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90% 수학 교사 일기-3

F 90% 수학 교사가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알게 된 순간

by Theta

장래희망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배우고 생각한 최초의 순간부터 나의 장래희망은 과학자였다. 조금 더 크고 나서는 물리학자가 하고 싶었고, 반드시 그리 되리라 믿었기 때문에 다른 직업에는 어떠한 관심도 없었다. 지금의 직업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된 건 중학교 3학년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등교시간과 1교시 사이에 꽤 긴 텀이 있어 그 시간 동안 영상을 틀어주고 학생들로 하여금 소감문을 작성하도록 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그 당시에는 'TV 동화 행복한 세상'이라는 프로그램을 주로 방송해 줬는데, 교훈적인 내용을 아이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구성된 10분가량의 애니메이션 시리즈였다. 그날의 방송은 내향적인 사람들만이 가진 능력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평소에는 외향적인 사람들이 돋보이지만 내향적인 사람들도 단단한 내면을 가꾸면서 필요한 순간에 자신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으니, 내향적인 사람들도 자신의 성격을 사랑하라는 그런 이야기였다. 요즘의 I와 E에 관한 이야기랄까? 근데, 아직도 자녀의 성격이 좀 더 외향적이었으면 하는 학부모가 많은 걸 보면, 그 당시에도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그 영상이 선택되지 않았을까 싶다.


여하튼 그 당시의 나도 글 쓰는 걸 즐기는 학생이었지만 전형적인 모범생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어서 다섯 줄을 적게 되어있는 칸에 세줄 반 정도의 소감문만 적었다. 200X 년의 모범생이라면 '이러한 영상이 너무 재밌고, 나도 내 성격의 장점을 찾아봐야겠다.'는 등의 다소 뻔한 문구들을 섞어서라도 분량을 꽉꽉 채워 다른 친구들에게 본을 보임이 마땅했으나, (물론 요즘의 학급이라면 알아볼 수 있게 써서 주는 것만으로도 엄지를 척 치켜세울 일이다.) 나는 내가 할 말을 다 했으면 더 이상의 불필요한 말은 적지 않곤 했다. 나는 영상의 내용은 알겠지만 외향적인 성격이 부럽다고 썼다. 그 시절의 나는 슈퍼에 가서 유희왕 카드를 사는 것도 힘들어할 만큼의 극단적인 내향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는 평소와 다르게 내가 적은 글에 대한 담임선생님의 코멘트가 달려있었다.


'나도 외향적인 사람이 부러워.'


나는 그 한마디로 우리 담임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선생님이란 어떤 직업인 것인지 알게 되었다.


어제는 우리 반 아이들의 보충지도를 하다가 아이들이 갑자기 떡볶이를 사달라고 해서 퇴근길에 아이들과 함께 비를 뚫고 학교 앞 분식집에 갔다. 가보니 얼굴만 아는 다른 반 아이들이 두 명 더 있었고, 분식집에는 테이블이 하나밖에 없어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합석시켜 이런저런 이야기로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내가 80% 정도의 I가 나오는 극단적인 내향인이라는 말에 선생님은 E 같다며 검사를 다시 해보라고 보챘다. 차마 우리 반만 챙길 수는 없어 그 아이들 것까지 모두 계산한 후에 아이들을 먼저 집으로 보내고 학교로 돌아왔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다시 정문을 나섰다.


여전히 외향적인 사람이 부러운 한편, 꽤 그럴듯한 교사가 되어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드는 퇴근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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