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 전날 회사에서 반차를 내고 시댁으로 향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편의 질문이었다.
급히 퇴근을 하고 아이를 하원 시켜주신 친정부모님과 함께 소아과에 들렀다 점심까지 함께 먹은 후 서둘러 미리 챙겨놓지 못한 짐을 챙겨 급히 길을 나선 탓인지 나의 얼굴은 무언가에 화가 난 사람처럼 상기되어 있었고 눈치가 썩 좋지 않은 편인 남편도 그런 나의 표정 변화를 읽은 듯 보였다.
"생리 전증후군이라서 그런지 기분이 괜스레 우울하고 자꾸 짜증이나네요."
많은 여성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생리를 할 시기쯤이면 호르몬의 영향 탓인지 짜증이나고 괜스레 신경이 곤두서곤 했었다.
갑자기 만사 모든 것이 귀찮아지다가 금세 주체하지 못할 만큼 나락으로 떨어지는 우울감을 느끼기도 했다.
마침 설날 연휴가 시작될 즈음이 나에게 그 마법 같은호르몬의 변화가 시작될 시기였다.
가뜩이나 화장실에 가는 것이 불편한 시댁에서 그 마법의 순간을겪는 것은 매우 불편하고 힘든 일이었기에 나는 미리며칠 전부터 그 마법을 미뤄준다는 약을 먹고 있었다.
"그래요?
그런데 늘 부산에 갈 때마다 표정이 안 좋았던 것같은데요."
"그럼 명절증후군인가 봐요
남편의 대답에 괜스레 뜨끔해진 나는 농담 섞인 대답과 함께 씨익 미소 지었다.
솔직히 말해 시댁에 가는 게 싫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워낙 먼 곳에 있는 탓에 가는 일이 일 년에 서너 번 정도뿐이었고가봤자 명절 내내 어머님이 하시는 일을 조금 거두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나에게 그런 안 좋은 표정이 남아있었다면 그건 아마 시댁에서의 생활이 불편해서였기때문일 것이다.
시집살이 같은 건 시키지 않으시는 어머님과 나에게 늘 맛있는 걸 사주시는 시아주버님 덕분에 결혼한 후 그리 서러울 일은 없었던 나였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댁이라는 곳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화장실을 가는 것도 불편했고 샤워를 하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왠지 눈치가 보이고 불편했다.
그리고 그건 단기간에 바뀌는 사실은 아니었다.
설날 전날도 여지없이 어머님과 나는 음식 준비를 했다.
명절 당일 차례상을 위한 음식 준비였는데 어머님의 지시 아래 나는 전을 부치고 각종 재료들을 다듬으며 잔심부름들을 도왔다.
어머님이 대부분의 일을 하시니 내가 어머님을 도와 일을 하는 건 길어야 서너 시간 정도였다.
그것도 중간중간 딸아이가 나를 찾으며 부르니 일을 하다가도 방에 여러 번 들락날락했으니 이렇다 할 만큼의 대단한 노동의 강도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특별히 명절날 하는 며느리의 도리(?)가 그리 불만스럽거나 서러웠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이상하리만큼 심술이 났다.
콩나물을 다듬고 전을 부치는 게 힘이 들어서라기보다는 이걸 왜 하고 있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어서였다.
차례를 지내기위해서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고 이렇게 만든 음식을 다 같이 맛있게먹을 수 있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라 믿어왔는데 따뜻한 방안에 누워 휴대전화 게임을 하는 남편을 보며 며느리의 역할이라는 게 뭐길래 나는 이러고 있어야 하나라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솔직히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아님 제사를 지내거나 명절을 지내지 않는 집안의 며느리였다면 이 시간 나는 남편과 함께 저 따뜻한 방바닥 위에 누워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 심술 맞은 속내를 마음속에 가득 품은 채 어찌어찌 어머님이 시키신 일을 대략 마치고 나니 성묘를 하러 간 남편을 대신해 아이를 보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렇게 아이를 쳐다보고 있자니 아직 할 일을 다 마치지 못하신 어머님이 바쁘게 발걸음을 움직이고 계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며느리의 남은 도리를 다 하려 한다면 착하게 TV 만화를 보고 있는 아이를 뒤로한책 방 밖으로 나와 뭐라도 거들어야겠지만 이상하게 그날만큼은 나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따뜻한 전기장판을 켜놓고 아이의 옆에 누워 휴대전화를 잡았다.
아마도 이 장면을 우리 엄마가 보고계셨다면 내 등짝을 내리치며 당장이라도 가보라며 등을떠밀으셨겠지만 불편한 마음으로 하는 며느리의 도리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시댁에 드나들 수 있는 가족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성묘를 다녀온 남편과 아주버님이 도착하자 바삐 움직이시던 어머님의 손길이 잦아들었다.
매번 그렇듯 아주버님이 맛있는 걸 먹으러 나가자며 어머님과 남편을 재촉했다.
매끼 밥을 차려 먹는 것도 일이라 그것도 번거로웠지만 이번에는 외식을 하러 나가는 것도 솔직한 심정으로 귀찮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맘 같아서는 저녁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고 편히 좀 쉬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뭐라도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 하시는 아주버님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어 어색하게 웃으며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