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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Oct 12. 2019

당연한것이 당연한것이 아닐때


얼마전 신청자분이 서류를 작성하시러 오셨다.

신청 서류에 자필로 기록해야 할 부분들을 형광펜으로 표시해드리고는 짧게 기재방법을 설명드렸다.


그러자 그분이 서류만 멀뚱멀뚱 바라보시다가 이름하고 사인만 하면 안되냐고 되물으셨다.

나는 그분이 그렇게 물은 이유를 알지못하고 표시해 드린부분은 다 자필로 작성하셔야 한다고 짧게 대답하고는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내가.. 글자를 못써요."



아저씨는 한참을 망설인끝에 부끄러우신지 더듬거리는 말투로 대답하셨다.


글자를 읽고 쓰는것이 당연한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글자를 읽지 못하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나는 미처 하지 못다.


그분의 말에  얼른 서류를 다시 건네받아 그분이 적으셔야 할 부분을 연필로 또박또박 적어드렸다.


"제가 써드린거 똑같이 보고 따라쓰시면 되요."


내가 적어드린 글자를 천천히 삐뚤빼뚤 따라 적으시던 아저씨는 몇번이나 쓰셔야 할 글자를 빼먹으시거나 틀리셨다.

어쩔수없이 몇번을 다시 써드리니 아저씨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가득다.


"나같은 사람이 와서 피곤하겠네요. 미안해요."


사실 그분이 미안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그분이 나의 시간을 더 뺏은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해서 번거로울만큼 나를 힘들게 하신건 아니었다.

그저 글씨를 잘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하시게 된데에는 다 나름의 사정이 있으리라고만 생각할뿐이었다.


서류작성을 마치고 발걸음을 돌리시는 아저씨를 보며 저분의 인생사도 왠지 순탄지만은 않으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괜시리 마음이 짠해졌다.





어제 우연히 유퀴즈언더블록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가끔 재방송으로 즐겨보던 방송이었는데 어제는 한글날 특집으로 문해학교라는 곳에 다니시는 어른분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왔다.


여러 현실적인 문제로 배움의 때를 놓치신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문해학교에는 생각보다도 꽤나 많은 분들이 공부를 하고 계셨다.


특히 매일 학교에 두손을 꼭잡고 등교한다는 노부부의 인터뷰는 몇번이나 눈물을 훔치게 만들었다.


어려워진 집안사정때문에 식모살이를 하는 서러웠던 시절 얘기하는 때에도 눈물을 훔고 글자를 읽지 못해서 매번 식당에 갈때도 똑같은 메뉴만을 주문했다는 사연에도 저절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내가 가장 눈물이 났던 장면은 식모살이시절 자신을 모질게 괴롭혔던 주인아주머니에게 한마디 하라는 유재석씨의 얘기에 머뭇거리며 꺼낸 할머니의 말이였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그래도 주인아주머니는 괴롭혔던 제얼굴을 기억하고 계실거예요..
저는.. 그때 힘들었지만 이제는 잘살고 있어요. 아주머니도..  잘하고 사세요.
저도 잘하고 살게요.."


눈물을 연신 닦으시며 힘겹게 말씀을 이어나가시는 아주머니의 얘기에는 예상과는 달리 분노섞인 험한말은 하나도 담겨있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간 아픈 세월을 원망하지 않으려는 아주머니의 착한마음이 드러나는것만 같아서 더 눈물이 쏟아졌다.


글자를 읽고 쓰는일..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것이 당연하지 않을수 있다는걸 깨달은 요 몇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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