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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Feb 11. 2020

느닷없이.. 휴가 신청이라니

오늘 아침

평소와 똑같이 조금 이른 시간에 일어나 요즘 시작한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주로 새벽시간에 인터넷 강의를 듣는데 곤히 잠들어있는 아이를 깨울까 싶어 발소리도 줄인 채로 책을 가지러 거실 밖으로 나갔다.


우리 딸은 이상하 엄마에 대한 센서가 첨부된 것처럼

곤히 잠든 것 같다가도 내가 옆에 없으면 그걸 단번에 눈치채고벌떡 일어나곤 하는데 그걸 방지해보고자 오늘은 아이가 잠든 침대 밑바닥에 엎드려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깜깜한 어둠만이 존재하는 방 안에서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인터넷 강의 속 불빛만을 의지하려다 보니 교재의 내용이 잘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아이에게 수유를 할 때 사용했던 수유등을 최대한 교재 가까이 켜놓고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무렵 딸아이는 몸을 뒤척이다내가 곁에 없음을 감지라도 한 듯 엄마~라는 울음소리와 함께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나는 어떻게 서라도 아이다시  재워볼요량으로 아이의 등을 토닥거렸지만 아이는 이미 잠을 깬 듯 다시 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아이는 어떻게 해서든 강의를 다시 들어보려는 내 옆에 엎드려 "엄마 이게 뭐야""엄마 같이 보자"를 연발했

나는 공부를 시작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책을 덮고는 딸아이의 손을 잡고 거실 밖으로 나왔다.


아이는 그제야 졸린 눈을 비비며 자신의 최애로 꼽는 뽀로로 인형과 핑크퐁 인형을 양쪽으로 품으며 연신 만족스러운 미소를 뿜어냈다.






그렇게 현실적으로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업무시간 중에는 아무리 여유 생긴다 해도 주변의 눈치로 인해 책 한번 제대로 펼치기 힘들었고 쫄보인 나로서는 그런 농땡이가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퇴근을 하고 무언가를 하기에는 남편과 아이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정말 막말로 눈 한번 질끈 감고 내 생각만 한다면 퇴근 후에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나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맞았겠지만 김대리의 말대로 그러기에 나는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적당히 덜 이기적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결국 모두가 잠든 새벽시간에 무언가를 하는 것이었는데 이른 새벽 피곤한 몸을 일으킨다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데다 어찌어찌하여 새벽에 몸을 일으켜 뭔가를 하려 하면 엄마 센서가 작동한 딸아이 때문에 한두 시간 정도가 나에게 주어진 최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오늘 아침, 문득 출근하기가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기 싫은 것도 꼴 보기 싫은 얼굴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몸은 왠지 모르게 피곤하고 무작정 나만의 시간이 갖고 싶어 졌다.


"오후 반차 좀 내겠습니다."


결국 출근한 지 한 시간 만에 나는 이 말 내 입 밖으로 꺼내버렸다.

그리고는 오전 시간 내내 아무 말도 없이 일에 전념했다.






점심시간 무렵 밥을 먹으러 가는 팀원들을 뒤로하고 무작정 지하철을 탔다.

뭘 할지 어디로 갈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어디든 뭘 하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었다.


젤 먼다른 사무실에 있는 김대리에게 점심을 먹자는 제안을 하고 그녀를 만나 점심을 먹고 카페에 들러 새로 나온 음료와 디저트를 먹었다.


그리고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는 김대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는 혼자 남아 휴대전화를 뒤적거렸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10분 남짓한 대만 드라마를 보고 관심 있는 기사들을 여유롭게 읽었다.


그리고 정말로 계속 미루고 미뤄왔던 아이브로우를 샀다.

계속 사야지 사야지하고만 생각하다가 지하철역에 있는 화장품 매장을 발견하고는 잘됐다 싶은 마음에 들어섰다.


워낙 화장품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이것저것을 뒤적이는 와중에도 괜스레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렇게 여유롭게 쇼핑할 시간이 있어?

얼른 부족한 공부하고 니 삶에 유익한 시간을 보내라고!'


요즘따라 시간이 아깝다 부족하다는 말을 여실히 느끼고 있는 나기에 그런지 마음속에서는  빨리 빨리라는 속삭임이 계속해서 몸부림쳤다.


그렇지만 이렇게 찬찬히 무언가를 둘러보는 여유 또한 나에게는 필요한 것이 사실이었다.





사실 그냥 느닷없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낸 휴가였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눈치도 보지 않고 무작정 오롯이 나만을 위해 쓰고 싶었다.

그저 본능대로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먹고 싶은 대로 먹는 반나절이었다.


언제 다시 이런 느닷없는 휴가를 내게 될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이런 휴가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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