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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걷는길 (1) 생장에서 오리손까지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산 없겠지?

by 신아영

Day 1. 생장 - 오리손 8km



아침의 우여곡절 끝에 12시 10분경 생장에 도착했다. 생장은 역시나 순례자들로 가득했다. 스페인의 해는 정말로 강렬해서 순례자들은 보통 새벽 6-7시경 일정을 시작해 해가 가장 뜨거운 2시 이전에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는 이미 오전 시간을 날렸기 때문에, 그리고 피레네 산맥을 하루에 넘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 마을로 가기 전 마지막 알베르게인 오리손 산장에서 묵고가기로 결정했다. 오리손 산장은 미리 예약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종종 당일에 자리가 있는지 문의해서 가능하면 묵을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여기서 내 운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순례자사무소 풍경. 이곳에서 일종의 여권인 크레덴셜을 발급받는다.



순례자들의 행렬을 따라가다보니 크레덴셜을 발급해주는 사무소가 나왔다. 순례길의 여권이라 할 수 있는 크레덴셜을 2유로에 발급받았다. 그리고 순례자의 상징인 조개껍데기를 고를 수 있었는데 각자 원하는 만큼 기부하고 맘에드는 조개껍데기를 가져가 가방에 매단다.

크레덴셜을 발급받기위해 줄을 서 있는데 세상에 내 앞뒤로 한국 사람들이 서있었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있는 명숙님, 그리고 인천에서 왔다는 남자분. 명숙님과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피레네 산맥을 넘을때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그러고 오리손 산장에 자리가 있냐고 문의했더니 있다고!! 와우 오늘 운이 좋다.

남들은 다들 쉰다는 2시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말로만 떠들던 순례길을 이제 시작한다는 설렘도 잠시, 끝도없이 올라가야하는 길들에 질려버렸다. 시작하자마자 후회한다더니 내 꼴이 딱 그랬다. 정말 잘 온걸까.

다행히 동행해준 명숙님께서 계속 힘을 주셨다. 초보 등산러인 내게 쉬었다 가는 법도 알려주시고 자기 페이스를 찾는 법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해주셨다.

"잘 하고 있어요"
"이쯤 쉬어가면 좋겠네"
"초보니까 힘들어하는게 당연하지"

왜 저런 말을 듣는데 순간순간 울컥했을까. 순전히 내 몫을 다해내야 당연한거고 못하면 질타받는게 당연한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저런말을 듣는게 정말 오랜만이얐다. 걸으러 왔는데 위로를 받게될 줄이야. 어쩌면 나는 저런 말들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힘들만하면 나타나는 기가막힌 풍경들


오며가며 다른 일행들도 만날 수 있었다. 독일에서 온 부부, 현대에서 일했다는 이탈리아 출신 할아버지, 자기들은 오늘 피레네 산맥을 넘을거라던 스페인 청년 둘, 아무 가방없이 가던 중 우리를 만나 선뜻 물을 내어주니 정말 고마워하던 앤드류까지. 지나가다 만나면 인사하고 힘들면 따로 쉬어가는 거대한 일행들이다.

미친듯한 경사를 이겨내고 다행히 절대 못 올라올줄 알았던 피레네 산맥의 1/3 지점까지는 왔다. 저질체력을 한탄해보지만 이제는 주어진 길만 묵묵히 걸어야 할 때다.


오리손 산장에서 바라본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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