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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Jun 03. 2020

유난스러운 엄마가 아니라는 착각

 

아이를 수더분하게 키운다고 생각했었다.


첫아이고 둘째 계획이 현실적으로는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유일한 아이였기에 귀하디 귀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런 첫아이 치고는 조금은 무심하고 유난스럽지 않게 키운다고 생각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인데 좀 좋은 걸로 사주지."


아이의 옷을 매번 얻어 입히는 나와 남편을 보며 가끔 엄마는 안타깝다는 듯 얘기하셨다.


매번 비싸고 좋은걸 사줄 수는 없겠지만 일 년에 서너 번 좋은 옷 한두 벌 사줄 형편 되면서도 주변에서 물려주는 옷들을 마다하지 않고 다 입히는 우리가 답답하셨나 보다.


"좀 더 크면 얻어 입히고 싶어도 못 입혀.

이런 돈 모아서 나중에 커서 본인이 진짜 하고 싶은 일 있을 때 주면 되지."






며칠 전 아침 이불에 실수를 한 다섯 살 딸아이에게 그러면 안된다며 한소리를 시작하는 순간 딸아이의 코에서 시뻘건 코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코피가 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터라 계속해서 쏟아지는 코피에 놀란 나와 남편은 축축한 아이의 옷을 뒤로하고 휴지로 연신 아이의 코를 닦으며 놀란 아이를 달랬다.


빨간 코피가 아이의 입안과 옷에 반복해서 물들자 침착하게 아이를 달래던 남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얘기했다.


"응급실이라도 가볼까? 혹시 어디가 아픈 건 아니겠지."


마침 휴일이라 가까운 동네 병원도 가기 어려운 상황에 우리는 익숙하게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을 떠올렸다.


남편의 얘기에 잠시 가봐야 하는 것인가를 고민하던 나는 아이를 키워온 지난 4년 남짓한 시간 동안 몇 차례나 응급실로 달려갔던 경험을 떠올렸다.


침대 모서리에 부딪혀 입안에서 피가 났을 때, 열이 올라 열경련을 일으켰을 때, 생일 초에 얼굴이 그을렸을 때도 우리는 몇 번이나 우는 아이를 안고 어찌할 바를 몰라하면서 응급실로 뛰어가곤 했었다.


그러나 막상 몇 번의 응급실 경험을 통해 우리가 깨달은 건 아이의 증상은 했던 것보다는 별거 아닌 것들이었고 가서 우리가 한 것이라고는 응급실 밖 대기실에서 한참 동안 순서를 기다리다가 간단한 처치를 받은 것뿐이었다.



"그냥 단순한 코피일 거야.

우선 달래면서 멈추길 기다려보자."



휴지로 아이의 코를 몇 번 닦아내 나자 아이의 코피는 예상했던 대로 멈고 아이의 울음도 금세 멈춰졌다.


코피가 멈춘 아이를 반나절 관찰한 결과 자는 동안 집안이 건조했거나 최근 다니기 시작한 유치원에서 낮잠시간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에 피곤한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보니 첫아이임에도 유난스럽지 않게 키운다는 생각은 그저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 같다.


아이의 옷차림, 장난감, 먹거리. 학습 이런 것에는 덜 유난스러웠을지 모르겠지만 순간순간 보였던 아이의 변화에는 유난스러웠던 나였다.


160일이 다 되도록 뒤집기를 하지 않는 딸아이를 보며 큰 병원을 가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를 매번 고민하며 온갖 육아서적들과 인터넷을 찾아 헤매며 가슴을 졸였던 날들.


아이의 열경련을 겪은 후 기침소리만 나도 새 아이의 이마를 손으로 짚어대며 불안해며 당장이라도 응급실로 뛰어갈 준비를 던 시간들.


네 돌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길거리에 스치는 또래 아이들을 곁눈질로 기웃거리며 딸아이의 성장발달이 조금이라도 뒤쳐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걸 보면..


 난 무던한 엄마가 아니라 꽤나 유난스러운 엄마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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