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산티아고 가는길 (6) 프로미스타에서 레온까지

관광객 모드로 도심 곳곳을 누비다

by 신아영

프로미스타 Fromista - 팔렌시아 Palencia - 레온 Leon



어제 만난 한국분들의 말을 듣고 문득 남은 일정과 남은 거리를 살펴봤다. 남은 일정과 상관없이 묵묵하게 걷다가 돌아가야겠다 싶었는데, 어쨌든 산티아고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저가항공 비행기를 끊어놓았기 때문에 산티아고까지는 걸어가든 버스를 타든 가야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국과는 달리 스페인에선 작은 마을에서 버스나 기차를 이용하기는 굉장히 까다롭기 때문에 이 곳 프로미스타에서 레온까지 교통편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아마 일정에 맞추려면 한 번쯤 더 교통편을 이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조금 더 넉넉하게 일정을 잡고왔으면 좋았겠지만, 이 역시 여행의 한 과정임을 받아들이고 순간을 즐기려고 노력중이다.

프로미스타는 순례길 도중 나오는 마을 중 제법 큰 편에 속했지만 여기서도 교통편 이용하기는 굉장히 까다로웠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물어보니 팔렌시아로 갔다가 레온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이왕 이렇게 된것 팔렌시아까지도 정복하는 기회로 삼아야지.

팔렌시아까지 가는 버스는 고작 하루에 두대

알베르게에서 일찍 나섰는데 팔렌시아로 가는 버스는 9시30분에 딱 한대 있었다.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는데 정말 추웠다. 스페인은 일교차가 어마어마하다. 아침 날씨는 12도까지 내려가는데 바람막이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은 기록적인 폭염이라고 연일 시끄럽던데 나는 뜻밖의 피서를 즐기는 기분이다.

약속되어있던 9:30분이 되었는데도 버스가 오질 않는다. 혹시라도 여기서 버스가 서는게 아닌가 싶어 초조해지는데 주위 사람들은 매우 여유롭다. 버스는 45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정작 초조해했던건 나 하나뿐이라 민망함이 몰려왔다.

팔렌시아 plaza mayor

버스를 타고 도착한 팔렌시아는 내 생각보다도 꽤 큰 도시였다. 여기서 레온까지는 버스를 타도 되고, 조금 걸어가 기차를 타도된다. 이왕 온 것 스페인 기차도 정복해보자 싶어 기차역으로 향했다.

프랑스 바욘에서 열차 티켓을 끊지못해 기차를 눈 앞에서 놓쳤었는데 스페인에서는 무사히 기차표를 끊었다. 팔렌시아 도심을 좀 살펴보고 레온으로 넘어가려 여유롭게 한시반 기차를 끊었다.

큰 도시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까미노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웃으며 "부엔 까미노!"를 외치는 것과는 반대의 양상이다. 나도 어색하게 도심의 무리들과 어우러져 길을 걷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엄청 크게 "부엔 까미노!"를 외쳐주셨다. 도심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신기한 일이었는데 지쳐있던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san antolin 성당

팔렌시아에서 살펴본 성당은 San antolin 성당이었다. 스페인의 어느 도시나 성당이 있는데 특히 대도시일수록 성당의 웅장함이 커진다. 성당 근처 식당에 자리잡아 밥을 먹는데도 성당에 자꾸 눈이 갔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기차를 타러왔는데 버스 탈 때와 마찬가지로 정시에 기차가 오지않았다. 약 20분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기차. 정말 신기한건 이 상황이 익숙한지 아무도 역무원에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게으른 걸까, 여유가 넘치는 걸까. 제 3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스페인은 그야말로 느릿느릿한 나라다.

약 한시간 정도를 달려 레온 기차역에 도착했다. 또다시 느껴지는 대도시의 향취. 대도시는 알베르게도 많고 가격차도 꽤나 커서 숙소를 고를 때 신중하게 된다. 2016년도에 새로 오픈했다는 알베르게를 찾아갔더니 10유로에 3인실 방을 내어준다. 이정도면 꽤 선방이다.

3인실에 화장실까지 딸려있다

오늘은 걷지않아 에너지가 넘친다. 짐을 풀고 레온 시내 곳곳을 구경했다. 여기도 포켓몬고 열풍인지라 시내 광장에선 저마다 걷다가 핸드폰을 잡고 한참 서있는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레온 대성당 앞에선 기념 사진을 찍고싶어 타이머를 맞춰두고 셀카를 찍는데 이를 모르고 지나치던 사람들이 우연하게 일행처럼 찍혔다. 사진을 보여줬더니 정말 빵 터지더라.

이 곳 마트에선 먹을거리, 과일, 와인이 정말이지 너무 싸다. 이번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와인과 병따개까지 함께 구입했는데 두개 다 해서 5유로. 와인 한 병을 다 먹지못해도 전혀 손해가 아닌 가격. 와인으로 유명한 리오하 주 와인을 2유로에 득템해 숙소에 들어와 한 잔 마셨다.

이제는 이 생활도 점점 익숙해져가는 내가 보인다. 친구들도 이젠 여유를 찾은 것 같다고 말해준다. 많이 즐겁고 충분히 외로운 시간들이 슬금슬금 지나가고 있다. 인생에 이런 순간이 다시 있을까.


밤 8시의 풍경. 레온의 밤은 이제 시작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산티아고 걷는길 (17) 이테로델카스티요~프로미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