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대리 Apr 05. 2019

일하기 싫은 병에 걸렸다


올해 초 인사이동으로 인해 나는 집 앞에 있는 지점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정말 회사 사무실에 서서  창문을 바라보면 내가 사는 아파트가 한눈에 보이는 누가 봐도 참 부러운 업무 환경이었다.


그렇지만 집을 바로 지척에 두고 칼퇴라는 걸 하는 건 역시 쉽지 않았다.


나를 가까운 곳에 발령 내주었다는 건 회사 입장에서는 오래 야근을 시켜도 괜찮을 것 같은 빌미였을 것이고, 그런 회사의 의중을 확신할 수 있게 회사는 인원수를 줄여주는 눈물 나는 센스를 발휘해주었다.


그렇게 폭풍 같은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때로는 내가 그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 많은 일들이 잠시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름 예전보다는 마음도 체력도 분배하며 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지만 짧은 시간에 스쳐 지나간 업무들의 부피량에 내가 질려버린 탓인지 그 모든 일이 느슨해진 지금, 나는 일하기 싫은 병에 걸려버렸다.


물론 하루 이틀, 좋은 날씨 때문에 아님 호르몬의 영향 때문에 일하기 싫었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증상 들은 업무량이 줄어들고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해소법 등을  통해 그동안은 무난하게 지나가곤 했었다.


달달한 군것질로도 속까지 시원한 알콜 섭취라도 달래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병의 증상과 징후가 달랐다.

우선 회사에 앉아있으면 나도 모르게 짜증과 분노가 쳐 올랐다.


이걸 해봐야 뭘 하겠나 싶은 회의감도 밀려오기 시작했다.


분명 한 달에 한번 나에게 찾아오는 그날의 호르몬 변화는 아니었다.


아침 일찍 입력된 명령어처럼 회사에 출근을 하고 나면 한참을 컴퓨터만 켠 채 멍을 때리는 일이 늘어났다.


외근 중에도 모든 선약들을 깨어 버리고는 무작정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고 싶기도 했다.


사무실에 앉아 평소와 같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서류를 검토하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퇴근시간을 확인하는 순간들이 늘어만 갔다.


그렇게 지금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나 요즘 일하기 싫은 병에 걸렸나 봐.
진짜 회사에 가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누군가와 얘기를 하는 것도 얘기를 듣는 것도 싫어.
어쩌지?


나의 고민 토로에 진지하게 듣고 있던 남의 편이 대답한다.


"나도 전 직장에서 일했을 때 그랬었는데.
그때는 회사의 모든것이 다 싫어서 그랬던것 같아.
내 생각에는 너도 지금 그 회사랑 헤어질 때가
된 것 같아.


회사라는 족쇄를 벗어버리면 좀 편안해질까


남의 편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인 사이에서 헤어짐의 전초 증상은 권태기라는데 회사와의 헤어짐의 전초 증상이 일하기 싫은 병이라니..


회사생활을 십 년이나 겪은 후에야 자꾸 몰랐던 사회생활의 깨달음을 얻는 나는 여전히 일하기 싫은 병을 겪고 있는 과묵한 최대리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