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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휘 Jul 12. 2019

가짜 뉴스 같은 로맨스

영화 <롱 샷>


영화 <롱 샷>의 시사회에 다녀왔다. 


프레드 플라스키(세스 로건)는 기자이다. 그는 취재에 열정적이며, 늘 카고 팬츠에 바람막이를 입고 때를 안 가리고 열을 내며 과격한 유머와 말을 쏟아낸다. 어느 날 그가 근무하던 언론사가 가짜 뉴스를 뿌리는 거대 언론사 웸블리에 인수된다. 플란스키는 남아 달라는 요청을 무시하고 스스로 그만둔다. 그는 새로운 직장을 찾으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그러다 잘 나가는 금융인인 친구 랜스를 따라 파티에 갔다,  샬롯 필드(샤를리즈 테론)와 재회한다. 


샬롯 필드는 최연소 국무 장관이고, 차기 대통령에 도전하는 후보이다. 그녀는 올바른 일을 하려고 하고, 국제 정치 무대에 능숙하며, 타협과 협상을 해낼 줄 안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그녀를 둘러싼 가십도 언론을 통해 오르내리며 대중들은 그녀를 좋아한다. 그런 그녀는 20여 년 전 프레드의 베이비 시터였다. 짧은 재회 이후에 샬롯은 프레드의 유머를 높이 평가하고 자신의 캠페인 연설 비서관으로 프레드를 고용한다. 그리고 프레드는 샬롯이 전 세계를 도는 일정에 같이 동행한다. 그리고 프레드는 어김없이 늘 자기답게 행동하고 문제를 일으키며 둘은 부딪히고 그러다 둘 사이에 미묘한 로맨스가 흐르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이다. <50/50>, <웜바디스>, <더 웩크니스>와 코디미 영화를 다수 찍은 조나단 레빈이 연출을 맡고, <디 인터뷰> 각본 작업에 세스 로건과 함께 참여했던 댄 스털링과 <더 포스트>의 각본과 제작에 참여했던 리즈 한나가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이력을 이렇게 써놓고 보니, <롱 샷>은 감독과 각본가들의 이력의 종합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 


영화는 로맨스와 세스 로건 식의 코미디를 중심에 두고, 정치의 문제와 저널리즘의 문제를 풍자하며 보조적으로 끼워놓고 있다. 이런 보조 이야기(서브플롯)들은 극의 갈등을 만들어내고 극을 굴러가게끔 만든다. 그리고 비교적 잘 어우러지는 것 같다. 


<롱 샷>은 할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 공식을 착실히 따른다. 각자의 상황을 보여주고, 그들이 영화의 초반 부분에 만나고, 그리고 관계를 쌓아나가다가 결정적 사건을 통해 사랑에 빠진다. 그 후에도 착실히 따라간다(스포일러니까 자세히 안 쓰겠지만). 이런 구조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편하게 따라가게 해 준다. 즉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이런 로맨스 서사 구조에 코미디를 끼얹는데 코미디는 분명 서사의 중심에 있지만 전체 서사 진행의 방향을 바꾸지 않는 선에서 사용된다. 코미디는 장면과 대사 단위에서 시도된다. 그리고 서프 플롯과 엮여서 코미디는 작동한다. 미국 정치에 대한 풍자, 그리고 파티에서 샬롯에게 인상을 남기는 장면에서, 갈등과 위기를 고조시키는 장면을 웃기게 그린다든지, 혹은 주인공에게 뭔가 깨달음을 주기 위한 장면에서 동원되다거나 하는 식이다. 이는 코미디가 본래적으로 맥락에 의존하기 때문이기다. 그리고 보다 보편적(이라고 세스 로건이 믿는) 단순한 성적인 농담도 시도된다. 



영화는 로맨스와 코미디에서 성공했는가.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재밌었고 많이 웃었다.


하지만 코미디 부분에서 슬랩 스틱과 말장난, 그리고 성적인 코드의 코미디가 늘 작동하지는 않는다. 특히나 초반 부분에서는 코미디가 아쉽게 느껴진다. 아직 영화의 맥락이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일 텐데, 이때 영화는 미국 사람들의 맥락을 호출해서 유머를 시도하는데 이게 미국인이 아니면 즉각적으로 웃기진 않을 것 같다. 비교적 중반과 후반의 코미디는 재밌다. 하지만 몇몇 부분은 민망할 뿐 애매했다. 재기를 발휘해서 웃음 주려기 보다는 뭔가 익숙한 방식으로 "이거 웃긴 거잖아" 하면서 들이미는 느낌이었다.



로맨스 부분에서도 조금은 아쉬웠다. 일단 보통의 로맨스 구도에서의 남녀를 뒤바꾼 설정 자체는 좋았지만 그 설정 외에는 기존의 로맨스 구조를 따른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기존의 로맨스에서 남자 주인공은 누가 봐도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지기 때문에 그에게 왜 빠지는가에 대한 설명은 쉽게 넘어갈 수 있고 오히려 여자 주인공이 그에게 빠지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이유를 여성에게 부여한다. 이 구조가 역전된 <롱 샷>에서는 샬롯이 20여 년 전에 인연(심지어 스스로는 알아보지 못한)과 별거 없는 투닥임 정도로 샬롯이 그를 좋아하게 되는 건 좀 아쉽다. 로맨스에 이입하게 힘들게 함과 동시에, 이 둘의 연애와 관계가 약간 납작해지면서 그 관계의 맥락 속에서 할 수 있는 유머의 폭도 함께 좁아졌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로맨스는 어느 정도 납작해질 수밖에 없지만 유머를 충분히 확보할 만큼과 몰입(코미디에도 중요하다)을 망치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로맨스를 더 잘 만들어서 더 잘 웃길 수 있었다는 게 아쉽다.


그럼에도 <롱 샷>은 비교적 잘 만들어진 로맨틱 코미디이다. 영화의 설정이 제기한 질문들에 거의 답을 했고(어설픈 답일 순 있지만) 로맨스는 로맨스로 작동하며 코미디는 코미디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샬롯은 아름답기만 한 인물이 아니라 강인하고 신념 있는 정치인으로 그려지며 캐릭터의 입체성은 확보했고 (그 외 인물들은 입체적이진 않은 것 같다.) 미국의 외교를 담당하는 국무장관인 샬롯 덕분에 다채로운 곳에서 다채로운 일들이 일어나서 보는 재미도 있다. 로맨틱 코미디가 이렇게 큰?! 스케일을 보여주는 건 드물다. 그리고 미국의 정치나 언론 지형을 끌어와서 풍자하고 있지만 한국인이라면 <롱 샷>이 보여주는 맥락이 생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와 같이 웃는 게 어렵진 않을 것이다. 다만 어느 순간 웃음이 잦아드는 순간, 입꼬리와 눈꼬리가 천천히 펴지면서 씁쓸해질 순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마지막 장면은 좀 다시 찍었으면 좋겠다(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기껏 구도를 뒤집어 놓고, 마지막에 그런 식으로 밖에 못 찍고, 대사를 못 쓰는 게 어이가 없을 정돈데. 그전에도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부분들이 없었단 건 아니지만 마지막 장면은 갸우뚱을 넘어서 어떤 확신까지 들게 만들었다. 구도를 뒤집고 나름 공정하려고 하지만 그건 다 어떤 제스처, 어떤 척일 뿐이라는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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