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싣고, 시간을 싣고, 사람을 싣고
어렸을 적 살던 동네의 발은 마을버스였다. 동네의 아이들은 나이차이가 얼마든 모두 한데 어우러져 놀고, 어른들은 누구네 집이 부부 금슬이 좋더라, 저 집 아들은 공부를 그렇게 잘한다더라, 각자 집의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그런 작은 동네였기에 교통편이 좋을 리 만무했다. 지금은 집에 차 한대 없는게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자가용이 보편화 되었지만, 그때는 동네의 대부분 사람들이 작은 마을버스에 의지해 생활했다.
이 마을버스라는게 얼마나 얄궂냐면, 자기 없이는 아무데도 가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는 또 언제 올까 빨리와야하는데 하며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것이 마치 속썩이는 애인과도 같았다. 배차시간은 어메이징하게도 한 시간에 한 대,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때는 두 시간에 한 대인 경우도 왕왕 있었다. 버스를 놓치기라도 한 날에는 30여 분을 낑낑대며, 짜증내며, 땀 뻘뻘 흘리며, 혹은 추위에 덜덜떨며 걷고 또 걸었었다.
그토록 소중한 마을버스 배차시간을 놓치는 일은 어린 나에게도, 또 다 큰 어른들에게도 여전히 싫은 일이었나보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학교 끝나고 하교하려는 학생들, 시장 보러 나온 아주머니들, 고단한 몸을 끌고 퇴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우러져 모두가 저 멀리의 길을 응시한다.
각기다른 사람들이 버스 한 대 오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이 마치 연출된 드라마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혹여나 마을버스 배차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버스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때면 제각기 혼잣말로 왜 안오느냐고 투덜대다가 급기야는 모르는 사람들끼리 버스 불평을 토해내며 단단한 결속력을 뿜어냈다. 제 시간에 맞춰오지 않는 버스를 원망하다가도 시야 저 끝에서 반가운 앞머리를 내밀며 달려오는 마을버스를 보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쾌감까지 몰려오곤 했다. 앞에 사고가 났다며 멋쩍게 변명을 늘어놓는 버스아저씨의 넉살좋은 웃음까지 덤으로 안고 집으로 향하던 나날들.
마을버스는 시내버스나 좌석버스보다 작고, 사람은 넘쳐서 유난히 사람들간의 간격이 좁게 느껴졌다. 덕분인지 함께 탄 사람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들이 내 귀에 여과없이 전달되곤 했다. 오늘은 일이 힘들었다는 할머니, 남편이 속을 썩여 힘들다는 아주머니, 같은 반 친구 얘기를 하며 깔깔대는 학생들까지. 그렇게 작은 버스는 이야기를 싣고, 사연을 싣고, 동네 구석구석을 누볐다.
어린시절의 동네를 벗어난 후 잠시 잊고있던 마을버스의 기억이 다시 살아난건 결혼 후 함께살게 된 집을 오가는 길목에서다. 새로 맞이한 우리집은 골목길을 지나 몇 번의 언덕을 넘어야 갈 수 있는데, 이 좁은 길을 열심히 오가는 마을버스가 있었고, 다시 내 생활반경에 마을버스라는 존재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서울의 마을버스라 그런지 노선도 많고 배차시간도 짧아 예전만큼 나와 밀당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도 탈 때마다 왠지모를 정겨움을 느낀다. 마을버스는 여전히 작고, 사람들의 표정이 한 눈에 들어오고, 이야기 소리도 여전히 내 귀에 모두 들린다. 여기 탄 모두가 고단한 하루를 살아냈다는 그 표정을 볼 때마다 나름의 연대감까지 느껴지곤 한다.
마을버스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