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지만, 뭐든 이룰 수 있는
서른.
발음하기도 부담스러운 단어. 스물, 하고 소리낼 때의 약간 들뜨면서도 가벼운 소리는 이제 가버렸다. 서른이라 소리내보면 닫혀있으면서도 단호한 소리가 난다. 문득 "어른"이라는 단어와도 비슷해보인다. 서른, 어른. 정말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인걸까. 내 두 어깨에 툭 얹어진 내 또다른 이름표.
2017년 1월 1일, 나는 서른이 되었다.
막연하게 서른의 모습을 상상하던 시절이 있었다. 앞자리가 3으로 바뀌는 때에 나는 무언가 큰 일을 이뤄낸 후 대단한 일을 하고있겠지, 하고 대책없는 상상을 했었다.
그러나 지나가버린 20대를 마냥 후회하기에는 너무도 당연한듯 시간을 흘려보냈던 순간들이 많았다. 흘려보내는 그 순간 순간들이 그저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 어린아이들처럼, 20대에 내게 주어진 시간들이 그랬다. 굳이 억지로 시간들을 꽉꽉 채우지 않았고, 듬성듬성 구멍난 20대의 시절들은 그대로 나만의 개성이 되었다.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지만 꽤 많은 것들이 내 주변을 채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삶을 매일 꿈꾸면서, 또 평안한 오늘에 안주하기도 한다. 보잘것없는 나를 지탱하고 있는 주변의 것들이 내가 '서른'을 견뎌내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은 온다."
최승자 시인은 서른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준비할 틈도 없이 닥쳐버린 서른의 무게를 이제는 기꺼이 짊어져야 한다. 오늘의 일상을 감사히 여기며 내일의 꿈을 발견해 나가는 멋진 한 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