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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영 Jan 01. 2021

2020년의 키워드

대격변의 시대, 잘 버텨온 한 해의 기록 

"도처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수백 만의 인구가 목숨을 잃었다." 


어쩌면 훗날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2020년이 저물었다. 

세계는 단절되고 대혼란의 시기 속에서도, 때때로 지금 현재가 나중에 회자될 생각을 할 때면 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 시대를 겪어본 것만으로도 역사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이랄까. 


특별한 성취가 없었더라도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겨웠던 한 해를 키워드로 정리해본다. 



올해의 사건 : 엄마의 투병


올 초 엄마는 유방암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이직과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다행히 회사에서 많은 배려를 해주셔서 6번의 항암치료 과정을 전부 동행할 수 있었다. 


처음 암 판정을 받고, 가족들 모두 두려움과 혼란으로 가득했지만 돌이켜보면 각자의 위치에서 제 몫을 해내며 묵묵하게 엄마를 도왔다. 항암 치료부터 수술까지 병원 일정 동행과 각종 수납/서류 처리는 내가 담당했으며, 동생은 후유증으로 힘겨워하는 엄마에게 맛있는 음식이며 이것저것 살뜰히 챙겼다.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던 아빠는 그 싫어하던 설거지며 음식물쓰레기 버리기, 집 밖으로 나가 담배 태우기 등의 소소한 미션들을 해냈다. 그 중에서도 정말 힘들다는 항암 치료를 6번이나 견디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잘 버텨준 엄마가 새삼 또 대단하게 느껴진다. 큰 사건을 겪으며 크게 티나지 않아도 가족간의 결속이 단단하게 느껴졌던 한 해였다. 



올해의 새 가족 : 두기 


올 2월, 포인핸드를 통해 유기견 한 마리를 입양했고 "두기"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두기를 데려온 다음날 부터 대구 신천지 이슈로 인해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했고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사회화 과정이 중요한 생후 2개월 시즌이었는데, 다행히도 두기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성격좋은 강아지가 되었다. 두기의 귀여움은 아래 인스타에서 확인하시길. ㅎㅎㅎ내눈의 콩깍지 


https://www.instagram.com/doogi__official/


두기가 새로운 가족이 되면서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세상이 열렸다. 


아무리 숙취로 괴로워도 강아지 산책은 꼭 시켜야 한다는 것, 전에는 보이지 않던 골목길 위의 쓰레기들, 눈도 마주치지 않던 동네 사람들과의 소소한 수다, 지도 앱을 켜지 않아도 속속들이 알게되는 동네 골목길들. 노는걸 좋아하는 우리 부부도 이제는 강아지 동반 가능한 식당, 장소를 찾고 이동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순위다. 놀다가도 혼자 있을 강아지에게 미안해 빠르게 귀가하는 일도 어색하지 않다. 


두기는 사람도 좋아하고, 길에서 마주치는 다른 강아지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놀아서 덕분에 새로운 인연도 생겼다. 동네 친구 춘식이가 생기고 보호자님과 친해져서 함께 애견펜션 여행도 다녀오고, 빌리, 수호 보호자님들과는 매일 아침 산책 시간을 맞춰서 함께 산책시키는 사이가 되었다. 올해의 새로운 인연들 역시 두기 덕분이었다. 세계최고귀염둥이 두기 오래오래 건강해야 한다. 



올해의 스킬 업 : 요리 


코로나의 확산으로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가장 번거로웠던 것은 밥을 챙겨먹는 일이었다. 

점심시간은 한 시간인데, 밥 차리고 먹고 치우는 일까지 하려다보니 시간도 빠듯했고 마음만 급해서 초반에는 배달음식을 많이 시켜먹었다. 그렇게 한달을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나니 지출은 커졌고, 쌓여가는 플라스틱과 음식물 쓰레기를 보고 있자니 마음 한 구석 무언가 찜찜함이 자리했다. 다시 한동안 손놓고 있었던 요리를 해보기로 결심하고 쉽게 할수있는 음식들을 인터넷을 찾아봤다. 


 어떤 메뉴를 해먹을지 고민하고 식재료를 구입하고, 빠르고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게 식재료를 손질해둔다. 자칫 귀찮아질 수 있는 요리 과정을 한 번의 수고로 단축시킬 수 있다. 본래 설거지거리가 많이 나오지 않는 원 팬 요리를 선호했었는데, 나중에는 반찬 가게에서 일주일 치 반찬을 장봐와서 매 끼니 메인요리를 하나 만들고 반찬을 꺼내어 한식을 차려먹는 것도 즐거워졌다. 밥을 차려주면 최고의 리액션을 보여줘 요리한 자의 보람을 찾아준 남편 덕분에 요리에 더 재미를 붙였던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운동량은 현저히 줄었는데 먹는 재미가 붙어서 살이 찐 것은 슬프지만. 


본래 무조건 육식파라 고기 위주의 요리를 많이 했었는데, 미나리, 청경채, 알배추, 팽이버섯 등 채소가 주는 맛을 발견한 것도 올해의 수확이라 할 수 있다. 내년에는 보다 신선하고 건강한 레시피에 도전해보고자 한다. 



올해의 의사결정 : 이사 


4년정도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강아지가 오고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더 쾌적한 공간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것도 영향이 있었다. 남편과 상의 끝에 이번 집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는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사를 하기로 결정하고나니 알아볼 것이 많았다. 선호하는 동네부터 희망 거주타입, 가용가능한 예산 확인 등 묵직한 단위의 탐색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강아지가 산책하기 좋은 공원 근처의 아파트를 1순위로 두고 네이버부동산 에서 열심히 손품을 팔았다. 맘에 드는 인터넷 매물을 보러가면 사진빨에 속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고, 계약하기로 맘먹은 집은 해당 집주인이 다음 거처를 구하는데 실패해 무산되기도 했었다. 임대차보호법의 영향으로 전세 매물이 극도로 적어지는 시점이었고, 날마다 쏟아지는 언론의 보도에 마음은 초조했으나 꾸준한 탐색 끝에 마음에 드는 집을 계약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상상하고 있자면 설렘 반, 걱정 반이다. 공간이 주는 영향을 믿기에 더 쾌적한 삶을 상상하면서도 앞으로 숙제처럼 쌓여있는 이사 관련한 업무들을 생각하자면 막막하기도 하다. 손 많이 가는 업무들을 파트너와 호흡을 잘 맞추어 척척 처리하고 싶다. 



올해의 관심사 : 재테크 


본래 나와 남편은 돈을 버는 족족 여행과 가전제품 구입에 써버리는 욜로 중의 욜로였는데 이번 년도는 돈을 관리하고 불리는 재테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주식 장은 3월 폭락 이후 완연한 회복세에 이르렀고 주알못 이었던 나도 처음으로 주식 투자를 경험한 한 해였다. 사람들은 모이면 테슬라와 삼성전자 주가를 논의했으며 종목 선정을 위해 경제 뉴스도 열심히 읽게 됐다. 우리는 아직 큰 돈을 주식에 넣지 못하고 용돈 아껴서 주식 한 주씩 구입하는 개미중의 개미지만 먹고 마시고 노는 일 외에 새로운 관심사가 생긴 것은 내게 재밌는 현상이었다. 


주식 외에도 연금저축펀드, 부동산 청약 등 관심사가 점점 굵직해지는 것은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일까. 나이가 들어도 멋과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을 지금부터 탄탄하게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한해였다. 



올해의 후원 : 닷페이스


매년 정기후원하는 단체를 한둘이라도 늘려가는 것이 소소한 기쁨인데, 올해의 후원은 단연 닷페이스를 꼽고 싶다. 편견과 혐오로 단단히 뭉친 사회에 균열을 내는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데, 울림이 크다. N번방 사태를 디지털성착취로 명확하게 프레이밍하고 가해자에게 더 많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치열함과 꾸준함, 이를 전달하는 MZ세대의 기발한 기획력이 매번 감탄을 부른다. 여러 기획들 중 특히 인스타그램에서 진행한 온라인 퀴어퍼레이드 캠페인은 올해의 기획 중에서도 탁월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세상을 바꿔나가려는 사람들에게 응원과 연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 조그만 돈을 아껴 단체에 후원하는 것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려 노력한다. 내년에도 좋은 곳 찾아서 후원처를 늘려나가야지.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0230




침대에서 이거 쓰고 있으니 남편이 "오늘이 브런치에 글 제일 많이 올라오는 날일걸" 이라고 하는데 순간 뜨끔했다. 매번 해가 바뀔때마다 꾸역꾸역 글 하나씩 쓰고 있는데 올해는 좀 더 자주 기록을 남겨보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2021년 We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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