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대리 Jan 07. 2020

나이 든 후배가 등장했다.


공기업의 탈을 쓴 우리 회사 또한 채용에 나이 제한이라는 것이 없다.

물론 내가 뽑혔던 십 년 전쯤에도 공식적인 채용공고에는 나이를 제한하는 문구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때에는 1차 서류전형에서 조직운영의 편의성(?)과 선후배 간의 불편함을 감안하여 내부적인 커트라인은 존재하였기에 한두 살 내외의 비슷비슷한 나이 때의 직원들이 입사를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요즘 블라인드 채용이니 나이 제한의 실질적인 철폐라는 현실의 추세 덕분인지 작년 초부터는 아예 내부적으로도 나이의 제한을 두지 않게 되었다.


그런 덕분에 작년 말 선발된 세명의 신입직원의 나이는 결과적으로 차과장급의 나이와 비슷한 수준이 되어버렸고 입사 십 년 차인 나와도 예닐곱 살 이상은 차이가 나게 되어 버렸다.


솔직히 회사에 관심이 없어지는 요즘.

나랑 같은 팀에서 일할 일만 없다면 그 정도의 나이 차이야 무슨 문제려나 했었다.


그런데 설마 설마 했던 그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연초 인사이동과 함께 입사자들 중에서도 제일 나이가 많다는 77년생의 신입직원분이 우리 팀으로 오시게 된 것이었다.


그 직원과 세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시는 차장님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이 가득하셨고 얼마 전까지 팀의 막내를 담당했던 93년생 후배 얼굴에도 곤란함이 스쳐 지나갔다.


인사이동의 결과를 확인하신 팀장님은 헛웃음을 지으셨지만 막상 나이 드신 신규직원을 처음 마주하신 자리에서 존대를 해야 할지 아님 우리에게 하듯이 말을 편히 해야 할지를 미처 정하지 못한 듯한 애매모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시는 듯 보였다.


이미 다른 곳에서 사회생활을 충분히 해보신 분이실 테니 이곳에서의 생활도 잘 적응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든 여기서 업무를 배워야 하는 입장이 신건 맞으니 사수가 될 우리@@주임에게서 되도록 빨리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를 받도록 하시죠."



몇 번의 헛기침 끝에 하실 말을 겨우 끝낸 팀장님께서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그 직원 자리안내해주었다.


"저.. 아직 그분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봤어요."


그분이 잠시 자리를 비우신 사이 새로운 직원분이 어떤 것 같냐는 팀장님의 물음에 나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대답에 팀장님께서는 공감하시는 듯 크게  한번 웃어 보이시고는 띠동갑이 넘차이가 나는 직속 후배를 맞이하게 된 @@주임에게 소감을 물어보셨다.


"하하, 저는 괜찮습니다."


그분을 제일 불편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과는 달리 우리 팀에서 그분을 제일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건 얼마 전까지 우리 팀의 막내였던 @@주임이었다.


그는 사수라는 역할에 걸맞게 그에게 업무처리의 방법을 세심하게 알려주는 것은 물론 그분이 곤란한 상황에서는 대신 달려 나가 업무를 처리곤 했다.


그 분 @@주임이 제일 편한지 궁금한 사항이 있거나 할 말이 있을 때면 그 직원을 우선으로 찾았다.





"대리님 이것 좀 봐주시겠어요?"


"아.. 네."


신경을 써서 다듬은듯한 머리끝으로 흰머리가 희끗한 신입직원분이 나를 향해 공손한 자세로 서류를 내밀자 괜스레 받아 드는 내 손끝도 공손해졌다.


"아.. 여기 서명이 빠졌네요.

그리고 여기 서류 하나도 빼먹으셨어요."


오랜 기간 해온 업무이니 그분의 실수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어떤 말투로 어떻게 지적을 해야 할지가 꽤나 고민이 되어 그분을 앞에 세워놓고 한참 동안을 망설였다.


보통 나이가 엇비슷하거나 더 어린 후배 직원이었다면 말투나 방법 따위를 고민하지 않고 실수한 부분에 더 집중했겠지만 아무래도 연배가 더 있고 나보다는 사회경험이 더 있으신 분이니 쉽사리 무언가를 지적한다는 것이 익숙지 않은 기분이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나의 대답에 그분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재빠르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최대리, 아무래도 @@주임도 서투니까 최대리가 신경 좀 써줘."


그분과 나의 대화를 듣고 계셨던 팀장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셨다.

나는 알겠다는 의미의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열심히 서류를 살펴보고 있는 그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동안 내가 봐왔던 신입직원들의 모습과 전혀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다.


나이가 더 많다는 것 외에 그분도 그동안의 신입직원들과 똑같이 사람들에게 묻고 배운 내용을 적으며 똑같이 업무를 익히고 있었다.

나이가 많다는 편견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오셨으니 왠지 모르는 권위의식이 있을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을 내가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 이거 이렇게 하시면 돼요. 먼저.. 이것부터 하시는 게.."


괜찮다는 미소를 지었던 93년생 후배가 그분이 하던 일을 확인하다가 거리낌 없이 조언을 늘어놓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랜 사회 경험으로 편견이라는  (?)가 묻은 나보다는 아직은 아무런 편견도 선입견도 없는 초짜 후배가 더 좋은 선배인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19년을 보내며 드는 잡생각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