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즐거움에 대한 기억
그는 드라마에서도 지겨워 쓰지 못할 설정에 가까울 정도로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다. 필요하다 생각되는 말이 아니면 잘하지 않았으며 무한도전이나 1박 2일 같은 예능도 보지 않았다. 봐서 남는 게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덕분에 어린 시절의 나는 스마트폰을 쓰기 전까지 유행을 따라가기 상당히 벅찼는데, 배신감 들게도 나와 달리 그는 타고난 센스가 좋아서 적시에 터뜨리는 멘트들이 재밌어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 기억은 거의 없다. 그 덕에 웃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본인이 웃는 데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에게 웃음을 줄만한 일이 없기도 했는데, 그는 마치 자신이 생각하는 '웃어도 되는 삶'의 기준을 설정해 두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소소한 즐거움조차 허락하고 싶지 않아 하는 듯했다. 내가 실제로 그의 과업 중 하나를 해결해 주었을 때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그가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재수를 마치고 꽤 좋은 수능 성적을 받아 정시 지원을 한 이후 의대 추가합격 전화가 왔을 때였다.
"하하. 우리 아들은요, 수학 공부하는 게 더 좋다고 하네요. 다음 사람 전화 주세요."
마치 그 전화가 오면 이렇게 말해야겠다고 벼르고 있던 사람처럼 그는 행복해하며 대답했다. 그리곤 한동안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의대에 붙었지만 가지 않은 아들에 대한 자랑과 웃음을 반복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이후로 그는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도, 나도 그에게 웃음을 주기에는 녹록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내가 그의 웃음을 다시 발견한 건 의외의 순간이었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회식을 하겠다고 말하고 나간 날이었다. 8시밖에 안된 시간이었는데 전화를 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프고 나서는 주량이 크게 줄었는데, 본인의 몸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만취한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집으로 오는 방향의 지하철 안내멘트가 어렴풋이 들렸고, 나는 그에게 내리라고 고래고래 소리친 후 지하철 역으로 달렸다. 그런데 내가 마주한건 머리에 잔뜩 피를 흘리고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119에 신고했다. 그는 넘어진 건지, 싸웠는지, 일방적으로 맞았는지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구급대원이 그의 상태를 체크하고, 단순히 만취한 상황이며 머리의 상처는 그렇게 깊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나서야 안심하고 그를 부축하여 집에 데려올 수 있었는데, 그는 오는 내내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과거의 어느 날들을 떠올리게 했다. 겨우 집에 들어와서 그는 왜 항상 미안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그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동생이 그의 핸드폰에서 사진 한 장을 찾아 나에게 보여주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싶어 핸드폰을 뒤지다가 찾았다고 했다.
그가 방금 전의 회식에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소주병을 열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진 속 그는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즐거운 표정으로 사람들과 떠들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안도할 수 있었다. 그건 그가 동료들과 무슨 일이 있어서 머리를 다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가 아니었다. 여전히 그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을 그의 삶에 허락된 웃음에 대한 안도감이었다. 그리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그가 그의 즐거움을 찾았더라도 나에겐 언제나 미안한 사람일 수밖에 없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아버지로서의 그 만을 연민하기로 했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아버지로서의 그 뿐이라는 것을, 그가 아버지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사는 순간들에는 그 역시도 여느 사람들과 같이 웃고 떠드는 사람이라는 걸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난 이후에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