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 누군가에겐 영웅
나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좋아한다. 봤던 영화들도 두세번 돌려보는게 예사고, 헐리웃 블록버스터 시리즈를 기다리는 팬들처럼 나는 애니메이션 속편을 기다리곤 한다. (아직 멀었지만 2019년에 토이스토리 4가 개봉한다고!)
진부하고 클리셰 투성인, 감동을 자아내는 스토리도 왠지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말하는게 울림이 크게 느껴진다.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친구들이 인간세상의 삼라만상을 다 알고 교훈을 전해주는 것도 좋다. 결국 교훈적인 이야기란건 환상 속에나 있는거란걸 말해주는걸까. 무튼.
오늘은 '주먹왕 랄프'를 봤다.
겨울왕국에 묻혀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애니메이션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왓챠플레이에 떠있길래 감상.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손이 커서 슬픈 악당 주먹왕 랄프는 게임 속에서 닥치는대로 다 뿌순다. 랄프가 부수면 펠릭스가 마법 망치로 건물을 고치고 영웅이 되어 메달을 받는다. 오락실이 문을 닫으면 열리는 캐릭터 왕국, 랄프도 사랑받고 싶은데 악당이라는 이유로 쓰레기더미에서 잠을 자고 게임의 30주년 파티에도 초대받지 못한다. 동료들의 비난을 받던 랄프는, 펠릭스처럼 메달을 따오면 그들이 자신을 인정해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다른 게임세상으로 떠나버린다.
악당을 잃어버린 '다고쳐 펠릭스' 게임세상은 금세 사람들로부터 외면받는다. 펠릭스는 건물이 파괴되었을 때 빛을 발하는 영웅이었다. 건물을 부수는 악당 랄프가 없어지니 영웅이 필요없어졌다. 영웅을 빛나게 만드는건 악당의 존재 그 자체였던 것이다. 악당과 영웅, 그 아이러니한 공생의 관계.
'히어로즈 듀티' 게임에서 우여곡절끝에 메달을 따는데 성공했지만, '슈가 러쉬' 게임에 잘못 흘러들어가게 되며 랄프와 바넬로피가 만나게 된다. 바넬로피 역시 '슈가 러쉬'에서 오류 덩어리로 따돌림받고 있는 존재. 랄프와의 만남으로 평생의 꿈이었던 레이싱 경기에 참가할 수 있게 되고, 비주류들간의 연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본인의 세상 '다고쳐 펠릭스'에서 외면받던 랄프가, 조그만 꼬맹이에게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의 핵심은 결국 '인정'이다.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어제와 오늘의 내 모습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깟 다른 사람의 인정이 뭐라고, 싶지만 어쩔 수 있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것을. 우리는 평생 남의 인정을 갈망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진짜 '악당'을 물리치고 이제 랄프도 제 자리를 찾아가야 하는 때. 바넬로피는 자신의 세상에 함께 남아줄 것을 요청하지만, 랄프는 이제 본인이 어디에서 가장 빛나는지 안다. 랄프가 악역을 기꺼이 감수함으로서 '다고쳐 펠릭스'는 예전의 평화를 찾게 되었다.
이세상 그 누구도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단지 각자의 역할이 다를 수 있고, 그 역할엔 귀천이 없다는 불변의 진리가 통하지 않는 세상이란게 아쉬울 따름. 애니메이션은 언제나 이상만을 이야기하고, 현실은 여전히 시궁창이지만 그래도 두 시간동안 잠시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만으로 나는 애니메이션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쓸모없는 사람은 없지만 정의는 실현되어야 하므로 내일 11시 헌재를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