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부끄러운 나의 '그림자'와 마주하기
크리스마스에 절을 찾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지 않을까, 했던 생각은 기우였다. 사찰 곳곳엔 관광객들이 가득했고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약 15명 가량 됐다. 이 중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은 8명. 전날 눈이 많이오는 바람에 7.5km를 걸어오기 힘들다며 취소한 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좋은 풍경을 바라보며 걸어온 것도 선물이었는데, 오붓하게 템플스테이를 진행할 수 있게된 것도 선물이라며 웃으시는 관계자 분의 미소에 왠지모를 평안이 느껴진다.
프로그램 첫 시작은 '나의 그림자 발견하기'였다. 여러 사진 중 내 맘에 쏙 드는 그림을 한장 골라오라더니, 뜬금없이 내가 가장 숨기고 싶은 나의 '그림자'에 대해 말해보자는 것이다. 남에게 떳떳하게 공개하지 못했던 나의 그림자를 사람들에게 말하려니 쑥스럽고 창피한 기분이었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나와 비슷한 감정인듯 당혹스런 표정들이다.
곰곰이 내가 고른 사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따뜻한 기운을 주는 빛에 이끌려 아무 생각없이 사진을 집었는데, 빛 주위의 그림자를 보고 있노라니 애써 외면하고 있던 내 어두운 부분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거절하는데 익숙치 않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픈 욕심 때문이다. 언제나 빛나고픈 사람이지만, 정작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때문에 내 자신이 힘들어지는 상황을 애써 외면해버리곤 했었다. 남의 감정을 눈치보는 것보다 내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곳 백담사에 와서 깨닫는다.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자신의 그림자를 '애칭'으로 적어 이름표를 만들어 가슴팍에 붙였다. 그리곤 서로 인사하며 각자의 그림자를 읊는 시간을 가졌다. 참 신기하게도 부끄러웠던 나의 그림자가, 낯선 이 앞에서 몇번 읊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정말 부끄러움과 마주서는게 중요하구나.
오후 다섯시 경 저녁 식사시간(불교에서는 '공양'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이 시작됐다. 시간표에는 단순히 식사라는 명칭 대신 '먹기 명상'이라고 적혀있었다. 우리는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음식물을 몇번 대충 씹다 식도로 넘겨버리는데, 스님께서는 밥 한술, 반찬 한 젓가락을 입에 넣고 어금니 사이로 으깨질 때 전해지는 음식 본연의 맛에 집중해보라고 하셨다. 절에서는 먹는것도 명상이다. 크리스마스에 산사에서 이토록 정갈한 음식을 꼭꼭씹어 식도로 넘기고 있노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녁 예불을 드리고 '소금 만다라'라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만다라를 검색해보니
불법(佛法)의 모든 덕을 원만하게 갖춘 경지. 또는, 그러한 경지를 나타낸 그림.
이라고 한다. 참가자들은 네 귀퉁이에 가족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리고, 이를 잇는 성곽과 길을 차례로 그렸다. 그 후 색색의 파스텔을 가루내어 하얀 소금에 알록달록 색을 입힌 후 그림에 소금을 한알한알 채워넣어 그림을 완성해갔다.
색을 채우며 엄마와 아빠, 동생을 생각했고 지나왔던 일들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왜 이런 색으로 채웠는지, 그간 무슨일이 있었는지 지긋이 물으시는 스님의 물음에 쉽사리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심리상담을 받으러 온듯한 기분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한마디 해주라는 스님의 말에,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대답하고는 울컥하는 감정을 꾹꾹 다시 눌러담았다. 그간 많이 지쳐있었다는 것을 절에와서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소금 만다라의 마지막 과정은 색색의 소금들을 한데 모아 모두 섞어버리는 것이다. 정성스레 채웠던 소금들을 한 자리에 밀어버리고, 하나의 색이 나올때까지 섞어버리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생각했다. 아무리 열심을 쏟아도 곧 아무일이 아닐수도 있게 되겠구나, 내 안의 근심걱정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다시한번 호흡을 가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