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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Feb 01. 2020

명절과 며느리의 상관관계

- 편안한 손님이어야 할지 불편한 가족이어야 할지


"기분이 왜 이렇게 안 좋아 보여요?"


명절 연휴 전날  회사에서 반차를 내고 시댁으로 향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편의 질문이었다.


급히 퇴근을 하고 아이를 하원 시켜주신 친정부모님과 함께 소아과에 들렀다 점심까지 함께 먹은 후 서둘러  미리 챙겨놓지 못한 짐을 챙겨 급히 길을 나선 탓인지 나의 얼굴은 무언가에 화가 난 사람처럼 상기되어 있었고 눈치가 썩 좋지 않은 편인 남편도 그런 나의 표정 변화를 읽은 듯 보였다.


"생리 전 증후군이라서 그런지 기분이 괜스레 우울하고 자꾸 짜증이 나네요."


많은 여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생리를 할 시기쯤이면 호르몬의 영향 탓인지 짜증이 나고 괜스레 신경이 곤두곤 했었다.

갑자기 만사 모든 것이 귀찮다가 금세 주체하지 못할 만큼 나락으로 떨어지는 우울 느기도 했다.


마침 설날 연휴가 시작될 즈음이 나에게 그 마법 같은 호르몬의 변화가 시작될 시기였다.

가뜩이나 화장실에 가는 것이 불편한 시댁에서 그 마법의 순간을 겪는 것은 매우 불편하고 힘든 일이었기에 나는 미리 며칠 전부터 그 마법을 미뤄준다는 약을 먹고 있었다.


"그래요?

그런데 늘 부산에 갈 때마다 표정이 안 좋았던 것 같은데요."



"그럼 명절증후군인가 봐요


남편의 대답에 괜스레 뜨끔해진 나는 농담 섞인 대답과 함께 씨익 미소 지었다.


솔직히 말해 시댁에 가는 게 싫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워낙 먼 곳에 있는 탓에 가는 일이 일 년에 서너 번 정도뿐이었고 가봤자 명절 내내 어머님이 하시는 일을 조금 거두는 정도다.


그럼에도 나에게 그런 안 좋은 표정이 남아있었다면 그건 아마 시댁에서의 생활이 불편해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시집살이 같은 건 시키지 않으시는 어머님과 나에게 늘 맛있는 걸 사주시는 시아주버님 덕분에 결혼한 후 그리 서러울 일은 없던 나였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댁이라는 곳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화장실을 가는 것도 불편했고 샤워를 하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왠지 눈치가 보이고 불편했다.


그리고 그건 단기간에 바뀌는 사실은 아니었다.






설날 전날 여지없이 어머님과 나는 음식 준비를 했다.


명절 당일 차례상을 위한 음식 준비였는데 어머님의 지시 아래 나는 전을 부치고 각종 재료들을 다듬으며 잔심부름들을 도왔다.


어머님이 대부분의 일을 하시니 내가 어머님을 도와 일을 하는 건 길어야 서너 시간 정도였다.


그것도 중간중간 딸아이가 나를 찾으며 부르니 일을 하다가도 방에 여러 번 들락날락했으니 이렇다 할 만큼의 대단한 노동의 강도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특별히 명절날 하는 며느리의 도리(?) 그 불만스럽거나 서러웠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이상하리만큼 심술이 났다.


콩나물을 다듬고 전을 부치는 게 힘들어서라기보다는 이걸 왜 하고 있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어서였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고 이렇게 만든 음식을 다 같이 맛있게 먹을 수 있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라 믿어왔는데 따뜻한 방안에 누워 휴대전화 게임을 하는 남편을 보며 며느리의 역할이라는 게 뭐길래 나는 이러고 있어야 하나라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솔직히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아님 제사를 지내거나 명절을 지내지 않는 집안의 며느리였다면 이 시간 나는 남편과 함께 저 따뜻한 방바닥 위에 누워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 심술 맞은 속내를 마음속에 가득 품은 채 어찌어찌 어머님이 시키신 일을 대략 마치고 나니 성묘를 하러 간 남편을 대신해 아이를 보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렇게 아이를 쳐다보고 있니 아직  할 일을 다 마치지 못하신 어머님이 바쁘게 발걸음을 움직이고 계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며느리의 남은 도리를 다 하려 한다면 착하게 TV 만화를 보고 있는 아이를 뒤로한책 방 밖으로 나와 뭐라도 거들어야겠지만 이상하게 만큼은 나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따뜻한 전기장판을 켜놓고 아이의 옆에 누워 휴대전화를 잡았다.


아마도 이 장면을 우리 엄마가 보고 계셨다면 내 등짝을 내리치며 당장이라도 가보라 등을 떠밀으셨겠지만 불편한 마음으로 하는 며느리의 도리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시댁에 드나들 수 있는 가족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성묘를 다녀온 남편과 아주버님이 도착하 바삐 움직이시던 어머님의 손길이 잦아들다.


매번 그렇듯 아주버님이 맛있는 걸 먹으러 나가자며 어머님과 남편을 재촉했다.


매끼 밥을 차려 먹는 것도 일이라 그것도 번거로지만 이번에는 외식을 하러 나가는 것도 솔직한 심정으로 귀찮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맘 같아서는 저녁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고 편히 좀 쉬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뭐라도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 하시는 아주버님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어 어색하게 웃으며 따라나섰다.


그리고 부산에서 꽤나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었다.

생각보다도 음식이 깔끔하고 맛있어서 괜스레 우울했던 기분 조금은 나아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순간 테이블 옆에 얌전히 꽂혀있는 계산서가 내눈에 들어왔다.


나는 매번 얻어먹는 것만 같은 생각에 재빨리 계산서를 들고 식당 카운터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계산서와 함께 카드를 힘차게 내밀었을 때 누군가의 손이 나의 카드를 밀쳐내고 들어왔다.


아주버님이었다.

아주버님은 직원분이 막 잡으려던 나의 카드를 빠르게 밀쳐내시고는 본인의 카드로 계산해달라며 카드를 들이미셨다.


남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었겠지만 나는 이번에야말로 왠지 모르는 찝찝한 마음을 좀 덜어내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서 참으로 안타까웠다.


얻어먹는 게 싫은 건 아니었지만 형님이라는 이유로 아직 미혼이라 우리보다는 더 여유가 있다는 이유로 매번 식사 및 간식비를 대신 내시는 것이 죄송하면서도 찝찝했다.

결국 아주버님의 카드가 시원하게 긁히고 터벅터벅 돌아오는 나를 향해 어머님이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니는 손님인데 네가 왜 내니?

니 아주버님 돈 잘 번다. 그냥 얻어먹어도 된다."


어머님은 아주버님이 계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나를 보며 웃으셨고 나는 어머님이 말씀하신 손님이라는 단어에 괜스레 어색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손님이라...

분명 관계를 따지면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사이지만 어머님은 나를 손님처럼 대접하고 계셨다.


손님인데 어쩔 수 없이 일을 시키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밥이라도 사주고 싶으셨던게 인지상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분명 얻어먹을 이유가 있는 사람인건데 왜 그날의 식사자리와 그 손님이라는 말이 아직까지도 기쁘면서도 씁쓸한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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