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온전히 추억하기-4

그와 내가 닮은 순간

by Theta

그는 나에게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이렇게 사는 바람에 너는 엄청 잘 살지는 못한다고. 내가 그거는 미안해. 그래도 너는 나보다는 좀 더 잘 살 거고, 네가 열심히 살면 너의 자식은 충분히 여유 있을 거야."


사실 아직도 전화공포증을 겪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성격 탓이라고 둘러대곤 하지만, 어릴 적에 집으로 오는 빚쟁이들의 전화를 몇 번 받은 이후로, 갑작스럽게 오는 전화를 받는 것에 대해 많은 두려움이 생겼다. 학원 강사나 교사로 오래 근무하면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특히나 내가 번호를 저장해두지 않은 사람에게 전화가 올 때면 심장이 두근거리곤 한다.


한때는 나에게 이런 고통을 준 그가 미웠다. 그리고 내가 나중에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그 아이에게는 이런 불필요한 경험은 절대 겪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전화 외에도 집 안에 덕지덕지 붙은 빨간딱지를 보거나 금전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그런 모든 '불필요한 경험' 들은 자기 연민이 강하던 나의 사춘기 시절의 마취제로 작용했다. 그런 대단한 일들이 나에게 있었기 때문에, 오늘 하루는 내가 멍하니 살아도 그럴만하다는 내용의 면죄부를 만들어 주곤 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받은 면죄부를 남들에게 죄책감 없이 들이밀면서도, 사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나에게 도움 될 것이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좋은 것들을 보고, 더 좋은 것들에 대한 그림을 그려 나가는 것이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누군가에게 훨씬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처럼 되고 싶지가 않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화장터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을 때, 고모들은 나에게 그와 닮은 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왔다. 그도 그럴만한 게, 그와 나는 외적으로는 닮은 구석을 찾기가 워낙 어려웠기 때문이다. 고모들은 혼자 남은 어머니가 나에게 남은 그의 모습들을 보면서 그를 추억하기를 바랐던 듯 하지만 나는 선뜻 시원한 대답을 주지 못했다.


자취를 시작한 이후로 위스키와 와인을 사모으고 있다. 퇴근 후 마트나 바틀샵에 들러 괜찮은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는 건 내 취미가 됐다.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롭지만, 좋은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한두 잔 마시는 건 숙취 없이 적당히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많은 사람들과 떠들며 회식하는 것도 즐겁지만,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과 그 안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안주삼아 술로 털어내는 데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함을 나는 그를 통해 배웠다.


그리고 역시나 그의 이야기 대로 나는 그보다 조금 더 잘 살고 있다. 그가 소주를 마실 때 나는 위스키나 와인을 마실 수 있게 되었으니까. 또 다행히도, 그 '불필요한 경험'들 덕분인지 나의 삶은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어머니께 자랑스럽게 보여줄 순 없는, 그와 닮아있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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