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니지만 특별할 수 밖에 없는
그러니까 몇분 전, 나의 하루가 끝났다.
정확히는 서른 살, 결혼한 후 첫번째 생일이었던 하루가 끝났다.
거슬러 올라가면 누군가들이 정해놓았던 규칙들이 있었고, 그에 따라 우리는 초,분,시,하루라는 분절적인 시간의 단위들을 살아가고 있다. 찰나의 차이로 오늘 하루는 뜻깊은 기념일이 되었다가 다시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하루가 된다. 강물 흐르듯 시간은 여전히 태초부터 지금까지 흐르고 있건만.
그렇게 규칙에 따라 구분되어진 오늘 나의 하루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내게 선사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았고, 누군가에게는 기대했다 실망하기도 하고, 또 뜻밖의 선물을 받기도 하고. 예상 가능한 식사 자리를 갖기도 했다. 묵묵하게 흐르고 있는 시간 속에서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아닌 순간일테지만, 생일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순간 새삼스레 특별해진다. 우리 모두는 매년 누군가와 자연스레 안부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소중한 24시간을 부여받았다.
우리는 생일을 비롯한 각종 기념일의 홍수에서 살고 있다. 무언가를 자꾸 만들어 기념하려고 하는 인간의 행위는 어떤 감정으로부터 기인하는가. 무료한 시간의 흐름 가운데 더 지루해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인간의 눈물나는 노력이 아닐까. 혹은 "~~데이"라 불리는 기념일들은 잉여제품을 팔아치우려는 자본주의의 산물로 보아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지루한 삶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든, 자본주의의 단물을 맛보는 속물적인 행위든, 내게 기념일을 챙기는 건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이다. 기나긴 인생의 여정에서 잠깐이나마 꿈을 꾸게 해주는 여행과도 같이 느껴진다. 손으로 움켜쥘 수 없는 시간들을 훗날 어렴풋이나마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그 기념일들 덕분에 조금 더 생기있게 살아간다. 오늘 내게 전해졌던 주변 사람들의 따듯한 마음들을 움켜잡고 또 일상을 살아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