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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May 20. 2020

하마터면.. 그만 들어가 보겠다고 할뻔했다


길고 긴 몇 달간의 과다했던 업무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모든 팀이 그런 영광의 순간을 맛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규모가 작고 팀장님의 노련한 진두지휘가 돋보였던 우리 팀은 언제 끝날지 몰랐던 그 길고 긴 프로젝트의 끝을 보게 될 것만 같았다.


"무조건 이번 주까지 마무리하라고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왔어.

우리 팀은 진짜 얼마 남지 않았으니 힘내서 이번주내로  마무리합시다."


팀장급 회의에 다녀온 팀장님의 발언에 다른 팀원들은 예상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내 할당량으로 주어진 두터운 심사서류를 끌어안은 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왜 그래야 하는데요?

굳이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마무리할 수 있는 정도의 양의 일이어서,

이제까지 잘해온 거 마지막에 괜히 욕먹지 않기 위해서

이번 주까지 끝내고 다음 주부터는 편하게 지내자 등등의 이유를 팀장님은 끊임없이 나열하셨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윗선의 지시니까, 못하면 팀장님이 한소리를 들을 테니까..

라는 이유가 더 적합하게 느껴졌다.


사실 나에게 주어진 일이 지나치게 많거나 무리해야 하는 정도의 할당량은 아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야근을 보태어 이틀 정도면 끝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뒤에서는 실무를 모르는 윗선의 말과 행동들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욕하면서도 막상 그들의 지시에 무기력하게 순응하고 돌아와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그 현실이 싫었을 뿐이었다.





다른 팀이었지만 똑같은 회의에 참석해 똑같은 지시가 내려진 김대리 또한 통화 내내 날이 서있었다.


특히 팀장들 중에서도 최고로 무기력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김대리네 팀장님은 어쩔 수 없다는 핑계와 함께 또다시 팀원들에게 할당량이라는 이름의 일들을 떠민 듯 보였다.


김대리와 나,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한참 동안 답답한 현실들을 토로하던 우리 둘은 이곳은 변하지 않을 테니 이곳이 싫음 어서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는 씁쓸한 결론과 다들 뒤에서는 말도 안된다며 날을 세우다가도 결국 지시대로 자신의 업무 할당량을 꾸역꾸역 채우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이런게 진짜 사회생활인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생겼다.


"나 아까 나한테 맡겨진 업무서류들을 들고 돌아와 내 자리에 앉는데 순간 가슴이 먹먹하더라.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주섬주섬 짐을 싸서 하마터면 팀장님께 이렇게 인사할 뻔했어.


 그동안 감사했으니
저 그만 들어가보겠습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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