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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Jan 10. 2020

착하고 애매한 직원이 되었다


얼마 전 내 생일날

퇴근 예정인 남편을 기다리며 저녁 메뉴를 고민 중이었다.


톡으로 남편의 퇴근시간을 물어보며 가열차게 대화를 이어가던 중 남편의 한마디가 휴대전화 화면 가득 떠올랐다.


남편과 나는 톡으로 대화를 자주한다


"저녁은 그냥 집에서 @@치킨이나 시켜먹을까?"


생일이라 특별한 저녁 메뉴를 원했던 것도 추운 날씨에 이미 목욕까지 마친 아이 챙겨 나가는 것도 번거로운 탓에 평소 같으면 그래 그러자라고 동의했을 텐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괜스레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내 생일인데 왜 저녁 메뉴를 당신이 정해요?

난 @@치킨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나의 대답에 잠시 당황한듯한 남편이 대답했다.


"아니.. 맨날 뭐 먹고 싶냐고 정하라고 하면 아무거나라고 하던가 내가 먹고 싶은 걸로 먹자고 하잖아.

그래서 난 그랬지.."


그랬다.

비교적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그동안의 메뉴 선택권을 남편에게 밀어왔으니 남편은 오늘도 당연히 그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요구라는 것을 하지 않다 보니 당연히 요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쩜 당연한 일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날은 나의 요구와 선택대로  분위기가 좋은 파스타집에서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얼마 전 우연히 어떤 직장 인분이 쓴 글을 읽게 되었다.


자신이 꼭 한번 일해보고 싶은 해외근무지가 있어 몇 달을 적극적으로 회사에 요구 한끝에 원하는 지역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는 내용의  글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나는 왠지 머리를 탕하고 맞은 기분이었다.


'아 그렇구나 회사에도 요구라는 걸 할 수 있구나..'


언제부터인지 회사에 요구를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지내는 날들이 늘어만 갔다.


과거 내가 했던 또는 다른 누군가가 했던 요구가 회사의 그 어느 곳에도 반영되지 않는 현실을 깨닫기 시작하 그런 얘들이 무척이나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회사라는 곳에 더 이상 요구를 하지 않게 된 또 다른 이유에 남루한(?) 나의 직급도 한몫을 했다.


분명 회사 내 어느 직급보다도 실무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일하고 있음에도 요구가 받아들여지는데 대리라는 내직급은 남루하기 그지없었다.


어쩜 내가 비겁해진 걸 지도 모르겠다.


요구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고 정당한 요구를 할 권리 자체를 포기해버린 것 누군가에게는 나태함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메뉴 선택권과 같이 남편과 나 사이의 관계에서 요구를 잠시 포기하는 것이 때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 느껴지기도 하는 반면,

회사에서는 요구를 하지 않으면 나쁜 의미의 편한 직원,  때로는 무시해도 되는 의견 없는 직원이 되어버릴 때가 많았다.


그런 의견 없는 착한(?) 직원이 될 것인지 아님 필요시에 정당한 요구를 참지 않고 할 수 있는 피곤한(?) 직원이 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는 이미 전자를  선택한 걸 지도 모르겠다.


"최대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가끔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가득 늘어놓은 회사 직원이 나에게도 동의를 구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격정적인 동의의 제스처도 그렇다고 반론을 제기하지도 않은 상태로 그저 미소만 지어 보인다.


회사에 기대를 하지 않게 되면서 나는 요구를 하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되면서부터는 회사에 대한 불평이나 험담도 즐기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회사 내에서 착하고 애매한 직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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