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롭게 즐겨보는 경유 여행
전광판의 수많은 항공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공항에 왔다는게 실감이 난다. 마음이 설레는 포인트.
나는 에어차이나 (중국국제항공)을 이용해 프랑스 파리로 간다. 보통 회사원들은 정해진 시간에 외국에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오래 걸리는 저가항공을 이용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나는 이제 남는게 시간이기 때문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경유 많이하는 저가항공을 즐겨보도록 한다.
따지고보면 퇴사 후 가장 좋았던건 내 시간의 주인이 나라는 사소한 점이었다. 밥을 먹고싶을 때 먹고, 원하는 때 보고싶은 사람들을 보러 갈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달까. 자본주의 시대에서 내가 돈을 버는건 내 가치를 인정받은게 아니라 내 시간을 저당잡힌 대가일테다.
베이징 상공에서 바라본 풍경은 경이로웠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위압감을 느꼈다. 계획경제의 단면을 봤다고나 할까. 역시 외국에 나가보는건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차원이 열린다는게 맞다.
옆자리에는 10대로 보이는 중국 여자분이 앉았는데 몸집만한 가방을 메고 내가 자리를 잡으니 그 자체로 신기했는지 계속 말을 걸고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러는 중 중국 승무원이 중국어로 메뉴를 설명해주면 이것저것 내게 간단한 영어 통역을 해주었다.
도착해서 짐을 꺼내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다시 소란스러워지면서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옆자리의 중국 여자분이 내게도 "sit down"이라고 알려주는데 왜냐고 물어봤더니 거기까지는 영어가 되지 않아서 둘다 눈을 마주치고 웃어버렸다. 하고픈 말을 전할 수 없었지만 눈으로 이야기하는게 어떤 느낌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던 찰나였다.
알고보니 기내에 응급환자가 생겨 환자 먼저 내려야하는 상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짐을 챙겨 공항에 도착.
삐까뻔쩍한 중국 공항의 위엄에 놀라고 다시 목적지를 찾아서 이리저리 길을 헤맸다. 내 목적지는 에어차이나 환승객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24시간 라운지. 인터넷에서 라운지라고 정보를 보고 라운지를 찾아갔더니 거긴 비즈니스 라운지였고 (ㅠㅠ) Hourly hotel & Shower 라고 적힌 표지판을 찾으면 된다. 위치는 E10 Gate 근처.
여섯시간 대기하면서 베짱좋게 그간 전혀 준비하지도 않았던 스페인어도 살펴보고, 가족/친구들에게 생존신고도 하고, 중국 공항도 구경하고, 전자책도 읽으면서 여유롭게 쉬고 있다. 이렇게 브런치까지 적을 여유가 생겼다.
경유하는건 피곤한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앞으로의 일정을 위한 한 박자 쉼표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