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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Apr 26. 2022

인사이동 : 팀장님이 돌아왔다

기록하는 2022년│Episode 78│2022.04.22

작년 10월. 회사 조직 개편이 있었고 그에 따라 우리 국에도 대규모의 개편 및 인사이동이 있었다. 있었던 팀이 사라지고, 없었던 팀이 새로 생겼다. 꽤나 큰 규모의 인사발령이었으나 국 자체를 벗어나거나 국에 새로 온 분들은 없어서 되게 별 일이면서도 별 일이 아닌, 그런 인사이동이었다. 어쨌든 그 인사이동 때 당시 우리 팀의 팀장님이 옆 팀의 팀장으로 가셨다. 자리로 따지면 바로 옆 옆 자리 정도 되었고, 우리는 국 체제로 크게 움직이는 일들이 많아 크게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팀장님의 이동은 내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팀장님의 이동은 내가 퇴사를 고민하게 된 여러 점들 중 하나였다. 농담처럼 말했던 "난 팀장님 때문에 회사 다녀. 팀장님 없으면 회사 그만둘 거야."가 사실은 진담이었던 셈이다. 회사에서 업무가 나와 너무 맞지 않는 것 같고, 발전하지 않는 것 같고, 그 외 뭐 기타 등등의 이유로 퇴사와 부서 이동을 고민할 때 늘 날 붙잡았던 것은 팀장님이었다. 한 번도 그만두겠다고 말했던 적은 없으니 나를 직접 붙잡았던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냥 팀장님 덕분에 그런 고민들과 문제들을 해결해나갈 수 있었기에 어쨌든 팀장님이 결과적으로 날 붙잡았던 것은 맞다. 팀장님은 나와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 거의 유일하게 배우고 싶고,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런 팀장님과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한다니. 나한테는 마지막 남은 끈이 뚝 하고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온 새로운 팀장님은 (기존에 우리 옆 팀의 팀장님이셨다. 스위치 된 느낌이랄까.) 조금 힘들었다. 그분의 능력이 부족했다거나 이상한 사람이어서가 전혀 아니다. 새로운 팀장님 역시 평판도 좋고, 업무 처리 능력도 좋은 훌륭한 분이었다. 그냥 나와 잘 맞지 않았을 뿐이다. 약간은 옛날 스타일의 사람이랄까. 대화를 한다기보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하고, 직접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밥 한 끼 거하게 먹으면서 으쌰 으쌰 힘 내보자는 식이었다. (극단적으로 표현했을 뿐, 실제로는 이 정도까지는 아닌 그냥 좋은 팀장님이다.) 못된 사람이라면 그냥 편하게 미워하기라도 했을 텐데, 좋은 사람인데 나와 잘 맞지 않으니 그 부분이 나한테는 더 힘들었다. 그래서 전 팀장님의 공백이 더 크게 다가왔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듯 어떻게든 적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팀장님은 장점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느꼈던 단점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큰 장점을 갖고 있었다. (물론 첫 몇 달은 정말 힘들었다. 매일 선배와 손 붙잡고 우리의 앞날을 걱정했을 정도니까. 선배 역시 꽤 힘들어했다. 늘 웃기만 하던 선배인데 그 시기에는 선배의 웃음을 볼 수 없었다.) 나를 위한 진심어른 조언들도 정말 많은 해주셨다.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새로운 팀장님의 업무와 인간관계 태도가 우리 회사에서는 아주 잘 먹히는 것이라는 것도 꽤 의미 있는 발견 중 하나였다. 또 좋은 점 중 하나는 (이것을 팀장님의 장점이라고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으나) 팀에 일이 안 온다는 것이었다. 팀장들 중에 연차가 가장 높고, 또 일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기존에 딱 정해진 우리 팀의 업무 외에 새로운 업무, 또는 애매한 업무들이 이 시기에 우리 팀으로 오지 않았다. 새로운 팀장님과 함께 한 그다음 몇 달 동안은 꽤 편안했고, 즐거웠다. 내가 갖추지 못한 부분들, 내 부족한 부분들을 많이 바꾸고 채울 수 있었다. 게다가 무조건 좋기만 한,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는 것과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은 가능하고, 누구에게서나 배울 점은 많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진짜로 알게 된 값진 시간들이다.


이렇게 적응의 시간을 꽤 거치고 이제야 비로소 드디어 만족스러운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인사가 또 났다. 기존의 우리 팀의 팀장님이었다가 옆 팀으로 갔던 팀장님(이하 : 구구팀장)이 다시 우리 팀을 맡게 됐고, 옆 팀에서 우리 팀으로 오신 새로운 팀장님(이하 : 구팀장)은 다시 갔다.


인사를 처음 본 그 순간 마냥 어린아이처럼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놀랐다. 분명 정말 좋아했던 최고의 팀장님이 다시 돌아오셔서 무조건 너무 좋아야만 할 것 같은데 왜 마냥 좋지만은 않은 건가. 6개월의 시간 동안 내가 너무 안락한 회사 생활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팀장님이 옴과 동시에 함께 쏟아져 올 일들이 걱정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사이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루팡을 꿈꾸게 된 내 모습을 팀장님께 보이기 부끄러워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지난번 인사를 통해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너무 좋아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자제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어딘가 모르게 기분이 이상하다. 어쨌든 팀장님은 다시 돌아왔고 다음 주부터는 '새로운, 기존의' 팀장님과 함께 한다.  




이 일기는 인사가 나고 '새로운, 기존의' 팀장님과 삼일을 함께 일하고 한 상태에서 쓰고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내가 느낀 것은 팀장님이 다시 오시고 확실히 바빠졌다는 것이다. 업무 때문에 기존보다 1시간씩 일찍 출근하는데도 하루가 너무 짧다. 그리고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다. 나는 이런 회사 생활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루팡을 꿈꾸지만, 너무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싫은 것이다. 바쁜 것이, 그래서 일을 계속 배우고 해 나가는 것이 훨씬 좋다. 어제보다 하나는 더 배워가는 오늘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기에, 팀장님에게 집착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무엇이건 이것은 내가 좋아하고, 나와 맞는 것이라는 것을 고집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지난 6개월 동안 구팀장님과 함께 하며 배운 것들이다. 덕분에 지금 상황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 같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배우는 것이 단순히 일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여기에 더해 자랑 하나 해보자면- 지난 6년 여의 회사 생활을 돌이켜보니 그동안 함께 했던 모든 팀장님이 참 좋았다. 그냥 별로가 아닌 정도의 사람들도 없었다. 모두가 따스하고, 진심인 사람들이었다. 업무적으로도 배울 점이 많고, 업무가 아닌 것들로도 배울 점이 많았다. 나는 팀장님 복이, 사람 복이 참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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