 외국으로 떠날 준비까지 갖춰졌다니 괜스레 질투가 날만큼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내 그런 내 생각은 그 친구의 얘기를 듣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어져 버렸다.


흔히 말하는 조건 좋은 남편을 만나서 저절로 이룬 행복이 아니라 그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며 가꾼 그 친구의 행복인 것 같아 마음이 짠하면서도 저건 다 저 친구가 당연히 받아야 하는 몫의 복인 거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긴 수다 끝에 친구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한번 더 보자는 약속을 남기고는 남편과 함께 자리에서 먼저 일어섰다.


나는 그런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차오르는 질투대신 새로운 곳에서 시작할 친구의 삶이 더 행복하길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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