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대리 Jan 01. 2020

2019년을 보내며 드는 잡생각들

1.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휴대전화로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보다 보니 어젯밤 한 여자 연예인의 연예대상 소식이 메인뉴스로 올라있었다.


그녀의 대상 소식과 함께 그동안 수상복이 없었던 몇몇 여성 개그우먼들의 수상 소식이 함께 실려있었다.

그리고는 그 기사에 덧붙여 남성 개그맨들 위주로 일관되던 예능계에 여성 개그우먼들의 활약이 늘고 있다는 멘트가 덧붙여져 있었다.


실제로도 수상의 영광을 얻은 여성 개그우먼들은 대부분 십여 년 가까운 시간을 무명으로 지내왔거나 아님 일찍이 이름은 알렸지만 중간에 기나긴 슬럼프를 겪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녀들의 활약에 나도 모르게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졌다.



2.


난 솔직히 페미니즘의 개념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그냥 일반적이고 평범한 대한민국의 삼십 대 여성일 뿐이다.


어릴 적 여자도 남자만큼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도 가고 힘들게 취직도 했지만 때로는 여자라는 성별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그런 평범한 여성이다.


사실 그런 한계를 느끼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취업준비 시절에도 물론 그런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공기업에 가까운 지금의 직장에 취업하고 연차수가 꽤나 쌓이게 된 후에야 나에게도 여성이라는 이름의 한계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 회사는 표면적으로는 여성들이 다니기 좋은 직장에 허울을 쓰고 있다.

육아휴직이 보장되어 있고 육아휴직 후에도 눈치 없이 복직이 가능하다.

그리고 자녀 보육을 위한 휴가제도나 유연근무제등도 유지되고 있으니 여성들이 다니기 좋은 직장에 속한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여전히 존재한다.


여직원은 언제나 승진 순위에서 같은 남자동기나 후배들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일수였고 주요 기획업무에도 여직원이 주축이 된 적은 없다.


물론 남자 직원들 중에는 여직원들은 늘 어렵고 힘든 일들을 하지 않으려고 미루는 경향이 큰 편인 데다가 회식 및 각종 행사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 상대적인 차별을 받는 건 자신들이라는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남직원들 중에도 그런 직원은 분명 존재하기에 여직원 모두가 그런 특성을 갖는다고 얘기하긴 어려운 듯하다.




3.



신혼 초기 남편은 가끔  자신의 회사의 사장님과 소장님이 너무 여성 직원들만을 챙긴다고 투덜거린 적이 있었다.


주차구역도 여직원들에게만 따로 실내주차장을 내어주고 회식 메뉴나 기타 행사에서도 여직원들에게 우선 선택권을 준다는 불만이었다.


거기다 무거운 짐을 들고 옮기는 일은 다 자기 같은 남자들을 시키면서 여직원들한테는 가벼운 잡일조차도 시키지 않아 남직원들이 불만을 토로하면 사장님께서 웃으시며 내가 딸이 셋이나 있는데 어쩌겠냐고 하셨단다.



"그래, 주차하기 편한 실내공간을 무조건 여직원들에게만 배정한 건 좀 그러네.

근데 여보, 당신네 회사에 과장급 이상의 여직원은 몇 명이나 돼?

똑같은 직급이면 여직원들도 남직원들이랑 승진하는 시기가 같아?"


나의 질문에 남편이 영문도 모르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도 여자지만 그런 회식 메뉴 우선 선택권이나 주차공간 우선권 이런 거 하나도 안 고마워.

그런 거 하나도 안 줘도 좋으니까 제발 내가 남직원이랑 똑같은 업무를 똑같이 잘 해냈으면 제발 승진기회라도 같이 줬으면 좋겠어.

아마 당신네 회사 여직원분들도 그바라고 있을걸?"


나의 얘기에 남편이 머쓱한 듯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4.



얼마 전 김대리가 나에게  총무부에 있는 여자 후배가 지점에 나와있는 자신보다 회사의 주요 소식들에 대해서 더 알지 못하는 것이 참 웃기다며 말을 걸었다.


나는 그냥 그 후배의 성향이 워낙 주변 얘기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 그런 게 아니겠냐고 돌려 얘기했지만 김대리의 대답은 단호했다.


"관심이 없어도 자기가 일하는 팀에서 결정되는 사항들인데 그 안에서 얘기가 돌고 있으면 모를 리가 있겠어?

그냥 그 후배에게는 아무도 귀띔을 해주지 않는 거겠지.

우리 회사는 진짜 여직원은 그 꽃처럼 가만히 있길 바라나 봐.

조용히 앉아서 그냥 보기 좋게 자기 일만 묵묵하길 바라잖아."


김대리의 얘기에 나는 메신저 가득 어색한 말줄임표를 그려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총무부에서 일해봤던 나는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


남직원들은 주임부터 팀장까지 중간중간 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러 몰려다니며 그 시간 동안 그런 소식들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는 동안 나는 그 소식들이 돌고 돌아 지점을 순회하고 난 후에야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상사가 차마 싫어 가자는 거 담배 피우러 가자고 하는 거 자기네들도 귀찮고 지겹다고.

여직원들은 그런 비위 맞출 일이 없으니 오히려 편하지 않겠냐고.


맞다.


자기 얘기만 조잘거리는 싫은 상사의  얘기를 들을 담배연기 가득한 옥상에서 들을 필요 없으니 몸이 편한 건 맞다.


커피 한잔 하러 가자며 옆구리 콕콕 찌르는 상사의 뒷꽁무니를 쫒아갈까 아님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다며 거절할까를 고민할 필요 없으니 마음이 편한 것도 맞다.


그런데 그것도 선택의 기회가 있는 거랑 아예 기회조차 없는 거랑은 얘기가 다다.

그리고  그런 시간과 공간에서 회사의 주요 정보들이 쏟아지고 거기서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는 거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럼 손들면 되지 않겠냐?!

먼저 저랑 술 한잔 하실래요? 티타임 가지시죠 라고 제안하면 되지 않겠냐고 누군가는 얘기한다.


그것도 맞다.

하면 된다.

근데 여직원인 내가 그런 걸 하면 우리 회사에서는 다음날 이상한 소문이 돈다.


"최대리가 @@팀장한테 술 한잔 하자고 했다던데?

담배 한대 피러 가자고 했다던데?

왜 그 라인 타기로 했데?

아님 혹시..  뭔 사이야?"


그리고 그 뒤에 뭔가... 붙는 이상한 소문들이 꼬리를 문다.



5.



나도 솔직히 여자 선배나 후배보다는 남자 선배나 후배랑 같이 일하는 게 편하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여자 선후배에게 말 한마디, 행동하나가 더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다.


여직원인 내가 그러니 인사권자인 남직원들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출산 육아휴직의 제한이 없고 업무를 시키기도 편한 남직원들이 더 선호되는 건 당연한 것일 거고 그러다 보면 승진의 기회도 더 먼저 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런데..

막상 여러 번 승진에 물을 먹다 보면 그 인지상정이라는 것이

정말 화가 난다.


아무리 내가 그들보다 능력적으로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까라고 자기반성을 해보아도 그래도 인사예고제까지  했던 승진을 당사자에게 아무런 통보도 없이 무마시키거나 유보시키는 건 진짜 아니지 않을까


그냥 투덜거림이 많았던 2019년이었다.

2020년은 이런 투덜거림은 더 이상 하지도 할 필요도 없는 한 해가 되길..







매거진의 이전글 왜 짜고 치는 고스톱이 생각났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