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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Dec 19. 2019

왜 짜고 치는 고스톱이 생각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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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연차를 소진할 목적으로 하루 휴가를 다녀온 다음날, 사내 메신저를 접속하니 작은 팝업 하나가 짠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승진후보자에 대한 쪽지였다.


직급별 승진후보자를 공지하니 그들에 대한 인사평가 설문조사를 언제까지 완료하라는 내용이었다.


메시지 도착시간이 퇴근을 거의 앞둔 시간인걸 보니 보내는 사람이로 인해 술렁거릴 사람들의 반응 예상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 쪽지의 첨부파일을 어쩌다 보니 열어보지 않게 되었지만 메신저로 먼저 말을 건 김대리의 얘기로 나도 그 승진후보자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 같고 예상했다 해도 별건 없는 그냥 그런 사실이었다.





"누가 될 것 같아?"


김대리가 물었다.


"글쎄.. 모르지. 어차피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겠어?"


우리 회사 인사권자가 이런 나의 글을 읽는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화를 낼지 모르겠지만 나는 진짜 우리 회사의 인사가 판을 짜 놓고 치는 고스톱이랑 유사하다고 생각될 때가 많았다.


신호를 주면 감춰뒀던 패를 서서히 꺼내 드는 고스톱의 속임수처럼 인사 권력에 근접한 누군가가 신호를 주면 그 신호를 받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승진의 자리를 거머쥐는 이상한 게임..


그러나 고스톱에도 수많은 변수가 있어 승자를 백 프로 확신할 수 없는 것처럼 외부의 강력한 신호로 인해 내부에서 주고받았던 신호 따위는 순간에 사라져 버릴 수 있어 그 누구도 최후의 순간까지 안심할 수 없는 게임,.


그래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모 스포츠 스타의 명언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회사에 특별히 찍힌 거 없는 최대리가 제일 유리하지 않겠어?"


거침없는 언변과 행동으로 회사 윗분들에게 하고 찍혀있는 남자 동기와 곧 출산임박한 여자 후배 사이에 애매하게 껴있는 나를 보며 누군가는 그래도 나에게 제일 유리한 게임이 되지 않겠냐며 묻곤 했었.



"그래도 남자 프리미엄이 있는데..

아무리 찍혀도 남자 동기가 먼저 되지 않겠어?"


어쩔 수 없이 인사권자들이  남자이다 보니 이번 인사에저번 인사때처럼 보이지 않는 남녀 차별이 있지 않겠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누가 뭐라든 그 결과가 과연 게 나오든 나는 이 한 가지는 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초 이미 크게 당해본 치욕의 역사가 있었던 탓에 이런 분위기와 말들이 좀 짜증이 나긴 해도 저번처럼 견디기 힘들거나 크게 아프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고스톱에 대해 잘 지 못한다.

기껏해야 짝이 맞는 그림 정도만 맞출 줄 알 뿐 어떻게 맞춰야 더 점수가 나는 게임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고스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도 언제 가장 재밌는 게임이 되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판에 참여하는 몇몇이 미리 패를 맞춰놓고 치는 말 그대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닌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패로 정정당당히 똑같은 조건에서 펼치는 페어플레이가 제일 많은 웃음을 자아내고 지는 사람도 이기는 사람도 감정이 남질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부디 이번 인사만큼은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더티플레이가 되질 않길.. 헛된 바람일지라도 공허하게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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